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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Dec 29. 2023

4_사내정치와 설화(舌禍)

피스메이커로서 자기 위치를 지키는 일

사내 정치.

나는 오랜 직장생활 동안 이 문제로 설화에 휘말린 적이, 내 기억으론 없다. 사내정치가 갖고 있는 메커니즘에 휘둘리거나 블랙홀처럼 빨려 들지 않으려 했는데, 그건 사내 정치의 룰에 위배해서 행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정 무리가 마녀사냥할 때는 그 타겟이 된 사람들을 실드(보호)해 주려 했다. 반대로 일단의 무리들이 편을 지어서, 말도 안 되는 사람을 추대하며 희한한 분위기를 만들어 갈 때, 그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므로 그가 전횡을 일삼지 못하도록 은근히 경고를 주었다.


몇개월전 여자 동료들 사이 또 한차례 설화가 있었다. 이건 우리 회사가 건강하다는 반증이다. 보통 다른 직장들은, 이런 문제들을 수십 년 묵혀두기 마련이고, 한 번도 공론화 시키지 못해 곪고 썩어간다. 급기야 진짜 실력 있고 선량한 분들이 되려 조직에 실망해서 이탈하곤 한다.


4년 전, 현재 직장에 대표님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때 입사 조건으로 몇 가지를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그중에 하나는, 뒷담화 문화 근절과 동료나 인재들에게 상처 주고 또 불의한 방법으로 매출 1등을 하는 헤드헌터가 있다면, 그를 징계 내지는 퇴사조치 하실 건지에 대한 문의였다. 대표님의 경영철학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내가 오기 전 그런 사례가 있었나 보다. 대표님이 기독교인이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대표님께서 속내를 말씀하셨다. 그 당시 써치펌에 매출 1등 하는 분이 있는데, 자꾸 동료들에게 잘못해서 트러블이 생기고 상처를 주고, 뒤에서 무리한 요구가 많다는 것이다. 대표님은 내내 그를 '포용'하는 기독교 철학을 명분으로 삼았으나, 실은 그가 매출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에, 제대로 책망하고 단속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건 써치펌에 은근히 있는 문제 아니 모든 직장에 필연 존재하는 문제이다. 직장에 기여도가 높은 임원들이 비인격이거나 편법을 쓰고, 사내정치를 해서 남들은 오래 걸려서 이룩할 성과를 쉽게 이루나 실은 반쪽자리 성공인 것들 말이다.


대표님은 내가 오기 전 그를 정리했다. 그 사이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이슈도 있었나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사람들을 정치로 선동해서 서너 명을 데리고 나가 창업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회사는 요즘 잘 안 된다 한다.


'착함'도 병이라는 말이 있다. 착함이 하늘을 향하고 있고 또 나 자신에 내재화되어 있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착함이 타자들의 시선 곧 '인정과 인기, 명예, 체면, 이익' 등에 매여있을때, 사달이 일어난다. 참기만 하다가 분노게이지가 올라가 전혀 엉뚱한 사람, 엉뚱한 지점에서 악감정을 쏟아내게 된다. 반대로 착하다는 인정욕구 때문에, 마땅히 누군가를 책망해야 할 타이밍에 타협하게 된다. 깡패와 같은 무리들에서 벗어나야 할 때, 끼리끼리에 매여,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왕따 시킨다든지 또는 불의의 가담자 내지는 협력자가 된다. 또 하나 나보다 착한 사람을 만나면 천불이 나듯 시기와 질투에 함몰되나 이 또한 인식하기 어렵다.





앞서 말했듯, 4년 전 지금 직장으로 스카우트되어 왔다. 좋은 조건으로 이직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불로소득, 낙하산으로 비칠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사람들이 참 좋으셨다. 부사장님은 입사선물부터 각종 간식들을 갖다 주었고, 다른 동료들도 명함집 등 여러 선물과 아기자기한 간식들을 챙겨 주었다. 내가 회사 보는 안목이 있다 흐뭇했다. 참장녀(가명)이사님도 그중에 한 분이었다. 너무도 살갑게 친절하게  주었다. 그녀는 우리 써치펌에 장기 재직 중이라, 나름 대표님과의 인연과 친분도 깊었다.


그러나 내가 전임 여자 부사장-연중 해외일정이 많고 결혼하면서 재택근무로 전환한- 이 쓰던 방에 왔다는 것은, 그 써치펌 여자 동료들에게 꽤 이슈가 되었나 보다. 모두가 그 방을 탐내고 있지만, 누구도 아니 대표님도 그 방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라 했다.


나는 특유의 해맑음과 속을 다 내줄 것 같은 마음으로, 그들 모두의 친절을 흡수하였고, 정말 한 달 넘게 여러 분들에게 점심을 사드렸다.


장녀 이사님.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 이상함을 감지한 것은 그 어느 지점. 내가 온 지 얼마 안 돼, 점심식사를 누구와 함께 할지 고민하던 차였다. 그녀는 점심이 되면 돌연 약속이 있다며 매번 급히 나가는 것이었다. 당시 코로나 초입 시즌이긴 했다. 그리고는 점심이 끝날 무렵이면 여자 동료들을 대동하고 돌아온다.


'이건 뭐지?'


