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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Jan 20. 2019

나는 레트로를 혐오한다.

애초에, 진짜 레트로라는 것이 존재할까?

레트로란 무엇인가.


복고주의, 'Retrospect(회상, 회고, 추억)'이 어원으로, 옛것((패션, 미감, 생활양식, 문화 등)을 그리워하며 본뜨는 현상이라고 한다.


위 설명만을 놓고본다면, 그야말로 모든 것이 레트로라 할 수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기 때문에 뭐든 레트로가 될 수 있고, 어느 시대든 레트로가 될 수 있다. 즉, 1900년대에 유행했던 모단걸, 모단뽀이 플래퍼룩도,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캔모아의 그네마저도, 그것의 미감이 어떠하였고를 떠나 한때를 풍미했던 것은 사실이기에 현대에 와 재해석이 된다면 어쨋거나 레트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레트로는, 당췌 정체를 모르겠다.

https://1boon.kakao.com/yanolja1/5b3c9d4d6a8e5100019526d7


1970년대의 새마을 운동을 본딴 것인지,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던 서울 올림픽 복고인지, 아니면 대중문화의 황금기였던 동시에 외환위기가 휩쓸고 간 1990년대인지 말이다. (절대로 한국전쟁 이전의 시대는 아닌 것 같으니) 혹은, 그 모든게 짬뽕일 수도 있겠지. 아니, 그 짬뽕이 맞는 것 같다.


특히 익선동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는 이 정체불명의 레트로를, 나는 난개발 레트로라고 부르고 싶다.

진짜 과거의 것, 을지로, 익선동 등을 밀어버리고 그 위에 세워진 정체불명의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 시대에 초점을 맞춰, 마치 박물관 처럼 복원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과거와 현대의 만남을 대환영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바로 그 옛것과 현대의 것이 만났을 때 지금 유행하는 난개발 레트로보다는 좋은, 세련된, 속된 말로 "깔쌈한" 무언가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재해석이라고 주장하는 것의 미감은 정말, 너무도 구리다.


초록색 멜라민 접시 위에 대충 얹은 음식과, 제대로 씻기는 했는지 의심스러운 잔에 담겨나온 음료. 아무리 무심한 듯 시크한 것이 컨셉이라지만, 적어도 "꼴"은 제대로 갖춰야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아무래도 요즘 세대를 못 따라가는 건가? 그런 와중에 또 음식도 음료도 맛이 없다. 그것이 식당, 카페의 주된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  가 2다.    요.


인테리어(라고 부를수 있나 싶을 정도로)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위험하고, 늘 벽의 한 구석은 당장에라도 폐결핵에 걸릴 것 같은 곰팡이가 슬어 있는데다 덜발린 시멘트 바닥에는 석면가루와 먼지가 뭉쳐 날아다닌다. 그리고 그것을 어두컴컴한 조명으로 필사적으로 감춘다. 왜 그 시대의 비위생마저도 분위기랍시고 들고 오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곳은 과거 목욕탕이었던 곳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데, 과거 목욕탕이라고 한다면 "뜨거운 물이 귀해서 1주일에 한번 가서 씻고 오던" 그런 곳에서 정말 음식이 넘어가는지 나는 정말로 궁금한다. 위생, 서비스, 맛이라는 요식업의 3박자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분위기"라는 단어로 퉁칠 수 있는 것이냐고 묻고 싶다. 


그리고 그 분위기라는 것 마저도 나는 그들이 도대체 어느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제대로 과거의 것에 대한 이해도 없이,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고민도 없이, 그저 낡은 것만을 가지고 와 세운 것을 레트로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저 답습만 하는 것, 나는 그것을 퇴행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는 이런 난개발 레트로가 유행이 제대로 된 의자에 앉아, 제대로 된 식탁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제대로 된 음료를 마시는 것- 그것을 향유하는 세대에게 그것마저 사치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로 된 를 할 가 는 고 다. 진짜, 가짜 레트로를 따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레트로 유행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가짜 취향'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유행이 정말 자신의 쌓아올린 취향인지, 남으로부터 온 취향인지 생각하지 않고 향유하는 것, "힙하다", "인싸"라는 뭉뚱그려진 단어로 그것을 스타일이라 칭하는 것. 최근에 동묘가 힙스터라 불리우는 젊은이(내가 이 단어를 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들의 성지가 된 것도 이런 난개발 레트로의 연장선상 아닌가 한다. 


제대로 만든,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한 벌의 옷은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비싸다. 그래서 그들은 동묘에서 누군가가 버린 옷을 싼값에 산다. (그중에는 십수년전 누군가의 옷장안에 있었던 낡은 옷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스타일이라는 이름 아래 싼값에 사들인 옷을 겹겹이, 비슷비슷하게 껴입는다. 가난이라 쓰고, 복고라고 불리우는 스타일을 유행이라고 주장하며 말이다. 


애초에 누려본적이 없음에도, 혹은 누려본 적이 없기에 과거의 것을 칭송한다. 레트로라는 이름 뒤에 가난을 숨기고 그것을 멋이라 칭한다.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없기에, 맞지도 않는 옷을 오버사이즈라며 여러겹의 옷 위에 걸쳐입고, 꼭 그와 어울리는 누르스름한 카페에 앉아 존재한 적도 없는 뒤섞인 향수를 누린다.


기성세대가 버린 것을 누덕누덕 주워입는 현세대.

현대의 레트로란, 결국 슬픈 젊은이들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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