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찬
눈의 묵시록
송종찬
갈 데까지 간 사랑은 아름답다
잔해가 없다
그곳이 하늘 끝이라도
사막의 한가운데라도
끝끝내 돌아와
가장 낮은 곳에서 점자처럼 빛난다
눈이 따스한 것은
모든 것을 다 태웠기 때문
눈이 빛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기 때문
촛불을 켜고
눈의 점자를 읽는 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연애도
전쟁도 멈춰야 한다
상점도 공장도 문을 닫고
신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성체를 받듯 두 눈을 감고
혀를 내밀어보면
뼛속까지 드러나는 과거
갈 데까지 간 사랑은
흔적이 없다
날시예감
사랑이 어디 형체가 보이는 것이었는가.
무형, 무음, 무미, 무향의 실체도 없는 것에
우리는 생명을 빛내거나 생명을 던져버리기도 한다.
한없이 어리석고 어린 일이지만
그래서 사랑은 더 매력적이고 포기할 수가 없다.
갈 데까지 간 사랑은 아름답고 흔적마저도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