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서영 Dec 27. 2022

격리 해제 후 써보는 코로나 일기

의학적 지식 없음.



1. 어디서 옮았는지는 대충 예상이 간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날이었고 전부 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한 친구가 내 음료 바로 위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때 직감했다. 아, 나 오늘 코로나 걸리겠다.


2. 그게 금요일이었고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월요일이었다. 목 안이 근질근질했다. 최근 침도 못 삼킬만큼 아픈 적이 몇번 있긴 했지만 그건 대부분 감기가 아니라 목 천장에 궤양이 생겼던 거라 이건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열도 없었고 가래도 없었고, 코만 조금 찔찔. 이것저것 맛을 봤는데 미각은 멀쩡했다. 그냥 목감기인가 싶어서 목감기약을 먹었다. 남친이 코로나 같다고 내일 병원 가보라길래 알았다고 했다.


3. 다음날, 가정의학과에 갈지 이비인후과에 갈지 고민하다 순전히 이비인후과 근처의 만두가게에서 만두가 먹고 싶다는 이유로 이비인후과에 갔다. 눈이 많이오던 바로 그날이었는데, 다행이 가는 길에 오다 그쳤다. 오랜만에 간 이비인후과의 접수대는 키오스크로 바뀌어있었는데 아주 거지 같았다.

접수 방식이 주민등록번호 입력인데 주민등록번호가 훤히 노출되는 구조라 우산으로 가리고 등록을 해야했다. 그것만 거지 같은게 아닌지 내가 접수한 뒤에도 여러 환자들이 키오스크 사용법에 대해 몇번이고 물었고(바로 옆에 꽤나 대문짝만하게 사용방법이 안내되어 있었지만 아무도 읽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계속 접수대 뒤와 키오스크를 오가며 환자들의 불만을 상대하고 있었다. 누가 칼들고 와서 설치하라고 협박한게 아닌 이상 저런 고철덩어리를 설치한 이유가 대체 뭘까 싶었다. 아, 설마 곧 다가올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을 대비하기 위한 것일까. 죄송합니다 기계님.


4. 의사 선생님은 목감기인 것 같고, 며칠 전 앓은 식도염으로 인해 목이 상해서 기침이 나는 것 같다고 했다. 가습기 같은 거 계속 틀어서 건조하지 않게 해주시고요, 그러는 의사선생님에게 내가 계속 코로나가 아닐까요? 하고 물으니 아닌 것 같지만 검사는 해보겠다며 순식간에 입과 코를 후비셨고, 잠깐 나가있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3분도 안되어 다시 불려들어갔다. “제가 다시 들어오라고 하는 건 좋은 사인은 아니에요.” 양성이었다. 코로나 맞잖아요 우쒸


5. 처음 나온 처방전을 폐기하고 증상에 맞는 약을 다시 받았다. 쌍화탕도 두개 샀다. 병원을 나오니 왐마야, 눈이 미친듯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병원까지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지만 올라오는 길은 당연히 그 반대라 집에 올때는 버스를 탈 생각이었는데 양성이 나오니 대중교통을 탈 수 없었다. 만두를 미리 사서 다행이었다.


6. 만두를 패딩 안에 안고 미친 눈보라를 뚫고 집에 오니 열이 나기 시작했다. 칩거의 시작이었다.


7. 백년만에 마켓컬리에 들어가 포카리스웨트와 과일을 주문했다. 금요일과 일요일 사이에 만난 사람들에게 자가진단키트를 해보라고 연락을 돌리고, 만두를 먹고 약을 먹고 잤다.


8. 이튿날이 되니 조금 더 증상이 심해졌다. 가습기를 틀어두니 기침은 덜한데 켈록켈록이 아닌 쿨럭쿨럭 가래가 느껴졌다. 보통 감기는 가래가 끓기 시작하면 낫는 거랬다. 물론 아닐 수도. 그냥 나의 짧은 의학적 소견일수도. 그 외에는 두통이 좀 있었고 열이 났다. 미역국과 냉동해 둔 만두를 먹고 약 먹고 또 잤다. 진짜 아픈 내내 하루에 잠을 14시간쯤 잤다.


9. 사흘째부터 열은 없고 가래만 끓었다. 기침은 가습기만 틀면 거의 나지 않았다. 그렇게 거진 일주일내내 잠, 밥, 약, 잠, 밥, 약의 연속. 밖에 못 나가는게 답답하지 읺았냐고? 난 웹툰작가다. 3일정도 아예 집 밖을 안 나가는 건 예삿일이고 마감이라도 겹치면 일주일 쯤은 껌이다. 아프다는 핑계로 마감 안하고 집에 있는 책 겁나 읽고 넷플릭스로 드라마 보고 왓챠로 영화 보고 티빙으로 교양프로 봤다. 난 한달 감금해도 잘 살거다. 사실 못나가서 힘든 것보다는 격리기간과 한파가 딱 겹쳐서 빨래를 못하는게 고통스러웠다. 안그래도 겨울만 되면 온수가 애매하게 나오는데 이번에 샤워하려고 몇번 시도했다 폐렴급행열차 탈 것 같아서 몸만 닦고 나오고 머리만 감고 나왔다. 풀샤워하고 싶다.


10. 하여간 정리하자면 증상은 첫 사흘이 제일 심했다. 처방받은 약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고, 그 후로 지금은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찬물을 마시면 기침이 나는 정도다. 가래는 거의 없다. 의사선생님이 끝물에 갑자기 증상이 다시 생기는 경우도 있다니까일단 이대로 지나기를.




+ 에필로그


후유증이 1주일 후에 왔다. 그것도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당일에.

머리가 뽑힐 것 같은 두통과 어지럼증, 울렁울렁 거리는 속. “숙취”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이 하루종일 이어졌다. 뭘 먹어도, 심지어 약을 먹어도 몽땅 토하는 바람에 하루종일 누워서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찾아보니 남성에게는 호흡곤란과 인지능력 저하가 후유증인데에 반해 여성은 우울감, 두통, 복부 증상이 후유증으로 드러난다고 했다. 어쩐지. 이틀 전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으로 설사병으로 앓아누운 남자친구를 들들 볶았는데 역시 내가 내가 아니었던 거다.(라고 믿고 싶다. 남친 미안해)


그 외에 후유증이라고 하면 신경증이라도 해도 될만큼 후각이 예민해져서 조금만 공기가 답답해도 잠을 못자는 것.. 정도? 하여간 가능하면 다들 안걸리시길 바란다. 실내 마스크 해제 같은 소리 들리던데 헛소리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내가 3년내내 한번도 안 걸린게 기적이다.(당연함. 밖을 안나감)


코로나 안끝났다. 다들 멸종되지 않게 조심해.





크게 앓지는 않았지만

코로나에 가장 효과 있던 3가지


1. 밥

2. 잠

3. 가습기


3일 격리 같은 개소리하지마라

매거진의 이전글 구름 산책자 (~23.01.0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