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 영화 오프닝
*전체 작품이 아니라
영화 속 장면만을 들여다봅니다.
피나 바우쉬의 카페 뮐러. ‘그녀에게’ 영화를 여는 그 강렬한 무대 안으로 감독은 관객을 몰입시킨다. 피나 바우쉬 자신과 한 명의 여성 무용수는 얇은 나이트 슬립을 걸치고 무대 위를 활보한다. 특히 그중 한 명은 피나 바우쉬 자신. 그녀는 무용 x연극을 결합한 선구자로 세계적인 무용단체 탄츠테아터 부페탈 창립자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독일에서 2차 세계대전 동안 그리고 바로 직후에 카페를 운영했던 아버지의 일하는 모습 그리고 피나 바우쉬가 기억하는 카페에서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한다.
여성 무용수들은 한 명 씩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벽에 가서 부딪힌다. 마치 방화벽에 새가 부딪혀 쓰러지듯 무릎을 나란히 그리고 뻣뻣하게 유지한 채 바닥에 쓰러지는 장면을 연출한다. 뭔가 자연스러운 몸의 자세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자세이다. 바닥에 쓰러질 땐 마치 굳어있는 송장을 보는듯하기도 하다. 말랑말랑한 살아있는 몸이 아닌 뻣뻣한 느낌. 교통사고 당해서 응급실로 온 송장을 목격한 적 있는데 바로 그 느낌. 둘이 동시에 그런 동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반복하기 때문에 뭔가 그 장소가 정신병동 같기도 하고, 이들이 하는 행동이 정형 행동 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내 무용수는 일어나 무대를 활보한다. 이곳은 카페 안이다. 여자 무용수는 눈을 여전히 감은 채 재빠른 속도로 무대 위를 이동하는데 카페 안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를 한 (유일하게 정상인으로 보이고 무대에서 눈을 뜬) 남자 무용수가 더 빨리 이동하며 그녀의 방향을 간파하고 그녀가 부딪히지 않게 방해되는 물건들을 치워낸다. 위태롭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마치 몽유병 환자들이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눈뜬 상태’와 ‘활동’이 보통 함께 가는데, 이 무용극에서는 ‘눈 감은 상태’와 ‘활동’이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일단 마음이 꽤 불편하다. 뭔가 세상의 법칙을 거스르는 느낌.
무용수는 눈을 뜬 상태로 자신의 위험을 스스로 인지하고 피하는 대신 눈을 감은 채 카페 안을 활보하며 이곳저곳으로 돌진하는 위험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표정도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남자의 모습과 어우러져 보는 이에게 긴장감을 조성한다.
전통적인 발레에서 보는 스토리가 확실하고 기승전결 마무리가 되는 것과는 대조적인 관찰하는 사람의 판단에 맡겨진 작품.
피나 바우쉬는 ‘카페 뮐러’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냐는 질문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오히려 관객의 주관적 해석의 여지를 주었다고. 역시나 설명 없이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이 작품에 대해 많은 관객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불편하다. 정확히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는 지 모르겠다 등등.
그녀가 이곳에서 재현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감정(고통, 슬픔, 관계에서 오는 괴로움)과 자신의 기억이다.
기억. 그 사적인 기억에 대해 노출하지 않는 피나 바우쉬이기에 온전히 이 작품을 세세히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어떤 감정을 전하려고 하는지는 단번에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초기작 중 하나이다. 시간이 흐른 이후에 자신의 초기 작품을 돌아보며 그녀는 괴로운 감정에 초점을 맞춘 초기 작품들에 대해서 크게 입장이 변했다고 한다. 이미 세상에는 괴로움이 많기에 굳이 공연장에서까지 재현할 필요성에 대해서 고심했다고... 동의한다.
이 작품 전체를 관람한 이들이 이 작품에서 받은 느낌은 전반적으로 관계 안에서 오롯이 소통하지 못함으로써 오는 고통이었다.
이 도입부가 왜 알모도바르의 영화에 쓰이게 되었는지 이 둘의 공통된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고통스러운 기억 내지는 상처,
소통이 부재된 관계,
위태로운 관계,
한 명은 의식이 있는 상태
다른 한 명은 온전히 의식이 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관계성이라는
공통주제를 뽑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