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철 Jul 14. 2016

책을 따라 떠나는 여행

<<앗 뜨거워 (Heat)>>를 읽고

이탈리아로 돌아가 이번엔 제대로, 다시 말해서 오래, 머물러야겠다고 작정했다. 그게 얼마가 될지는나도 몰랐다. 잠깐? 잠깐의 두 배? ?)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이 거머리 같은 느낌이 사라질 만큼 오래. 마크는 몇 년쯤 머물 생각이었다. 나는 몇 년까지는 곤란하지만 (안 될 건 뭐람?) 얼마가 됐든 당분간 이탈리아로 돌아가야 한다는건 분명했다. 안 그러면 남은 평생을 후회하며 살게 될 것 같았다.

- 빌 버포드 ‘Heat 앗 뜨거워’ 中



이태리행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자마자 책 한 권을 꺼냈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10년 전에 읽은 책, 빌 버포드의 ‘앗 뜨거워(heat)’에 나오는 고기의 신을 만날 때가. <<뉴요커>>의 기자였던 저자는 고기의 신이라 불리우는 다리오 체키니에게 고기의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 이태리시골, 판자노로 떠난다. 그리고서는 방금 짜낸 올리브유와 방금 낳은 붉은 달걀, 그 지역의 포도로 만든 키안티 와인 그리고 대량생산으로 길러지지 않은 가축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 7개월을 보낸 후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은 그곳에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빌 버포드는 고기의 신을 영접하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뒀다는데, 나는 휴가 중 하루만 바치면 고기의 신을 만날 수 있었다. 내 위장이 버텨낼 수 있는 한에서 마음껏.


버스를 타고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마을, 판자노에 있는 체키니 정육점으로 갔다. 한국에서부터 그 정육점의 대표 고기 만찬을 예약해둔 터였다. 15명 정도가 한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3시간이 넘도록 스테이크를 먹는 프로그램. 테이블보에 ‘속을 비우고와라. 우리는 조금만 먹을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당당하게 써놓은 식탁에 드디어 앉았다. 남편과 나를 빼고는 전부 이태리 사람들이었다. 밀라노에서, 이태리 저 남쪽에서, 이 식사를 위해 그들은 기꺼이 몇 시간을 운전해왔다고 말했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영어에 서툴렀고, 우리는 이태리어에 무지하니, 우리의 언어는 스테이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식탁 위에는 각종 채소가 차려져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죄책감을 가리기 위한 용도였다. 우리의 시선은 압도적인 고기로 향했다. “이걸 우리가 다 먹는다고?” “다 먹으려면 100명은 필요할 것 같은데?” 우리는 시작부터 기가 질렸지만, 고기의 신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큰 덩어리를 숯불에 턱하니 올려놓는 것부터 식사는 시작되었다. 우리 접시엔 키안티식 육회가 올라왔다가, 야들야들하게 다진 고기를 숯불에 구운 고기가 올라왔다가, 분명 한국에서는 1인분이었을 스테이크가 몇 덩이 올라왔다가 끝없이 사라졌다. 그 속도에 맞춰서 와인도 끝없이 비워졌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엄청난 크기의 티본 스테이크가 숯불에서 내려왔다. 두 시간 내내 고기 장인이 이렇게 돌리고, 저렇게 살펴보며 구운 스테이크가 각자의 접시에 빠르게 올려졌다. 이미 술과 고기에 마음껏 취해버린 우리는 혀를 내둘렀다. 먹을 수 있을까. 내 위장은 아직 괜찮은 걸까. 찢어질 것 같은 배를 만지며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내 옆의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딸과 같이 고기를 먹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이태리 할머니. 하얀 백발에 작은 몸짓. 느릿느릿한 움직임. 난 처음부터 이 할머니가 걱정이었다. “내 옆에 할머니 좀 봐. 저 분은 몇 점 못 드실 것 같은데?”라며 식사 시작 전부터 할머니를 힐끔거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당당히 또 접시를 내밀었다. 그리고 처음과 똑같은 속도로 오물오물 드시기 시작했다. 이런 할머니를 내가 걱정하다니. 할머니도 이 코스를 내내 잘 따라왔는데, 내가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기를 입에 넣었다. 2시간 넘게 먹고 있는 고기에 다시 한 번 탄복했다. 고기가 그럴수도 있었다. 3시간 넘게 고기의 신을 영접했다. 서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웃었다. 말이 안 되는 고기를 먹고있다는 걸 서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3시간 동안 눈빛을 주고 받았더니 말이 안 통하는 이태리 사람들과도 이미 친구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제일 수다스러운 아저씨가 비틀거리며 우리에게 술잔과 술병을 들고 왔다. 한국이나 이태리나 술꾼들은 다 똑같았다. 낯선 사람일지라도 우선은 술을 먹이고 보자. 자, 한 잔 받아. 술을 따르며 아저씨는 우리에게 물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

“버스 타고…..”

그 순간 모든 남자들은 야유를 보냈다. 뭐야, 우리는 이렇게 술 마시고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너는 버스 타고 왔단 말이야? 그럼 더 마셔! 뭘 망설이는 거야! 우리에게 술을 따르던 아저씨도 요놈들 잘 걸렸다는 표정으로 술을 콸콸 따르기 시작했다. 그때 몇 시간 동안 한 마디 말도 없이 고기를 서빙해주던 직원이 한 마디 툭 던졌다.

“버스를 운전한대.”

술 따르던 아저씨가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그렇다면 술을 안 마셔도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순간 누구랄 것도 없이, 백발 할머니까지, 모두들 웃기 시작했다. 3시간 동안 먹은 고기가 다 소화될 것처럼 모두가 웃었다. 웃으며 다같이 건배를 했다. 우리만의 카니발을기념했다. 같이 사진을 찍고, 같이 노래를 부르고, 같이 또 술을 마셔버렸다.

식사가 끝나고 나오니 벌써 4시간이 지나있었다. 10년 전 책에서 읽었던 이곳을 잊어버리지 않고 찾아본 나를 기특하게 여기기로 했다. 순식간에 툭 튀어나온 배는 책을 이토록 성실히 소화해낸 나에게 주는 상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육식주의자에게도 철학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로 했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벌게진 얼굴과 볼록해진 배가 그 사실을 이토록 여실히 증명하는데. 다정한 사람들과 그 배를 맞대고 인사를 나눴는데. 우리가 고기의 신을 믿지 않는다면 다른 무엇을 믿겠단 말인가.




낯선 공간, 낯선 시간, 낯선 사람들을 탐닉하는

한 카피라이터의 기록입니다.

더 많은 기록이 궁금하시다면.

http://durl.kr/cobqt6


작가의 이전글 일상을 떠나, 일상에 도착하는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