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 리뷰

페미니스트의 일기

by 오구TREE

소설로 등장한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것도 이슈가 된 지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당시의 나는 페미니즘과 거리가 멀었지만 그보단 유행에 탑승하기를 꺼려하는 성향 때문이었다.

이걸 읽지 않고서는 대화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러서야 책을 구입했다.

읽으면서 주옥(!)같은 현실성을 담은 문장 문장에 감탄과 눈물을 바쳤다.

그러나 그 후에도 딱히 삶이 변하진 않았다.

영화 제작 소식이 들려오고 주연이 공유라는 것에 그저 좋아하기만 했던 나는

개봉을 하는 2019년 현재가 되어서야 페미니스트로 나를 정체화했다.

공유가 주인공이라 좋아했던 내가, 공유가 주인공임을 걱정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영화가 책과 많이 다르지 않지만, 조금의 다름이 큰 차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 차이를 언급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책은 언제 읽은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터라,

비교하기보다 영화를 단일 작품으로 보고 리뷰해 보려고 한다.

영화엔 있지만 현실에 없고, 현실엔 있지만 영화엔 없는 부분을 짚어 보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엔 있지만 현실에는 없는

우선 느낀 점은 등장하는 아기가 너-무 순하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를 키워본 적은 없지만 많이 만나보았다. 그래서 조금은 안다.

아기들이 얼마나 손과 눈과 귀가 많이 가는 존재인지를.

하지만 영화에 나온 아기는 지나치게 순해서 엄마 지영에게 큰 짐을 덜어주었다.

그래서 영화 속 지영이가 현실 속에는 없는 사뭇 복 받은 엄마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실제 가사노동을 주로 하는 엄마들은 그보다 더 바쁘다.

현실에서 그렇게 순한 아기는 극도로 보기 드물다.


현실의 엄마란 존재가 그렇게 예쁘기도, 날씬하기도 어렵다.

혹자가 "거봐 애 키우고 살아도 날씬하고 이쁘잖아."라고 한다면 만 이천 원을 동전으로 바꿔서 던지고 싶을 것이다.

현실성 떨어지는 지영의 모습이 아쉽긴 했다. 그 모습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그 성별 중 누군가가 있을지 모르겠어서 말이다.

내 아이를 키우느라, 내 집안의 살림을 보살피느라 마음은 마르지만 몸은 살쪄간 아내에게

이제 더 이상 성욕이 생기지 않는다, 관리를 좀 했으면 좋겠다 등 어이없는 언행을 하는 이가 생각보다 많다.

술배를 두드려가며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아니, 살이 좀 찌면 어떤가. 날씬하고 예뻐야 한다는 외모의 기준은 그저 그 성별의 기쁨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아닌가.

아무튼 현실의 엄마는 영화 속 지영이 같을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엄마는 딸 편이다.

하지만 자꾸 "이쁘게 좀 꾸며라, 시집가라, 남편에게 잘해라"는 말만 들려오는 것은 왜일까.

왜 많은 여성 청자가 영화에 등장하는 엄마를 부러워했고, 울 수밖에 없었나.

영화에는 비범한 엄마가 등장한다.

남편이 아들 선물만 사 오고 딸들의 것은 외면할 때 그렇게 크게 소리쳐 딸의 편을 들어주는 엄마가 몇이나 될까.

사실 이 영화는 엄마가 하드 캐리 했다.

엄마의 역할로 인해 지영의 편이 있다는 따뜻한 방향으로 설정할 수 있었고,

엄마의 엄마가 목소리로 등장하면서 영화는 절정에 이르렀다.

세상의 모든 딸이 듣고 싶어 했을 목소리를 현실이 아닌 영화가 대신해주었고, 많은 여성은 눈물을 흘렸다.

그런 위로가 현실에는 없다는 것이 내심 슬프다.


-현실엔 있지만 영화에는 없는

남편 대현을 빼놓을 수는 없겠다. 사실 이 영화가 대중 각자에게 어떻게 해석되는지는 대현에 대한 시각만 보면 알 수 있다.

감독이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전반에 걸쳐 대현은 선하고 좋은 남편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게 과연 진짜 좋은 남편인지 되묻고 싶다.

대현이 귀가 후 맥주를 마실 때도 지영은 쉼 없이 가사를 하고 있다.

육아휴직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기가 찼다.

이참에 아기랑 시간을 더 보내고 책도 읽고 좀 쉬는 거라니.

육아는 결코 쉼이 아니다. 집에서 살림하고 육아하는 지영이가 그동안 쉬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픈 지영이를 보며 걱정하고 눈물 흘리는 남편이지 않냐고 대현을 감싸는 목소리를 예상한다.

반론하겠다. 아내가 아픈데 걱정도 눈물도 없으면 그게 남편인가.

그건 당연한 거지 대현이 좋은 남편이라는 증거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지영이 아프지 않았을 때, 즉 영화에서 그리는 신혼의 생활일 때를 보자.

"밥 줘, 애 낳자." 식욕과 성욕만 남은 발언.

"아이 낳으면 내가 잘 도와줄게." 음? 아이가 지영이만의 아이인가.

자신의 성까지 딴 자녀이면서 도와준다고 하고 자신의 집이면서 도와준다고 하는 것은 좋은 남편 절대 아니다.

영화를 보며 걱정한 한 가지가 바로 남편 대현에 대한 시선이었다.

대현을 올려치기 하는 것은 여성이 자신의 무덤을 파내려 가는 것이다.

현실에 대현 같은 남편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진짜 좋은 남편, '내가 할게'라고 하는 남편은 현실에도 영화에도 없는 것 같다.

(아버지와 고모들의 이야기를 더 하자니 두통까지 오는 듯해서 여기서 그만 해야겠다.)

크고 작게 지나가는 사건들은 현실 반영이 잘 되어있었다.

여성은 어떤 화장실에서든 경계를 늦출 수 없다.

밤길을 함부로 다녀서도, 교복을 조금 짧게 줄여서도 안 된다.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 하며 육아는 오롯이 여성의 몫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들은 귀하니 엄마를 도와 수저를 놓고 상을 차리는 것은 딸의 역할이다.

여자는 취직보다 시집이 우선이다. 힘들게 아이를 키우며 살아도 벌레는 여자가 된다.


누구나 이렇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당연한가. 부당함을 부당함으로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이것은 다 잘못된 일이라고.

오랜 시간 동안 잘못되어 온 일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결말을 통해 설명한다.

현실엔 찾아보기 드문 내용의 결말이다.

사회의 문을 열고 나아가는 지영과,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를 돌보는 대현의 모습이 말이다.

하지만 이 결말을 택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것이 감독이 바란 한국의 사회일 것이고 나의 바람 역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