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안간 네가 생각나서 울고 말았다
새글 에세이시
별안간 네가 생각나서 울고 말았다
멀리 가야 할 길을 나서며 운전대를 잡았다.
차갑던 핸들이 신호등을 두어 번 지나치자 훈훈해졌다.
살짝 가는 비가 내리는 도로는 어둠에 동화된 듯 검게 젖어있었다.
차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붉은류의 꽃보다 늦게 피는 흰 철쭉이
보란 듯 새벽달처럼 길을 밝히고 있는 것이었다.
별안간 등불이 밝혀져 있던 길에 대한
실루엣을 새겨놓고 등을 보였던 네가 생각났다.
있음과 없음의 모호함을 연결하며 착색된 회색 물감처럼
선명하진 않아도 배경같이 너는 나의 무의식의 언저리를
시간의 경과와는 상관없이 둘러싸고 있었던 거다.
눈물을 흘릴 순 없었지만 울상을 지으며 네가 그리워졌다.
꽉 쥐었던 손에 힘이 풀려 왼쪽 앞바퀴가 차선을 넘었었나 보다.
급박한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리고 나서야 정신을 추슬렀다.
가야 할 정해진 길에서 이탈해버리고 싶어질까 봐
덜컥 겁이 나서 참아 넘기려 했던 목젖이 열린 채 울고 말았다.
이토록 너에게서 멀리 떨어진 다른 길을 선택하기가 까다로워서
일상을 벗어나는 순간에도 애써야 하는 고단함이 두 배가 필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