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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꾸 Sep 07. 2023

내가 겪은/는 괴롭힘 혹은 인종 차별 이야기


 

시간이 오래 지나서 쇠퇴해 질만도 하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분명히 곡해되었을 내 기억에 대해서 적고자 한다.  지난 경험이 스멀스멀 다시 되살아 날 수 있게 한 건 아직도 이런 겪음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세기말 1999년에 인도를 한참 여행 중이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객들과 같이 다니기도 했고 혼자 다니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여전히 인도에는 어마 무시한 소문과 사건 사고가 많았다. 요즘은 인터넷 덕에 정보가 더 빨리 넓게 공유되기에 그런 뉴스를 좀 더 쉽게 접하는 게 아닌가 쉽다.




바라나시, 인도



'뉴델리 역의 화장실에서 머리만 발견되었다'

'버스 안에서 집단 강간을 당했다'

'기차 안에서 받아먹은 짜이나 음식에 약이 들었으니 절대 먹지 말라.' -이건 현지인들이 주의 주는 이야기.

'기차 안에서 짐을 가져가니 항상 짐을 자물쇠로 고정을 해라.' -그럼에도 그걸 끊고 짐을 가져가서 몸에 지니고 있던 귀중품 이외에는 전부다 다시 사야 했다는 한 여행자 이야기도 들었다.

'버스 안에서 남자들이 접근해서 가지고 있던 칼로 자기 팔을 긋는 시늉을 하니 그제야 멈추더라' -여행자에게 들은 이야기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스스로 겪기 전에는 그걸 알 수가 없고 그리고 그때 젊은 나는 그런 이야기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나는 운이 좋게도 친절하고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인도에서 만난 현지인에 대한 느낌은 소소한 불쾌한 일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좋다.


인도 중부의 관광지에서 사람이 없었던 곳에서 나를 한동안 뒤따라 오던 남자가 있었지만 사람들이 많아지자 사라져 버린 적이 있었고 서너 명의 사리를 곱게 입은 뚱뚱한 아주머니들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네팔리, 네팔리' 소리치며 한참을 혐오하는 눈빛으로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소리를 질렀다. 인도에서 네팔 사람들을 무시했다. 뉴델리 한복판,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누가 그랬는지도 모르게 슬쩍 슬쩍 내 몸 여기저기에 손을 흩고 지나가 온몸에 소름이 돋게 했다.


같은 해 파키스탄을 여행했을 때는 버스 안에서 앉아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계속 찌르는 느낌이 들어 사람들이 많아서 그러는가 했더니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우산으로 나를 계속 찌르고 있었다. 소리를 질렀지만 그 젊은 남자는 웃기만 했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다행히 그 남자는 내릴 때가 되었는지 즐거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길거리를 걸어갈 때는 버스 안에서 단체로 야유를 보내며 먹다만 옥수수자루 같은 쓰레기를 내게 던졌다. 그런 나라에서는 차라리 여자는 부르카를 쓰고 다니는 게 훨씬 안전하겠구나 했다.





Ramsase Station, Cairo, 이집트



2010년도에 이집트 카이로에 살 적에는 주말에는 혼자 여기저기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일부 무지한 이집트 사람들이 아시아인에 대한 자잘한 괴롭힘에 대한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돌을 던진다이다.

'길을 걸어가는 데 누군가 던진 돌에 머리가 터져서 꿰매야 했다'는 너무 흔한 이야기.

중국 여자들이 방물장수를 하며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물건도 팔고 몸도 팔아서 아시아인 여자는 중국 창녀 취급을 했다.


전철 안에서 꽹하지만 끈질긴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며 뭐라고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헤댄다. 그 중에 알아듣는 건 '찐' 불라 불라... '찐'은 중국인을 말한다.

시내 중심가를 벗어나 한적한 메마른 동네로 들어섰을 때 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이 갑자기 몰려들어 나를 졸졸 따라오며 돌을 던지기 시작한 적도 있다. 주위에 어른들 몇 명이 그걸 쳐다만 봤다.






Leeuwarden, Friesland, Nederland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유럽.

네덜란드의 한 지방 도시의 식당에 갔다. 내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문 앞에 서있던 여자 종업원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는 '할로'하며 웃으며 들어섰는데 그 종업원은 심술궂은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흩어 쳐다보기만 한다. 당황스럽게 서 있는데 1분 정도 후에 들어오는 네덜란드인 남편을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한다. 어떨 결에 자리에 앉았지만 내내 기분이 안 좋았고 그 식당에서 자리를 잡지 말걸 하는 후회가 올라왔다. 이런 일은 체코 프라하에서도 있었는데 식당 종업원이 우리보다 늦게 들어온 손님들에게는 메뉴판을 갖다주면서 우리만 못 본 척하고 지나간다. 다른 손님들이 우리를 겸연쩍게 쳐다보며 안된 표정을 지었는데 우리는 그래서 그 식당을 나왔다. 이런 일은 너무 흔해서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들다. 이젠 그런 기색이 보이는 식당이면 많이 기다리지 않고 바로 나온다. 식당은 그냥 안 가면 된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당하는 일들은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보통 10대에서 20대의 남자들이 자전거나 택트를 타고 가면서 나를 향해 중국인, 코로나, 칭챙총, 중국인 창녀라고 소리를 지르고 이상한 동물 소리를 내며 심지어 입에 담기도 힘든 성적인 말까지 소리를 지르며 해된다. 신호등에서 길을 건너려고 서있는데 차 안에서 창문 밖으로 나에게 손으로 Fuck you를 한다. 

놀랍게도 그들의 표정은 다 똑같다. 너무도 비열하면서도 즐겁고 행복한 표정.

며칠전 요즘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다는 서양 미소년의 요거트 광고를 잠깐 보다가 토할 뻔 했다. 그 모델의 생김새나 표정이 길거리 나에게 말 테러를 해대는 아이들의 표정 같았다.


밖에 나갈 때마다 긴장이 되고 자전거를 타고 내 옆을 지나가는 무고한 젊은 남자들에게도 심장이 벌렁 된다. 하루 종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접하는 이런 겪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별거인 일들에 행복한 시간이 다 상쇄되어 버린다.


뇌는 25살까지 불완전한 상태라고 한다. 그 불완전한 상태의 젊은 남자아이들의 무지한 행동에 내가 어찌 대적할 길은 없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이 커서 어떤 어른들이 될까 생각을 하면 무섭다.


이것도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었어 할 수 있으려나 하며 좀 더 객곽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 글을 써보는데 요즘 겪은 것을 쓰면서는 다시 심장이 벌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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