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재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글 Nov 17. 2024

글밥

새글 에세이시

글밥


글을 밥처럼 지으며 살아가려 한다. 감정이 쳐지는 날에는 물을 조금만 넣어 고슬고슬 고두밥으로 지어도 좋겠다. 입안이 거칠 거리면 물량을 늘려 진밥으로 짓자. 그러다 떡밥이 되어도 어쩔 수 없지. 시장할 때 맡는 쌀 냄새만큼 다양한 냄새가 없다. 윤기가 기름진 자태의 밥알들이 서로를 보듬고 있는 밥솥에 얼굴을 들이밀면 기분을 안정시켜 주는 김이 빰을 뜨겁게 달궈준다. 흰 김이 구수하고 달작하다. 심신이 푸근해진다. 바깥사에 진탕 되었던 마음도 진정시킨다. 시달림을 주던 하루의 시름을 가셔준다. 밥 한 공기가 생을 보듬아주는 어머니다. 그래서 고봉밥에 수저를 들이밀기 전에 나는 경건해진다. 나를 위해 차려진 한상차림은 찬의 거짓수에 상관없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만찬이기 때문이다. 맛집 중에 유일하게 사랑으로 상차림을 한 각별난 제일 맛의 원조다. 글을 밥맛 나게 지어야겠다. 글밥을 맛깔지게 담아서 상을 차리자는 약속을 나에게 한다. 구색을 맞춰 형용사와 부사들에 견줄 반찬을 상위에 올린다. 맛을 돋우는 찌게거리를 손질해 개운한 국물을 메인 찬거리로 곁들여놓으면 밥맛이 더욱 깊어진다. 끓이는 국이나 찌개는 정성과 시간이 맛을 낸다. 첨가할 양념을 결정하고 넣어야 할 양과 시점을 잘 조절해야 한다. 밥과 어울리도록 상위에 배열을 마쳐야 비로소 거나한 글밥 한상이 완성되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무섭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