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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Dec 24. 2017

01. 내가 좋아하는 한복에 관해서.

비정기 한복 패션 에세이

나는 한복을 좋아한다. 하지만 동시에 한복을 싫어한다.
아니, 한복을 한복같이 입는 것을 싫어한다고 함이 옳겠다.


내가 한복을 고를 때는 나만의 철칙이 있다.


1. 견단, 모시, 면 등, 전통 한복 소재의 한복을 고르지 않는다.
2. 패턴은 화려한 것을 선호하지만, 꽃무늬나 평범한 패턴은 피한다.
3. 너무 얇은 소재나 반짝거리거나 매끄러운 소재는 피한다.
4. 디자인이 특이해도 만듦새가 어줍잖은 것이나 한복 같지 않은 한복은 고르지 않는다.
5. 이만한 가격을 주고 살만한 옷인지 고민한다.


특히 5가 제일 고민 되는데, 사실 한복은 기존이고 생활이고 대부분 비싸다. 자주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디자인도 아닌데 비싼 옷은 옷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장식품이지. 나는 적은 옷을 다양하게 연출하자는 주의이기 때문에 옷을 고를 때 꽤 심혈을 기울이는 편이다.


한복을 입을 때도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다.
1. 저고리, 치마 중 하나만.
2. 함께 매치하는 아이템은 지극히 간결하고 현대적일 것. (ex. 저고리+하이웨이스트 바지 / 철릭 원피스+라이더자켓+첼시부츠 / 허리치마+벨벳초커탑)
3. 메이크업, 헤어, 악세서리는 화려하게.

촬영: 이재혁 (춘괭, @springofcat)



저고리와 치마를 같이 입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코스프레 같기 때문이다. 경복궁이나 인사동, 전주 한옥마을에 들렀을 때 입는 이벤트성 코스튬이 아니라, 평소에도 한복을 입었으면 한다. 마치 옷장에서 A라인 스커트를 꺼내 입듯이 허리치마를 입고, 트렌치 코트를 입듯 두루마기를 입고 싶다.


그래서 한복을 고르는 철칙의 4는 사실 아이러니인데, 첫째, 랩원피스가 유행하면서 랩원피스를 철릭원피스랍시고 파는 곳이 많아졌기 때문이고, 둘째, 플레어로 떨어져야하는 디자인이 밋밋하면 차림이 전체적으로 허접해 보이기 때문이다. 옷을 짓지 않으니 잘은 몰라도 그건 속치마 한두개로 해결 될 문제가 아니라, 허리의 치맛단을 얼마나 잘 잡는지 기술의 문제인데, 퓨전이 되려면 기본기가 탄탄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 결국 허접한 옷을 사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기본이 되지 않는 주방장이 만든 퓨전음식이 니맛도 내맛도 아니듯이, 기본을 모르는 사람이 지은 옷은 그냥 흉내만 낸 코스튬에 불과하다.


그래서 딱 봤을 때 한복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한복은 싫다. 나는 한복 그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한복이라는 이름이 주는 고루함에서 벗어나고 싶다.


사실, 아직까지도 마음에 쏙 드는 저고리는 찾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한데, 사실 한복은 내가 강조하고 싶은, 나의 체형의 포인트를 모두 가리는 옷이기 때문이다. 나는 서양인 체형과 동양인의 체형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큰 키, 가슴, 가는 허리와 큰 골반과 엉덩이가 전자, 가는 목과 팔, 좁은 어깨가 후자이다.


한복은 양장이나 기모노와는 달리 높은 목깃이 목을 감싸고, 짧은 저고리가 가슴을 덮는다. 주로 유통되는 둥근 붕어배래는 가는 팔을 가리고, 커다란 치마는 허리-골반-엉덩이를 모두 가린다. 결국 남은 건 좁은 어깨 뿐인데, 가슴 때문에 저고리와 원피스 형태의 치마가 모두 뜨는데다 키도 크니, 전체적으로 내 실제 체형보다 커다래 보인다.


이미지 출처: 한양주단



현재 생활한복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디자인도 크게 다를 바는 없다. 요즘 나오는 생활한복의 저고리는 거의 칼배래나 직선배래라(팔에 딱 붙는 디자인) 팔은 가늘어 보인지 모르겠으나 저고리의 앞섶은 거의 직선으로 떨어져, 가슴을 누르거나 가슴 아래에 공간이 남아 그 부분까지 체형의 일부로 보이게 만든다. 이 역시 내가 원하는 디자인은 아닌 것이다.

이미지 출처: 리슬 한복


결국, 내가 원하는 디자인은 기장이 아주 짧아 가슴의 일부에 걸치거나, 아예 허리까지 내려오는 블라우스 형태여서 하이웨이스트 치마/바지로 커버가 되는 디자인이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내가 원하는 형태의 저고리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진 저고리는 모두 외할머니의 한복 저고리를 리폼 한 것 이다.)


오른쪽 촬영: Dylan Goldby (@welkinlight)


이런 까다로운 취향 덕분에 직접 한복 짓는 법을 배울까 수도 없이 고민 했지만, 그 시간에 원고를 한 편이라도 더 해서 돈 주고 사는 게 이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 의미에서 조만간에 오더메이드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내 마음에 쏙 드는 한복을 찾아 헤매인다... 아아, 예쁜 옷이 입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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