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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꾸 Feb 21. 2021

남의 나라에 적응시키는 방법

벨기에 플란더스 이민자통합과정에서..


벨기에 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벨기에의 모든 것에 문맹이었다. 남편이 벨기에는 맥주가 유명하다고 했지만 맥주보다는 소주를 즐겨 마시고 막걸리를 좋아했기에 크게 감동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초콜릿이나 와플도 단거나 간식거리를 입에 거의 대지 않기에 심드렁 했다.


벨기에는 3개 언어가 공용어다.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작은 나라에 세 개나 되는 언어를 쓴다는 게 이상했었다. '그럼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거지? 3개 언어를 다 섞어 쓰는 건가? 모든 벨기에 사람들은 3개 언어를 구사하는 거야?'  물론 그렇지는 않았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플란더스 지역은 네덜란드어, 사람들이 친절하고 맛난 음식이 많은 왈롱 지역은 프랑스어, EU 수도인 브뤼셀도 대부분이 프랑스어, 그리고 아주 작은 지역인  독일과 국경을 맞다은 곳은 독일어를 쓰고 있다.   언어의 인구 대 비율은 네덜란드어 약 60%, 프랑스어 약 38%, 독일어은 약 1% 정도 된다. 


벨기에에 이사오고 나서 언어를 배워야 겠다는 마음이 급했다. 집 근처 5분 거리에 운이 좋게도 성인교육기관(Volwassenenonderwijs)이 있었다. 저렴한 비용으로 여러 언어, 각종 취미나 직업교육을 배울 수 있다.  학기 시작이 9월,  A1 기초 과정 네덜란드어 수업도 9월이 시작이라 혼자서 독학으로 네덜란드어 공부를 인터넷으로 시작했지만 거의 효과는 없었다. 9월에 등록을 하면서 수강료를 72유로를 냈는데 같이 공부하던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친구들은 수강료를 내지 않았단다. 그래서 물어보니 이민자통합과정(inburgering) 계약을 했고 그러면 수업료가 무료란다.  'Inburgering이 뭐지?'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이민자 통합과정. 그래서 우리 지역 담당자 이메일 주소를 찾아서 메일을 보냈다. '난 벨기에에 이사온 지 6개월 정도 되었고 네덜란드어를 배우는데 인버거링을 하면 네덜란드어를 무료로 배울 수 있다는데 그게 맞는 건가요? 나는 해당이 안되나요?' 그랬더니 답장이 왔다. 약속을 잡고 만나자고.  그 인버거링 담당자의 사무실은 내가 다니는 성인학교의 건물에 있었다.  이 성인학교는 우리나라 왠만한 초등학교 만큼 크고 건물도 여러 개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Mieke(미꾸)!  미꾸에 대한 첫 인상은 만나는 모든 사람들 도와주려는 의욕으로 가득 찬 따뜻한 사람. 


나라마다 벨기에 비자를 취득하는 조건이 다르다.  벨기에 오기전에 비자를 취득하고 와야 하는 경우가 있고 나같은 경우는 벨기에에 와서 비자를 신청해서 그걸 기다리는 기간이 6개월이 걸렸다. 그렇기에 인버거링 안내 우편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미꾸는 인버거링 과정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계약을 맺으면 네덜란드 B1 과정까지 무료로 수강을 할 수 있지만 남편이 벨기에 사람이 아닌 EU국민이기에 인버거링을 꼭 해야하는 건 아니고 선택 사항이란다. 네덜란드어 수업을 듣는게 부담되는 가격이 전혀 아니었지만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기회인데 인버거링 계약을 맺는 걸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인버거링 계약을 맺는 조건은 네덜란드어를  A1(자기소개하고 인삿말 정도를 할 수 있는 기초적인 수준)와 A2(기본적인 의사소통 가능)과정을 수료해야 하고 10일 동안 인버거링 수업을 받아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완료하면 인버거링을 완료했다는 서류를 받고 이 증명서는 나중에 벨기에 국민이 되는 심사를 받을 때 유리하고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국민주택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단다.  하지만 이 두 가지(네덜란드어 A1와 A2,  인버거링 수업)를 완료하지 못하면 벌금을 물린다고 서류에는 쓰여 있었는데 담당자인 미꾸는 그런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수업을 못받을 만한 사연이 있으면 나중에라도 받으면 된단다. 


