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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의 정석

새글 에세이시

by 새글

수다의 정석


수다는 마음의 정화다.

말을 풀어내면서 쌓인 찌꺼기들을 토해낸다.

묵은 감정의 독기를 배출하기에 적합하다.

참아내기 힘든 자랑질 거리를 혼자만 간직한다는 것은 병이 된다.

마음속을 후련하게 비워내기에 입술만 한 통로가 없다.

"그래서 말이지, 그렇게 되고 말았어."

"그래? 그래! 그다음은 어떻게 할 건데?"

"내가 아니고 그이의 이야기지 말이야."

(사실은 내 이야기인 줄 다 안다는 걸 즐기는 거다.)

대화인지 말의 속사포인지 말 나눔의 유희가 그치지 않는 것,

듣고 있어도 그만, 딴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그만.

내가 지금 말하고 있다는 것,

말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유쾌지수를 높여준다.

주제에 맞지 않는 내용이 섞이다 다시 되풀이돼도 상관없다.

애초에 수다에 정해진 주제란 무의미할 뿐이다.

말의 주고받음이 멈추지 않을 것.

목청에서 비롯한 소란스러움이 소음으로 들리지 않을 것.

눈치 살피며 남 얘기, 내 얘기 구분하려 하지 않을 것.

맞장구는 기본, 추임새는 덤이어야 한다.

첫눈이 폭설로 내리고 있는 통창밖을 내다보며

조심스러운 여유를 즐기고 싶을 뿐이었는데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수다의 정석에

탁자에 내려놓은 커피잔이 달그락하며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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