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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라 Dec 03. 2019

요즘 며느리지만 유리멘탈입니다 2

공황장애까지는 가지 않기를 



 친정의 이사 전 내 방에서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고 돌아왔다. 이제는 없어진 내 방. 그 방에서의 마지막 밤 나는 내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또 깜깜한 이불속에서 울어버렸다. 이제 정말 내가 숨을 수 있는 가장 안전했던 내 방이 사라졌다. 내가 오래된 드라마에서만 봤던 요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 출가외인이라는 것이 되었나 보다. 친정에서의 일주일은 밤낮은 바뀌었지만, 침대도 없었지만, 공기가 실외만큼이나 차가웠지만 그래도 마음은 한결 안정적이었다. 오랜만에 고향에서 친구들도 만나고, 주소지를 옮기기 전이라 미뤄놨던 건강검진도 받고, 은행 업무도 보고, 아직 옮기지 못했던 내 책과 옷들도 챙기면서 결혼 전과 같은 한 주를 보냈다. 이젠 돌아갈 수 없지만, 돌아가더라도 미래가 깜깜하겠지만 여전히 아쉬움과 괜한 설움이 마음을 쿡쿡 찌른다. 


 고향에 있는 아이 엄마인 친구 2명은 나와는 전혀 다른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정신적 심리적 불안은 보이지 않았다. 시월드의 괴로움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아주 많이 나오지만 이 두 친구에겐 포함되지 않는 것 같았다. 미혼인 친구 한 명은 나의 불행에 부정적인 말만 더 얹어 상대적으로 자신의 삶을 긍정화하는 친구라 굳이 안 좋은 얘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일주일 동안 꽤 솔직한 이야기들로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었고, 대신 구차함과 찌질함을 얻어서 돌아왔다. 






 돌아온 집은 온기가 있었다. 아끼던 식물은 그새 키가 컸고, 죽지 않을 거라 확신했던 다육식물이 의외의 죽음을 당해있었다. 신혼집은 보일러가 고장 나기 전보다 온기가 있었지만 내 방 같은 포근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도 잠깐 빌린 펜션 같은 느낌이 들어 어느 방에서도 마음 편하게 널브러지기가 힘들다. 분명 결혼식 전에 혼자 2주 정도 있었을 땐 이렇지 않았다. 그땐 거의 빈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아늑하고 안락한 나의 집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편하게 생각하려고 해도 편하지가 않다. 나의 6주밖에 안 된 신혼집 생활은 왜 이렇게 불편하게 변질되었을까. 


 친정의 이사가 끝나고 내 방이 없는 좁은 새 집을 둘러보며 신혼집과는 또 다른 불편함을 느껴 잠시 서성거리다 돌아왔다. 내 집이 아닌, 우리 집이 아닌,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의 집. 나는 이제 친정도 신혼집도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아서 수술을 할지 약물치료를 할지 한 번 더 의사의 소견을 들으러 고향에 내려가야 되는데 내 방이 없는 친정은 불편함이 신혼집 못지않아서 왕복 8시간이 넘겠지만 결국 당일 왕복표를 예매하고 말았다. 







 시댁 친척 결혼식이 끝나고, 친정의 이사도 끝나고, 텅 빈 신혼집으로 와서 보내는 첫 주가 시작되었다. 1주 전 결혼식에서 시부모님을 뵈었기 때문에 '2주 간격의 안부전화' 텀은 한 주가 더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신혼집에 돌아오면서부터 마음이 불안했다. 또 전화가 올 것 같았고, 또 같은 말로 나를 시달리게 할 것 같은 불안감이 나를 자꾸 괴롭혔다. 그래도 남편이 있을 때는 좀 괜찮았는데 남편은 주말에만 잠깐 왔다가 출장지로 가버리기 때문에 평일엔 시도 때도 없는 이 불안감을 혼자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한다. 


 아니나 다를까 낮에 시모께 전화가 왔다. 남편과의 대화로 평일 낮에 일하는 시간에는 투폰을 쓰거나 전화기를 끄거나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전화를 안 받겠다고 했었다. 오늘이 그 첫날이었는데 폰을 끄는 것도 투폰을 쓰는 것도 잠깐 잊고 있어서 결국 대낮에 전화기가 울리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받지 않았다. 나도 일을 한다는 것, 내 생활이 있다는 것,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전화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밀려있는 일들을 시작했다. 하지만 전화 벨소리 이후로 온 신경이 그 전화에만 쏠리면서 스트레스가 커피포트에 물이 끓는 것처럼 미친 듯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전화가 울린 지 3시간 정도 지났을까. 나는 더 이상 참기 힘들다고 느낄 정도의 두통을 느꼈다. 응급실을 가야 하나, 아직은 아닌가 고민을 하다 대충 외투를 주워 입고 수면양말을 신은 채로 약국에 가서 진통제를 사 왔다. 내가 이렇게나 빠릿빠릿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나 싶게 엄청나게 짧은 시간에 진통제를 사 와 입에 털어 넣었다. 빈속에 약을 먹으면 속까지 아플까 봐 약을 먹은 후에 밥도 평소보다 두 배나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고 있었다. 전화가 울렸던 오후 3시경부터 심장박동이 귀에 들릴 것처럼 지나치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진통제 약 빨은 생각보다 빨리 들었다. 머리를 깨고 싶었던 두통은 진통제 덕분에 나아졌는데 왜 그런지 심장이 빠르고 세게 뛰는 건 쉽게 가라앉지를 않았다. 거의 4시간 이상 심장이 크게 두근거리는 걸 의식하고 있었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그런 글을 봤다. 불안해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정상이지만, 심장이 두근거려서 불안한 건 공황장애 초기 증상일 수도 있다는 글이었다. 시댁 관련 생각을 하거나 전화만 와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뛰고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두통도 아주 금방 심하게 나타나고, 열이 오르는 게 느껴진다. 지나치게 무기력함과 좌절감 같은 게 뒤따라오면서 비관적인 생각과 다 멈추고 무르고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불안장애나 공황장애의 초기 증상을 겪고 있는 것일까.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정말 별 것 아닐 수 있는데 나의 예민함이 나를 낭떠러지로 밀고 있는 건 아닐까. 










