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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꾸 Jul 20. 2023

지난 일요일 이야기

죽음을 선택할 권리

산책을 하다 시댁에 들른다.  산책길에 가끔 들리는 시댁은 우리에게는 동네 카페 같다. 벨기에 플랜더스에 살 때는 동네 주택가에도 간간이 카페가 있어서 가끔씩 들러 탭맥주 한 잔을 벌컥 마시곤 했다.  작은 동네 카페는 사랑방 역할을 해주고 인심 좋았던 카페 주인은  우리가 처음 갔을 때는 맥주도 공짜로 한 잔 주기도 했다.  지금 사는 곳은 주택가는 그냥 주택가다.



지난 일요일에는 시댁에서 맥주를 한 잔 얻어 마시고 나서 오래간만에 중국 음식도 먹었다. 네덜란드의 중국집의 메뉴는 중국 음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음식도 같이 판다. 메뉴의 반은 인도네시아 음식이다. 음식 맛이 현지화가 되어서 매운 음식은 거의 없고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할 정도로 다 달아서 내 입맛에 잘 맞지는 않는다.  남편은 사테 바비(땅콩 소스를 잔뜩 넣은 돼지고기 꼬치)를 시아버지는 사테 아얌((땅콩 소스를 어마 무시하게 넣은 닭꼬치)을 꼭 시킨다.   네덜란드에서는 핀다카아스(Pinda kaas-일명 땅콩 치즈)라고 부르는 땅콩버터를 싫어하는 편이 아니지만 땅콩 소스 범벅인 고기 꼬치는 영 아니다. 그렇게 땅콩 소스 범벅인 인도네시아식 네덜란드 음식에 대해서 자잘한 비판의 말을 내뱉기 시작할 때 '빤빠바바바~ 빤빠바바바~'하고 전화벨이 울린다. 핸드폰이 아니라 집 전화. 이제는 사용을 하기 위한 용도보다는 그저 계속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한 먼지 쌓인 장신구 같은 존재인 집 전화.  시아버지가 전화를 받으러 가신다. 거의 스피커폰인 집 전화의 수신기에서 나오는 쩌렁쩌렁한 여자 목소리.  내 옆에 앉아 계시던 시어머니가 깜짝 놀라신다. '멤(mem, 엄마)'   네덜란드 북쪽의 프리스란드 출신인 시아버지의 어머니. 우리 시할머니는 올해 100세가 되셨다.  날카롭고 카랑카랑한 목소리. 100세 노인의 목소리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시어머니가 너무 놀라신 이유는 시할머니가 전화를 하신 적이 그전에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할머니가 아들에게 갑자기 전화를 하셨다. 그 카랑카랑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는 어쩌면 너무 충격을 받아서 일지도 모른다.  매주 일요일 오후면 지인이 놀러 온다고 하셨다. 시할머니에게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말벗. 루미큐브 같은 보드게임도 같이 하고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도 하는. 시아빠와 시엄마도 익히 아시는 아주 친절한 분. 그런 그분이 오늘은 오지 않아서 전화를 해 보니 지난 화요일에 안락사를 했다고 하신다. 




 네덜란드의 '안락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안락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가 소파에 앉아 있고 그 옆에 남편이 그리고 친구들이 몇 명이 와 있다. 마치 티파티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그중 가장 젊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할머니에게 '이제 하겠다'라고 말을 한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저기 누워서 해도 되겠냐고 물어보는데 남자가 그냥 여기 앉아서 해도 된다고 말하고 주사를 놓는다.  그러고 나서 남자는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안락사를 시켰다고 전화를 한다. 남편과 친구들은 그저 앉아서 울기만 한다.  

네덜란드 의사이자 신경학자가 쓴 '우리는 우리 뇌다'라는 책에서 '가정의'를 고를 때 '안락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하라고 쓴 글이 있다.  -글쓴이는 안락사에 찬성이다.-  가정의가 워낙 부족해서 담당 가정의를 찾기도 쉽지 않은데 그걸 물어보고 고르는 사치를 할 여건도 되지 않지만.  가정의의 동의가 있어야 안락사를 할 수가 있다.



시할머니는 그러면서 나는 절대로 하지 않을 거야. 하지 않을 거야 하는 말을 반복하셨다. 

안락사를 선택하신 그분은 80세이시고 아내가  몇 년 전에 먼저 가신 후에 많이 우울해하셨다고 한다. 어떤 지병이 있었는지는 우리로서는 정확히 모르니 우울증 만이 안락사를 선택한 이유일 거라고 단정 할 수는 없다. 




태어나는 건 내가 정한 것이 아니다. 

죽음이라도 내 맘대로 정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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