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영원
좋을 때
그날의 그들은 행복했을까. 사진 속의 사람들이 나를 본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모습들이 눈물겨워서 태양은 매일같이 햇볕을 쬐여주었다. 그런 일들이 일사불란하게 하루를 메워갈 무렵 또 다른 그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면 나는 짐짓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시작. 이미 시작되었던 것인지 도 모를 그 시작들이 생겨나던 사진 속의 그날. 그들에게서. 나는 도망치기 위한 노력들을 해오고 있었다. 예를 들면 사진 파일에게 능지처참을 내리듯이 Delete 키와 Enter 키를 세차게 내려친다거나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눈을 매섭게 쏘아 보는 것과 같은 치졸한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줍게 술을 마시던 것은 수줍을 때였다. 술이 수줍게 넘어가고 나면 표현의 수준들은 대담해졌다. 사람들은 ‘좋을 때’라고 말했고 나도 ‘좋을 때’라고 말했다. 지나치는 ‘좋을 때’의 사람들을 보면 “나의 ‘좋을 때’도 좋았지”라며 실실 거리고는 술잔을 비운다. 그것이 비워지는 것은 술잔만이 아니라면서. 되게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다보면 분위기가 딱딱해진다거나 서먹해지곤 하는데 그 빈틈을 쉽게 메우는 것이 잔과 잔이 부딪치는 소리이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은 소주잔의 중간 부분을 잡고 잔을 부딪치곤 하지만 나와 같은 경우 술잔의 맨 아래 부분을 붙잡고 부딪쳐 나는 소리에 매력을 느끼곤 한다.
좋을 때, 그의 행복했던 목소리가 들린다.
채풀잎 에세이 <보이지 않는 영원>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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