 낮에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남편과 통화를 하셨을 것 같아 물어보니 남편에겐 전화는 오지 않고 문자만 왔다고 했다. 문자 내용은 역시 왜 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 건지 였다고 했다. 남편은 일을 하니 못 받는 게 당연하고 나는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기분이 안 좋았다. 남편에게 아내도 일을 한다고, 일이 많다고,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있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당신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한다고 했다. 사실 나는 남편이 그렇게 답장을 했을 거라 믿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의 대답은 너무 허무하게도 "알았어."였다. 어머니의 며느리가 왜 전화를 안 받냐는 말에 남편은 '일하느라 바쁜가 보지.'라고 답하지 않은 것이다. 슬프게도 정말 전혀 의지되지 않는다.



 저녁에 통화한 시모와의 통화는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첫마디는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냐는 거였다. 일을 할 때는 전화를 못 받는다는 걸 상기시켜드렸다. 이야기는 여지없이 김치로 이어지고, 시월드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시댁의 외가에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냥 언제 한 번 갔으면 하는데 시간이 언제가 괜찮겠냐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또 지난번 같은 이상한 화법의 말이 이어졌다. 


 "(시)아버지가 외할머니를 뵈러 28일에 충청도에 가야 한다는데 ~~ 너네 안 뵀으니 가야 한다는데, 나는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나는 눈치만 보고 가야 된다, 말아야 된다 아무~~ 말도 안 할 건데 ~~ 아버지가 간다고 하면 가야 해~~ 나는 아무 말도 절대 안 할 건데, 아빠가 가야 된다고 하면 가야 돼. 아버지한테 전화 오면 가야 되는 거야~~ 28일이야~~ 아마 전화를 할 거야. 안 간다고 하면 난리 나~~~ 그래도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눈치만 보고 있을 거니까 그렇게 알어~~~ "


 이게 무슨 말인지 내가 이해를 못 하는 건지 머리를 굴려보았다. 시모의 말씀은 남편의 외할머니, 그러니까 시모의 어머니를 뵈러 가야 한다는 건데, 시모의 어머닌데 시모는 안 가도 상관없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눈치만 보고 있을 건데, 시모의 남편이 장모님을 뵈러 아들 며느리를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야 한다. 안 간다고 하면 시모가 아니라 시부가 화가 나서 난리가 난다. 이 말씀인데 이게 뭔 소리야.


 지난번에 전화 독촉할 때도 시어머니는 시아버지를 교육시켜 앵무새 같이 나에게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버럭 거리게 만드셨는데, 이번에도 같은 방법을 쓰시는 것 같았다. 내가 시어머니의 말은 안 들어도 시아버지의 말이면 무서워하면서 들을 거라는 생각을 하시고 처음부터 이런 화법을 구사하시는 것 같은데 그 속이 너무 투명하게 보여서 기분이 좋지 않다. 남자 어른을 앞세워 공포심을 조성하면서 압박하는 건 그냥 치사하고 비겁해 보일 뿐이다. 그냥 집안 어른이 계시니 한 번 뵈러 가자고 하거나, 아님 본인의 아들에게 말을 해서 나와 날짜를 맞춰보라고 했으면 간단할 일을 왜 굳이 저렇게 협박을 해야 하는 걸까. 왜 나를 겁주고 싶어 안달인 걸까. 


 나는 이 시대 최악의 아버지상의 딸로 자랐고, 가정폭력을 종류별로 다 겪으며 나를 지키기 위해 기를 쓰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웬만한 강압이나 협박은 나를 더 차갑게 식게 만들 뿐, 나를 자신들의 캥거루새끼처럼 조련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시월드 콤비께서는 자기 캥거루아들처럼 나를 겁을 주며 훈련시키려고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짜서 행하고 있다. 그게 나를 더 한없이 멀어지게 만든다는 건 모르고. 


 나를 괴롭히는 건 어디까지나 내면의 선하고 물러 터진 나 자신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내 극단적인 보호본능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칠까 두려운 마음이지 타인이 공포스러워서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나를 괴롭히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건 성공했다. 나는 스트레스의 숙주가 되었고 나의 괴로움은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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