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서귀포문화원 문화학교에서 강좌 하나를 맡아 진행했다. 스마트폰 사진반으로, 2월부터 7월까지 주 1회 수업 6개월 과정이었다. 수강생은 대부분 나이가 좀 지긋한 분들이었는데, 물론 평소 스마트폰 사진 촬영에 흥미와 관심이 각별한 이들이었다.
이론 강의와 실습을 격주로 병행하면서 서귀포 일대의 명소를 찾았다. 실습을 위한 출사(出寫)는 소풍이나 힐링의 시간도 되어서, 우리는 강좌 내내 여러모로 즐겁게 지냈다. 특히 수강생은 스마트폰으로 일상적인 사진만 찍어 오다가 예술사진을 찍어 보는 특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6개월의 시간은 금세 흘렀다. 문화학교 수료식에서는 모든 강좌의 활동 결과물을 공연이나 전시 등의 형태로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 사진반에서는 그 전시 출품을 위하여, 수강생 전원 각자 대표작 1점씩, 총 14점의 사진을 인화하고 액자를 만들었다.
5인치 안팎의 작은 액정 화면으로만 보던 스마트폰 사진을 60cm×40cm 크기로 인화지에 출력해 놓고 보니 훨씬 좋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스마트폰 사진 전시는 이날 수료식에서 민요반, 가요반, 무용반, 수채화반, 문예창작반의 발표 공연과 함께 볼거리를 한층 풍성하게 하였다. “이게 스마트폰 사진이라고요?” 다들 적잖이 놀란 표정으로 말한다. 그런데,
“작품들이 좋으니 시청 전시장에서 전시하세요!”
문화학교 수료식에 참석한 서귀포시 부시장이 사진을 관람하고 나서 뜻밖에도 반가운 제안을 해 온다. 그러잖아도 내심 작품들이 좋아 단 하루 전시가 좀 아쉬운 참이다. 사진 반원들도 모두 좋아한다. 그렇게 하여 8월 13일부터 27일까지 2주 동안이나 서귀포시청 전시장에서 한 차례 더 전시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작품들이 어엿한 전시 조명을 받으며 전시장에 걸리니 더욱 빛이 난다. 이제 서귀포 문화학교 사진반은 예술인이 되었다. 나는 그들의 가족, 친지들이 찾아와 기껍게 관람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큰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
“작가님, 시간이 되면 서귀포 문화의 날에 갤러리트럭 와 줄 수 있어요?”
시청 전시를 철수하는 날, 서귀포문화원 사무국장이 내게 다가와 이야기한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서귀포문화원 주관으로 서귀포 일대에서 여러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때 갤러리트럭 전시도 함께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흔쾌히 그러하겠노라 답하고, 바로 8월 행사일인 29일에 갤러리트럭을 끌고 달려갔다. 장소는 서귀포시 송산동 자구리문화예술공원이었다.
서귀포 자구리 해변은 좌우로 섶섬과 문섬을 바로 앞에 두고 푸른 바다와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화가 이중섭과의 인연으로도 유명한데, 이중섭은 이곳에서 부인과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함께 게를 잡으며 행복한 한때를 보냈는가 하면, 뒤에는 가족들을 모두 일본으로 떠나 보내고는 그리움과 추억을 화폭에 녹여내기도 했다고 한다.
8월 29일, 오늘 자구리 공원은 '문화가 있는 날, 수요일의 시간여행'이라는 타이틀로 서귀포문화원이 주관하는 여러 가지 공연과 문화체험 행사가 있는 날이다. 갤러리트럭이 도착하니 현장은 이미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문화학교의 민요반, 가요반, 무용반도 의상을 갖추어 입고 공연 연습에 한창이다. 야외 천막들 한편에서는 ‘빙떡, 쉰다리’ 같은 제주 특산 먹거리 문화 체험장도 마련된다.
제주의 ‘빙떡’은 메밀 지짐의 담백한 맛과 무숙채 소의 삼삼하고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내는 별미 음식이다. 메밀가루 반죽에다 익힌 무채를 소로 넣고 얇게 둘둘 말아서 지진 것인데, ‘빙빙 돌려 만다 또는 빙철(번철)에 지진다’ 해서 ‘빙떡’이라 부른다고 한다.
‘쉰다리’는 쌀밥이나 보리밥에 물과 누룩 가루를 넣고 발효시켜 만든, 제주의 토속 음료이다. 일종의 알코올음료로 새콤하고 단맛이 있어 단술이라고도 불린다. 주로 여름철에 만들어 마셨는데, 알코올 함량이 낮아 음료수용으로 이용하였고 남녀노소 가림 없이 즐겨 마셨다고 한다.
‘찾아가는 갤러리트럭’도 공연 무대 옆에 한자리를 잡고, 오늘 행사의 문화체험 프로그램의 하나가 되어 사진 전시와 그림 전시를 시작했다. 가을이 오는지 섶섬 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청량하다. 무대 공연이 하나둘 시작된다. 공원 초록 잔디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해녀 복장을 한 캐릭터들의 공연이 퍽 실감이 난다. 제주 방언으로 부르는 민요 소리가 이제 그리 낯설고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공연장을 찾은 여행객들, 주변 상인들이 오가며 갤러리트럭 전시를 보고 간다. 나는 서귀포 문화학교 스마트폰 사진반 이야기를 꺼내고 내년 강좌 때 수강해 보길 권한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기 시작하고, 무대 공연도 슬슬 막이 내린다.
“가시면서 이거 드세요.”
‘제주 특산 먹거리 문화 체험장’에서 행사 후 남은 ‘빙떡’과 ‘쉰다리’를 챙겨 준다. 문화원에서는 저녁 식사까지 하고 가라며 한사코 잡아끈다.
제주살이 1년 8개월. 나는 제주 사람들과 함께하고, 제주 문화를 체험하고, 제주 역사를 알아 가는 하루하루가 나날이 새롭다. 오늘 이중섭 화백의 예술혼이 깃든 이 자구리 해변에 오래 머물다 가는 것은 나 자신에게 퍽 뜻있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오늘은 실은 그간 사진 작업에 많은 시간을 쏟았는데, 이제 9월부터는 그림에 열중해 보자는 마음 새김을 하고 온 날이다. 서귀포 앞바다 섶섬에 어린 노을빛 구름이 유난히 아름답다.
다음 연재)
제주 감귤창고를 업사이클링 한 '문화예술창고 몬딱 - 잇다.나누다. 즐기다' - 작가 작업실/갤러리/문화예술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