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김열
낡은 구두
솔질하다 멈추고 본다
말표 구두藥 뚜껑 위에 그려진
앞다리 치세우고 갈기 휘날리며 달리는 흑마를 본다
따각따각 먼지 일으켜 질풍 속으로
뚜껑을 뛰쳐나와 잇달아 질풍 속으로 달려가는 말
구두약 둥근 뚜껑 안에서
말달리도록 맨 처음 고안한 사람의 마음과
손을 넣어 구두를 빛나게 닦아주는 푸른 풀밭 같은 마음을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와 풀밭 위로 밤을 누이는 말을 생각한다
아침이면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는 말
약을 발라 솔질 계속하자
돌멩이 걷어차다 상처 난 구두코 반짝거리고
현관 밖 햇살은 눈부시게 쏟아진다
누군가 금세 밖으로 나갔는지
대문이 활짝 열려 있다
날시예감
본명은 김수열이다. 나와 가장 가까왔던 친구 시인이다. 오랜만에 너의 시를 찾아 읽어 본다. 우리 못 본지가 한 십 년은 돼 버린 것인가. 내 무심함을 오늘 다시 절감한다. 산다는 게 이리 큰 핑계가 되어 버렸다니. 전화번호도 잊어버리고, 사는 곳도 놓쳐버리고 우리 뭘 위해 이리도 서운케 살고 있다냐.
낡은 구두를 끌며 너의 집으로 찾아가는 골목에 마중을 나와 손을 흔들어 위치를 알려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불편하지만 의지가 기개로 왔던 착하디 착한 시인아, 무척 보고 싶다. 네 구두를 보면서 구두의 자화상이나 되는 듯이 써 놓은 시를 오늘 손 부들부들 떨며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