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인유럽_몽생미셸.txt

천공의 성은 아니지만, 바다 위의 성 몽생미셸

by 감성호랑이




평일 낮 동네 목욕탕은 사람이 거의 없다.

아무도 없는 탕을 혼자 쓰고 있으니, 이 탕이 온전히 내 것이 된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어릴 적에는 친구들과 함께 동네 목욕탕에 자주 가곤 했다. 거기서 우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한 번씩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비밀이 새어나갈까 봐 자리를 한증막으로 옮겨서 몰래 이야기하곤 했다. 마치 동네 목욕탕은 우리들의 아지트와도 같았다.

뜨거운 온탕에서 누가 가장 오래 버티는지, 차가운 냉탕에서 누가 숨을 가장 오래 참는지 내기도 했다. 목욕을 마치고 나면 언제나 오락실로 향했다. 쾌쾌한 냄새가 조금 나지만 여러 오락의 효과음들이 섞여서 나오는 특유의 오락실 느낌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오락실은 언제나 목욕탕 여정의 피날레였다. 친구가 "야, 목욕탕 가자"는 말은 "야, 놀자"와 같은 의미였다. 그러던 어느 날 목욕탕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과 나눴던 이야기가 아직도 생각난다.


"야 우리 나중에 크면 미국 갈래?"

"미국에 뭐 있나? 뭐할라고?

"거기 자유의 여신상 있다 아니가. 그거 보러 가자. 그게 아마 63 빌딩보다 더 클걸?"

"내는 라퓨타 보러 갈 거다."


친구 중에 일찍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섭렵한 친구가 말했다. (친구의 형은 불법 CD를 여기저기서 구해오곤 했고 친구는 형이 구해온 CD를 500원에 빌려주곤 했다. 일찍이 장사를 시작했던 친구는 나중에 비디오 가게 사장님이 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가졌지만, 아마 지금 이 시간에도 회사에서 열심히 야근을 하고 있을 야근왕이 되었다.)


"라퓨타? 그게 뭔데? 외국에 있는 거가?"

"천공의 성 라퓨타라고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건데, 그게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하더라. 라퓨타는 하늘에 떠 있는 성이거든? 근데 외국 어디에 실제로 있단다. 멋있제?"

"... 돌았나..."


그 친구의 말은 90%가 거짓말이라서 친구들은 그의 말을 거의 믿질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친구는 너무 일찍부터 애니메이션을 많이 봐서 쓸데없이 공상력만 풍부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많이 지어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로부터 20년 후 나는 친구의 말이 완전히 틀린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다 위에 떠있는 성 몽생미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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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에 있을 몽생미셸
안개 때문에 보이진 않지만, 더욱 몽환적이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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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요새와도 같은 몽생미셸의 모습.
마치 그 모습이 천공의 성 라퓨타와 많이 닮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모습을 보고 천공의 성 라퓨타를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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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어두워지고, 몽생미셸에 밤이 찾아왔다.
캄캄한 어둠 속에 홀로 빛나는 모습이 정말 구름 위에 떠있는 천공의 성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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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었던 몽생미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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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전 천사 미카엘의 명을 받아지어졌다는 몽생미셸은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미카엘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듯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프랑스 노르망디와 브르타뉴 사이에 있는 작은 섬에서 몽생미셸을 보게되었고, 거기서 영감을 받아 '천공의 성 라퓨타'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라퓨타를 보고자 했던 친구는 아직 몽생미셸에 가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한지도 모르고 바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얼마전의 제 모습 같아서 짠하더라구요.

(한편으론 친구가 부럽기도 하구요..ㅎㅎㅎ)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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