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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 Aug 20. 2019

투자가 참 힘들다.

위대한 투자자들은 우리랑 달랐을까?

2010년에 처음으로 투자를 했다. 삼성중공업이었는데, 그땐 뭣도 모르고 투자를 했다. 단지 삼성이라는 이름이 좀 맘에 들었고, 안정적인 매출을 내고 있는 기업이라는 점도 맘에 들었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는데 그 말은 나한테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나는 첫 투자에 당당히 30%의 수익을 만들어냈다. 그때부터 투자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시작되었다. 미국 시장의 주가를 하루종일 바라보기도 하고, 옵션 시장에도 기웃거리며 상사가 불러도 가지 않았고, 자세히 알지도 모르면서 ELW상품에도 투자하며 콜옵션인데 기초자산 가격과 반대로 가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때는 하루종일 가격이 올라갔다 내려감에 따라 기분도 강제적으로 업다운되었고, 이런 투자생활은 무료하던 내 생활을 짜릿하게 만들어주는 적절한 오락거리였다. 메인 직장은 반도체 회사에서 설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부수입으로 생겼던 돈을 술마시는 데에 적당하게 썼던 것 같다. 그때는 아무런 부담없이 즐거운 투자생활을 했다.


 시간이 지나 사업도 하고, 회사도 옐로모바일이라는 웃긴 회사에도 팔아보고 들어가서 많은 좌절을 맛보며, 현실에 치여 투자를 거의 하지 못했다. 그나마 했던 것은 인도에 화장품을 수출하는 회사에 엔젤 투자를 했던 것과 암호화폐 투자정도... 그때가 2016년이었으니깐, 돌이켜보면 정말 좋은 타이밍이었다. 절호의 기회를 타이밍에 맞춰서 들어왔고, 지금은 투자회사를 공동창업하여 투자하고 있다. 재미로 투자하다가 전문 투자자로 강제 등판했다랄까? 보통 모든 실력을 갖추고 기다리면 운이 온다는데, 난 운이 먼저 왔고, 투자 회사를 공동창업자들과 같이 이끌어나가며 실력을 키우고 있다. 비트코인이 네이버 실시간 검색 1위를 차지하며 판이 커졌고 더 많은 인재들이 회사로 들어왔다. 세계 각지에서 투자를 받으러 한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라왔고, 우리는 평소에 영어 한마디하지 않다가 영어로 하루종일 미팅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영어로 외국인들과 패널 토론을 하고 있고, 행사에 참여하러 홍콩,싱가폴,대만,중국등을 돌아다니며 아침에 어색한 방안에 새하얀 침대에서 일어나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해외 돌아다니며 자기 소개만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프로젝트를 설명했고, 하루에도 몇십장의 명함을 받았던 것 같다. 다들 단기간에 엄청난 돈을 투자받기를 원했고, 실제로 투자를 받았다. 어느 순간 전세계 테크 씬에서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주류에 있던 회사들도 이 흐름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정말 단기간에 매우 훌륭한 투자자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외부적인 시선에 비하여 내부적으로는 치열하게 고민하며, 매 분기마다 조직이 바꼈다. 기존에 있었던 식구도 새로 들어온 식구도 다같이 모여서 회사의 본질에 대해서 열심히 토론했다. 투자란 무엇인가. 우리가 제대로 되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왜 우리는 이렇게 쓸데없는 곳에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가.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회사로 들어가면 우리가 쌓아왔던 유산에 대한 자랑스러움은 잠깐이고, 사춘기처럼 자기 존재에 대한 의미에 대한 생각으로 만들어진 무거운 분위기가 내 다리까지 감싸고 내려갔다. 나는 그럴때마다 잠시 무거운 사무실에서 나와서 내 머리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유난히 더 차가운 얼음 커피를 마시고 얼음을 씹어먹었다. 얼음이 다 녹아 내 체온과 같아졌을 때 다시 한번 내 자신에게 물었다. 우리가 지금 이순간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위대한 투자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기존에 투자를 했었던 내용을 회상하며, 극적이었던 순간들을 이야기해준다. 창업자와의 미팅하고 감명받아서 며칠뒤에 투자를 했다던지, 동아리같았던 대학생 무리들에게 거금을 투자했다던지, 고민도 안하고 투자하는 순간들을 회상한다. 그러면서 나도 똑같은 경험을 할 때 절대로 놓치지 않을거라 다짐한다. 마치 문제는 안 풀고, 답안지를 보면서 같은 유형의 문제가 나오면 반드시 풀겠다고 다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듣기에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업을 굳게 믿는 창업자 몇백명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가면, 나는 될 것 같은 이유와 안될 것 같은 이유를 쭉 적어놓고 오랜 고민끝에 더 배팅할지 다이(die)를 외칠지를 결정한다. 인터뷰 영상 또는 영화에서 나오는 멋진 이야기보다 건조하게 투자 프로세스가 진행된다. 더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수정한다.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했을 때 성공확률이 높다는 판단이 들면 투자를 진행한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는 미리 준비되어있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쉽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외의 성공보다는 예상된 성공에 배팅하는 것. 인터뷰로 생긴 투자자에 대한 로망은 서서히 깨져가고 있다.


 투자가 더 힘들다고 생각하는 건 철저하게 인간관계보다 숫자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사람을 믿고 투자를 하고, 미래를 믿고 투자를 했어도, 수익이 나지 않으면 좋은 투자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기대치가 맞지 않으면, 관계가 재설정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수익이 나더라도 다른 곳보다 덜 나는 곳에 투자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직장인으로 들어온 이상 피라미드 정상에 올라가는 길을 걷지 않으면, 중간에 나가야되는 것처럼, 투자도 끝나지 않는 레이스에서 끊임없이 실적을 개선해야되는 중생의 길을 걷게 된다. 이 길에서 적당한 건 없다. 모두가 야구선수처럼 프로페셔널이어야 한다. 기계같이 좋은 공이 오면 치고 안 좋은 공이 오면 걸러야 된다. 그 공이 내가 자주 쓰던 공이던 내 싸인이 있던 공이든 말이다. 타율을 높이고, 홈런을 많이 쳐서 승리하는 것, 그것이 투자자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선배 투자자들은 어떻게 걸어왔을까? 가끔 이런 것들을 토로하는 자리에서 마음껏 땡깡 부리면서 투자 선배들의 실패이야기나 잔뜩 들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막상 그러다가 전설적인 투자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하겠지. 그리고 난 감탄하겠지.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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