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수면 귀마개와 안대를 하지 않으면 잠을 깊이 못 잔다. 지내고 있는 자취방이 층간소음에 취약해서 윗집에서는 발자국과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리고 옆집에서는 천장도 뚫을 듯한 코골이가 들린다. 밤중에 귀에 꽂아둔 귀마개가 빠져 새벽에 옆집 코골이가 들렸는지 새벽에 깼다. 평소 새벽에 일어나려고 하면 안 일어나지더니 그렇게 일어나지도 않아도 되는 휴가에 이리도 일찍 눈이 떠진다. 침대 아래 두었던 페트병 물을 벌컥 마시고 어젯밤 전원을 꺼둔 전화기를 켜고 시간을 보니 새벽 다섯 시였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한참을 귀에서 빠진 수면 귀마개 한쪽을 겨우 찾아 다시 꽂고 자려고 누웠다. 잠이 오질 않았다. 수면 귀마개를 하고 방안이 캄캄하고 고요하고 어두운 새벽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 차갑고 차분하고 고요한 이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대를 이마 위로 올리고 귀마개는 그대로 한 채 노트북을 펼쳤다. 대학생 시절 시험공부와 과제를 위해서 산 노트북이 지금은 밥 먹을 때 유튜브를 보는 것과 용량도 얼마 차지하지도 않는 워드 파일에 작성하고 기록하는 글쓰기용이 되어버렸다. 학생 때 겨우 아르바이트를 해서 어렵게 장만한 노트북을 지금까지도 고장 안 나고 잘 쓰고 있다는 것이 은근히 뿌듯했다. 노트북 옆에 꽂혀 있는 USB도 대학생 때부터 쓰던 거라 그 시절 자료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이러니하게 요즈음은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맥북을 사고 싶은 욕구가 은근히 생긴다. 그래도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은 지금처럼 용도에 맞게 알뜰하게 쓰고 언젠가 중고로 팔거나 주변에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떤 글이든지 기록하고 남기는 모든 글은 USB에 저장하고 차곡차곡 쌓이는데 그럴 때마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난 어제와는 새벽부터 일어난 오늘이 대조된다. 어제는 대부분을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지하철로 왕복 2시간가량 되는 멀리 떨어진 카페에 갔는데 지하철 안에서의 시간은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시간으로 채웠었다. 어제 날씨는 음울하고 흐렸다. 카페는 광활한 갈대가 자란 길 너머에 수평선이 있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갔다. 평소 같았으면 2층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는 하는데 2층에서의 분위기와 카페 구조는 리모델링 되기 전과 너무나 달라 평소와 달리 1층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셨다. 카페에서는 주변과 풍경 그리고 사람을 구경하고서 읽다가 한동안 펼치지 못했던 안톤 체호프 작가의 <사랑에 대해서>를 다 읽었다. 책 속에 단편이 담긴 책이었는데 각 단편에서 나타나는 인물들과 내용으로 던져주는 의미들이 깊이 있고 다양했다. 각 단편이 주는 여운과 의미가 진해서 가방에 챙겨온 아이패드를 펼쳐서 각 단편의 의미와 생각들을 기록하고 남겼다. 개인적으로 이런 시간을 굉장히 좋아하고 사색과 통찰 그리고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게 해주는 고전문학이 좋다. 안톤 체호프라는 작가에 대해서 <사랑에 대하여>라는 책으로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또 이 작가의 책을 다음 달에 월급이 들어오면 한 권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 대하여>는 단순히 제목이 마음에 들었었고 그 당시에는 사랑에 관하여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서점에 들렀을 때 이 책을 보자마자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샀던 책이었는데 다 읽고서 보니 굉장히 좋은 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점심 즈음부터 카페에 있었는데 카페에서 나왔을 때 시간은 저녁 아홉 시였다. 카페 마감 전에 나왔는데 카페 바로 앞에 벚꽃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고 길 건너편에 바다가 있는 쪽으로 산책을 하다가 밤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해변공원을 거닐었다. 어두운 밤 아래 은은한 조명에서 비추는 자연이 아름다웠다. 그 아래서 흐르는 강과 소리도 귀를 호강시켰다. 지난 주말만 해도 마침 휴간데 혼자서라도 어디 멀리 여행이나 갈까 했는데 이날 날씨도 흐렸기도 했고 오랜만에 생각도 하고 사색도 했으며 긴 시간 동안 책을 읽는 이런 시간이 꼭 어디 떠나는 여행이 아닌 이러한 방식과 시간이 나다운 여행이었다.
새벽 여섯 시가 넘은 세상과 풍경은 새벽만의 색감으로 은은하고 환하게 세상을 비춘다. 오늘은 무엇을 하고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휴가다. 종종 휴가라는 것이 주는 이점은 세상과 사람 그리고 바쁜 일상에 허덕이다 잠깐 벗어나 온전히 나답고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이른 새벽부터 초롱초롱한 눈으로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이미 휴가의 절반은 성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