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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석 Jan 23. 2023

아름다운 죽음을 생각하다

설을 앞두고 장례식에 다녀와서

2년 전 이맘 때 할머니께서 100세를 앞두고 돌아가셨다. 그 해 설날은 우리 가족 모두 할머니 장례를 치르며 함께 보냈다. 성실하고 깨끗한 삶을 사셨던 할머니의 장례식에는 명절임에도 많은 분들이 오셨다. 꽃으로 가득히 장식한 관에 누우신 할머니는 아름다웠다. 

내일이 설인데 아침에 부고 문자가 와 있었다.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선배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명절을 앞두고 부고를 알릴 수밖에 없는 선배의 미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내 고민을 들어주고, 가까이 지냈던 선배였던 터라 고민 없이 가기로 마음 먹었다. 마침 장례식장도 집과 멀지 않았다. 
한평생 성직자로 사셨던 아버지는 늘 아침에 기도를 하셨는데, 돌아가시던 아침에도 기도를 하셨다고 했다. 기도를 하시던 중에 갑자기 뒤로 넘어지셨고, 심폐소생술을 하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까지 왔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얼마 전 가슴 통증이 있어 병원에 가보셨지만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고, 건강하게 지내셨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슬픔을 당했다고 했다. 
선배는 명절을 앞두고도 아버지를 알고 지내시던 분들의 문상이 많은 것을 보며 아버지의 건강을 좀 더 돌봐드리지 못해 자식으로서 죄송하다고 나직이 말했다. 선배의 가족 모두 큰 슬픔 가운데 있었지만, 나는 선배 이야기를 들으며 건강하게 지내시다 평소 하시던 대로 기도하다 돌아가신 고인이 존경스러웠다.
나는 선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렇게 아름다운 죽음도 있구나'하고 감히 생각하고 있었다. 고인이 매일 하시던 기도는 당신만을 위한 기도는 아니었을 테고, 누군가를 위한, 이 세상을 위한 기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고단한 삶을 사시던 중에도 성직자로서 가족들 앞에서도 정직하고 인격적으로 살았다는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재작년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작년에는 갑상선 수술을 받으며 내게 죽음은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가 아니다. 지금도 몸에 이상이 있거나 심한 피로감을 느낄 때면 병이 재발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생긴다.
죽음이 우리 삶과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삶은 더 깊어지지 않았다. 잠시 학교를 휴직하고, 선생님들을 지원하고 돕는 일을 하면서도 나는 누군가를 위해 매일 기도하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생각날 때 잠시 기도하는 게 전부였다. 대단한 일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면서 가족들을 소홀히 할 때도 많았다. 
설을 앞두고 선배 아버지의 장례식에 들렀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 지 생각한다.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아름답게 살아가던 분이 있었음을 기억하려 한다.
죽음은 내 뜻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의 삶은 내가 선택하고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이기에, 오늘 더 기도하며 웃으며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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