인버거링 수업을 받으러 간 날. 쌀쌀한 날씨지만 햇빛은 찬란해서 실내에 있으면 졸음이 쏟아지는 날씨였다. 인버거링 수업은 여러 나라 언어로 제공이 된다. 다른 EU국가 이민자와 난민들을 위한 언어들이 제공되는 데 물론 한국 사람들은 많지 않기에 우리나라 언어로는 제공은 되지 않고 나는 영어로 하는 수업을 들었다.  영어로 제공되는 인버거링 수업이 다른 언어로 제공되는 수업보다 많기에 영어가 가능한 사람들은 영어로 제공하는 인버거링 수업을 신청해서 들을 수 있다. 우리 반에는 구두 만드는 공부를 하고 있는 헝가리인, 모든 것에 비판을 잘 하는 금발의 러시아 여자, 언제나 활달하고 밝은 나이지리아 여자,  영어를 잘해서 일식집에서 일할 기회를 잡았다고 자랑스러워 하는 태국 여자, 지게차 기사가 되고 싶어했던 아프가니스탄 남자, 호텔리어로 두바이에서 일하면서 벨기에인 아내를 만났지만 네덜란드어를 못해서 일을 구할 수 없어 페인트공이 된 인도 남자,  벨기에 왈롱지역에 살다가 일을 구하려면 플란더스로 가야 기회가 있다는 상담을 받고 나서 플란더스로 이사 온  불교에 심취해 있던 케냐 남자, 언제나 쫙 뺀 양복과 블링블링한 금색 목걸이를 한 지금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기억이 안나는 아프리카 출신 남자. 그리고 우리의  담당 멘토는 벨기에 산 지 20년이 된 태국출신 여자 였다.  그녀가 벨기에에 이민 왔을 때만 해도 요즘 처럼 인종차별이 있거나 국적취득하는게 어렵지가 않았단다. 그녀는 2년 만에 벨기에 국적을 취득했단다. 


인버거링 수업. 아침 9시부터 4시까지 잰 종일 앉아서 듣는 수업은 사실 좀 지루했다. 벨기에의 역사, 경제, 그리고 너무 복잡해서 벨기에 사람들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정치, 정당 및 5개나 되는 정부. 국적 취득과 연금을 받기 위한 조건.  각종 사회보험, 노동조합, 교육 제도. 심지어 겨울에 난방비 절약하는 팁까지 알려 준다. 예전에는 이와 관련된 시험을 보기도 했다지만 이제는 시험보고 나면 다 잊어버리고 마는 정보에 대한 테스트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 대신 벨기에에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목표를 설정하고 어떻게 그걸 진행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저인 방안에 대한 계획서를 만들어 제출하고 멘토와 상담을 해야 했다. 인버거링 수업을 받기 시작하던 시기가 내가 벨기에에 살기 시작한 지 근 1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이었다. 그동안 나의 입맛은 벨기에 맥주에 길들여져 있었다. 대형수퍼마켓 두 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특별한 맥주의 매력에 푹빠져 있던 시기라 난 이 나라에 사는 김에 맥주 공부를 하고 싶다는 장대한 꿈을 가지고 있엇다.  그리하여 내 계획서는 맥주 공부를 하기 위한 학교 정보와 그 수업을 듣기 위해 해야 하는 과정에 대해서 계획서를 만들어 제출했다.  멘토는 아주 기발하다며 재미있어 했고 계획서는 무사히 통과 되었고 인버거링 수업 수료증을 받았다. 


네덜란드어 수업의 진행이  A2(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조금 가능할 정도)를 넘어 B1이 되기 시작할 즈음  미꾸는 우리에게 지역 VDAB(벨기에 플란더스 지역 노동 및 직업교육) 담당자와의 면담을 잡아 주었다. 경력 및 학력 사항에 따라 직업 교육을 받거나 직업 찾는 걸 도와 준다.  나의 맥주 공부를 하겠다는 원대한 꿈은 무산되긴 했지만 네덜란드어 테스트 후에 좀 더 심화과정의 VDAB에서 제공하는 네덜란드어 수업을 듣게 되었고 그 이후 VDAB에서 하는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벨기에 플란더스 정부에서 제공하는 외국인을 위한 잘 정형화된 시스템 덕분에 나는 벨기에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든든한 친구들을 만났다. 이런 기회와 혜택을 받은 것에 대해서 내내 고마워 한다. 그리고 내가 벨기에에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물론 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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