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투른 네덜란드어로 이야기할 때면 남편은 옆에서 내 말을 다시 정확한 네덜란드어로 이야기해서 듣는 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한다. 나는 내내 이것이 너무 못마땅했지만 꾸욱 참고 있다가 집에 와서 이야기했다. 내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나의 형편없는 알아듣기 힘든, 서투른 네덜란드 말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질문을 했고 대답은 내가 해야 한다고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했다면 내게 다시 물을 테고 아니면 그냥 알아듣는 척을 하는 것도 그 사람의 선택일 테니까.
이젠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긴 하지만 언어를 익히는 과정에서는 그런 서투른 단계가 필요하다. 어부부부하게 말하는 어린아이의 발음이 부정확하다고 어른이 그런 아이를 대신해 평생을 대답해 줄 수는 없다. 그런 어부부한 과정을 거치며 아이는 말을 해 간다. 좀 더 더디게 배우는 아이도 있고 빠르게 배우는 아이도 있고 평생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의사소통이 된다면 언어의 용도는 그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