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민기 Feb 07. 2021

고백하건대, 나는 소심한 지구방위대이다.

그 시작은 지렁이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소심한 지구방위대이다.
지구에서 동물과 사람이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고 서로 침범하지 않으며 사이좋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 그렇게까지 라고 말하는 타인 앞에서  예민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고, 거대한 쓰레기 더미 앞에서 한없이 무력감을 느끼며, 때때로  몸이 편한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이 충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심한 지구방위대는 계속될  같다.


 시작은 아마도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지렁이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자연 시간에 지렁이에 대해 배웠다. 지렁이는 흙을 먹고 소화시키면서 좋은 영양분을 배설한다고 했다. 심지어 어떤 지렁이는 쓰레기를 먹고 분해시키기도 한다고. 다리도 없고 얼굴도 없어 징그럽다고 생각했던 지렁이가 귀엽고 대단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귀엽고 대단한 지렁이는  속에서 산다. 그래서 비가 오면 젖은  밖으로 나왔다가, 비가 그쳐 흙에 물이 빠지면 다시  속으로 들어간다.  안에서 다시 흙을 먹고 영양분을 배설하며 나무와 꽃과 작은 동물들에게 이로움을 주며 살아가는 것이다.
 
비가  다음 .
하굣길에  귀엽고 대단한 지렁이를 만났는데, 사람을 위해 만든 아스팔트 때문에 지렁이는 흙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스팔트 위에서 힘없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살려줘!”라고 말하는  같았다. 아스팔트를 누리며 사는 나는 지렁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얼른 지렁이를 화단 속으로 보내주었다.  손으로 작은 생태계를 지켰다는 뿌듯함과 왠지 모를 안타까움.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지구방위대의  경험이다.

요즘도 비가  다음 날이면 종종 지렁이를 만난다.  개체수가 줄어드는 것인지, 아스팔트가 너무 많아진 탓인지, 지렁이를 만나는 일은 점점 줄어들지만, 아스팔트 위에서  길을 잃은 지렁이를  속으로 보내주는 . 그것은 여전히 나의 작은 임무다.
지구가 아스팔트로 뒤덮여 작은 동물들이 집을 잃진 않을까, 지구에 사람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운 마음이 자주 찾아온다.
그리하여 조용히 남몰래하고 있는 소심한 지구방위대의 활동을 하나씩 기록해보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