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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Jul 30. 2018

8화: 제주 낙천리 아홉굿마을, 의자공원

문화예술창고 몬딱

#1. 아홉굿마을


‘찾아가는 갤러리트럭’ 전시는 일주일에 한 번 ‘문화예술창고 몬딱’을 나와 제주도 곳곳을 탐방한다. 제주의 명소와 중산간 마을들을 찾아가 여행객은 물론 지역 분들과도 문화예술을 공유하자는 뜻으로 시작한 것이다. SNS 연재는 소소하나마 기행기를 통해 제주의 색다른 곳들이 두루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이번에는 ‘의자공원’으로도 잘 알려진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 ‘아홉굿마을’을 가 보기로 했다. 아홉굿마을? 제주의 지명은 늘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어떤 마을일까? 자못 궁금하다.



아홉굿마을은 의자를 테마로 한 특색 공원이 있는 터인지, 마을 초입 큰 연못에 설치된 커다란 의자가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의자공원으로 직행해서 전시에 적당한 곳을 찾아 주차를 시도하는데, 하필 카페 앞이라, 주인아주머니가 곧바로 나와 우리를 살핀다. 흙벽에 예스럽게 꾸민 ‘수다뜰’이라는 예쁘장한 카페다.


“어,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워 관람객이 거의 없는데요! 저도 몬딱 잘 알아요!“


뜻밖에도 주인이 반기며 우리를 카페 안으로 청한다. 오늘도 ‘문화예술창고 몬딱’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어 기분이 좋다. 그녀는 올 상반기 몬딱 주말문화센터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미술수업을 신청하려다가 말았다고 한다. 금세 냉커피 2잔을 만들어 공으로 주는데, 미안하게도 오늘 일이 있어 먼저 가 봐야 한단다. 무더운 날씨에 수고하라며 시원한 생수 2병까지 챙겨 주고는, 다음에 꼭 다시 보자며 서둘러 떠난다. 반갑고 고맙다.



“우리가 제법 알려졌네.” 하면서 승환과 나는 갤러리트럭 전시에 착수했다. 커다란 의자 조형물 아래서 트럭에 하나둘 액자를 붙이고 있는데, 빨간 스쿠터를 탄 어르신 한 분이 우리를 보고 스쿠터를 멈춘다.


“무슨 일 있수꽈?”    


이제 제주어를 대략 알아듣는다. 공손히 인사를 드리고 사연을 말씀드리니, 잘 찾아왔노라며 연신 칭찬을 하신다. “그래, 문화를 함께해야지. 좋구먼!” 하시더니, 어르신은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내기 시작한다.


#2. 아홉굿마을의 유래


어르신은 82 연세에도 정정하시다. 이 마을이 고향으로, 18세에 해병대를 지원했고, 여기에서 자녀 5명을 낳아 키웠으며, 지금은 근처에서 감귤 농사를 짓고 계셨다.    


“아홉굿이 무슨 뜻인가요?”


‘굿’은 제주말로 ‘연못처럼 물이 고인 곳’을 뜻하는데, 옛날 이 마을에 9개의 커다란 굿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곳의 흙은 점성이 뛰어난 찰흙으로, 옛날부터 사람들이 이 흙을 파내 솥도 만들고 옹기도 만들고 하였단다. 그러다가 큰 구멍이 9개나 만들어졌는데, 점토질이라 물이 잘 고여 연못이 되었고, 그리하여 그것을 ‘아홉굿’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이 몹시 귀했던 시절, 9개의 큰 연못 덕에 마을은 항상 물이 풍부해서 아낙네의 물허벅 행렬이 줄을 이었다. 덕분에 사람도 가축도 모두 풍요롭고 즐거운 생활을 하였다. 거기서 ‘즐겁다 락(樂), 내 천(川)’, ‘낙천리’라는 지명까지 생겨났단다. 어르신 말씀으로 ‘낙천리 아홉굿마을’ 지명에 대한 궁금증이 쉽게 풀렸다.


“어르신, 제주흑우도 잘 아시겠네요?”

“잘 알지. 나도 키웠어!”


김민수 - 제주흑우


나의 제주흑우 사진작품을 보여 드리며 여쭈어보았다. 이 동네는 집집마다 흑우 한 마리씩은 키웠다고 한다. 일을 정말 잘하는 검은 소들이었는데, 농기구며 경운기며 새로운 것들이 자꾸 제주에 들어오면서 점점 마을에서 사라져버렸다며, 사진을 보면서 아쉬워하신다.



어르신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마을 가뭄이 심했던 1997년도에 9개의 연못을 하나로 합쳐 큰 저수지를 만드는 바람에 예전의 아홉굿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의자공원은 마을에서 7년 전쯤 이곳을 테마관광 마을로 만들 계획으로 꾸며 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이제 여행객들에게 주로 의자마을로 불리고 있다.



나는 한동안 빈 의자를 주제로 스마트폰 사진을 찍었던 적이 있어서 의자를 바라보는 눈이 남다르다. 가끔 생각한다. 삶은 저마다 좋은 의자 하나씩을 차지하려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저 빈 의자 하나로 족하게 살아가기는 힘든 것인가.


2013년 김민수 스마트폰 사진 - 어느 바닷가 의자


독특하게도 이곳 의자공원은 의자마다 이름이 붙어 있다. 공원을 개장할 때는 도지사도 방문하여 축사도 하고 의자에 앉아도 보고 했단다. 요즘 도청의 지원으로 보수 공사를 하고 있는데, 좀 더 잘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나도 이곳이 더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하는데, 문득 어르신이 어디선가 나를 본 적이 있다고 하신다. 제주 방송에 몇 번 나왔노라 했더니, 당신이 제주 KCTV 방송을 자주 본다고 하신다. 아마도 그 채널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나의 수염 덥수룩한, 독특한 얼굴을 기억하는 것이리라.    


어르신은 나더러 가을에 당신의 귤 농장에 한 번 찾아오라 하신다. 평생토록 감귤 농사를 지었으니 맛은 틀림없다 하신다. 이어 내게 명함을 한 장 건네고는, 다시 스쿠터에 올라 길을 재촉하신다.



어느덧 해가 서쪽에서 홍조를 띠기 시작한다. 승환은 개인전 준비를 위해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뜨거운 날씨 탓에 관람객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이따금 오가는 걸음을 돌리고 다가와 구경을 한다. 마을 전시는 관람객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작은 전시가 내게는 더 의미가 있다.


“형님, 저희 왔네요!”

“아이스크림 드세요!”    



성하와 일근이 중문에서 일을 마치고,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우리 네 사람은 낙천리(樂川里) 아홉굿마을 의자공원에서, 빈 의자를 벗 삼으니, 오늘 하루야말로 낙천젹(樂天的)이다.


다음 연재)


제주 감귤창고를 업사이클링 한 '문화예술창고 몬딱 - 잇다.나누다. 즐기다' - 작가 작업실/갤러리/문화예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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