뭔가 비릿했다. 처음에는 각자 일상이려니 생각했으나 그 기류를 그녀가 주도하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그녀는 터줏대감이고 사람들 특히 여자 동료들 네트워킹에서 핵심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참 좋은데, 이 묘한 기류는 무엇일까?' 점심시간만 지나면 또 다들 친절해진다. 다행히 코로나 시즌이 본격화되면서 이런 묘한 기류는 얼마 안 갔다. 무엇보다 대표님과 함께 식사하는 노총각 3인방과 식사를 연거푸 함께 하였고 후에 마음에 맞는 다른 동료들이 있어, 그 찰나의 일들은 덮혀졌다.


다만 의심과 추정만 가는 이 상황을 두고 기도했다.

장녀 이사와 몇 명의 여자분들의 묘한 기류에 대해서,


"하나님 아버지, 이 불편한 느낌과 감정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다루어 주세요. 제가 선으로 악을 이기게 도와주세요"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고객사를 거저 넘겨주고 호구일지언정 밥을 샀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을까, 그 일이 터졌다. 장녀 이사님이 모든 여자 동료들에게 매를 맞으며 비난을 모종의 사건. 몇 명의 여자 동료들의 개인 비밀을 뒷담화로 유출했다는 혐의였다, 그중 강성인 여자 동료는 자기 전 남편의 일을 오픈했다며 소송을 하겠다며, 격앙되어 있었다.


얼마나 말이 퍼졌는지는 모르나, 장녀 이사의 좋은 이미지는 추락하고 말았다. 급기야 대표님은 직장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장녀 이사에게 전체 메일로 사과하게 했다. 그리고 그들 몇 명의 여성 동료들과의 카르텔 곧 의리라 이름하던 관계는 풍지박살이 났고, 코로나 재택근무로 모든 관계가 흩어졌다. 그들 몇명의 여성 동료들은 그들끼리 설왕설래하며 다투다 함께 이미지가 실추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조직에 새로운 온 사람들을 때때로 은따시키려던 그들 속내는 하늘의 부메랑을 맞은 것만 같았다. 반대로 나의 입지는 더욱 좋아지고, 동료들과 관계는 돈독히 견고해져 갔다. 다들, 사람 보는 눈은 있다.


장녀 이사가 전체메일로 자신의 과오를 사과하며 회사에서 왕따 내지는 궁지에 몰린 그때. 회사 단톡방에 나는 이런 글을 올렸다. "제가 내일 토요일, 참장녀 이사님과 점심식사하려고 합니다. 혹시 일 관련해서 함께 말씀 나누고 싶은 분들은 함께 나와서 나눠요" 단톡방은 잠시 정적이 흐르는 듯했다. 대표님과 동료들도 모두 말이다.


그리고 다음날 약속대로, 장녀 이사님과 맛있게 밥을 먹고 돌아와 둘이서만 사무실에서 얘기했다. 그녀를 위로하되, 그녀의 과오에 대해서 쓰디쓴 직언도 조심스럽게 담으면서 말이다. 


꽤 솔직히 나눈 내용은 대략 이랬다.


 "여자들의 질투와 경쟁이 사내 정치에 독의 원인이에요. 물론 남자들도 마찬가지고요. 도 질투가 왜 없겠어요. 자기 본능에 정직해야 해요. 사람은 영적인 동물들이라, 모를 것 같지만. 그가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지, 질투를 숨기고 가식적으로 대하는지 대번에 안답니다"


우린 그 후로 더없이 가까워졌다. 나는 그녀가 일적으로 위기게 빠지려 할 때마다, 협업 심지어 좋은 고객사를 거저 넘겨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최근에 또 한 번 비슷한 일에 휩싸였었다. 이번에는 주도자가 아닌 동조 내지 방조자로서 말이다.


그래서 몇 년 전 일에 대해서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때 참장녀 이사의 행동이 묘했다고, 그래서 기도했고 장녀 이사님에게 그 일이 일어났다고 말이다. 성당에 다니시는 분이라, '기도 응답처럼' 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비치면서 말이다.


"이사님, 이번에 문제가 된 오오만(가명) 상무가 주도한 설화에 또다시 휘말린 이유. 그녀가 동료들을 심각하게 뒷담화하는데, 그녀와 여전히 친하게 지낸 이유. 생각해 보셨어요?

사람 씹는 재미가 있어요. 일적으로 이득을 얻는다고 해도, 불의하다면 관계에 거리를 두고 가끔은 아예 끊어야 해요. 사실 오상무가 이사 편을 들어주고, 이사가 꺼리는 사람을 함께 씹어주고, 심지어 이사님이 은근 라일벌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을 견제해 주니깐, 좋았던 거 아닐까요? 이건 자신에 정직해야 보여요"


그제야 매번 우회하며 회피하던 3년 전 일을 말한다.


"실은, 전무님이 처음 우리 회사에 왔을 때, 몇몇 여자 동료들이 샘을 냈었어요. 난생 처음 온 사람이 나이는 어린데, 자신들보다 지위도 높고 개인방도 좋은데 배치되었다고 말이죠."


그 말을 듣는데, 내 짐작과 느낌이 틀리지 않았구나, 서글프기 보다 그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 드러내진 않아도, 가끔은 질투도 하고 경쟁도 해요. 공감되고 이해돼요. 그보단 '내가 그렇다' 죄와 허물을 인정하고 교정하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아요."


더불어 이번 설화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갔다.


"누군가 과도하게 뒷담화하는 사람, 조직에 위해하게 분탕질하는 사람을, 어떤 이유로든 가까이 한다는 건. 내 안에 그것을 즐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감히 씹어내지 못할 사람을 씹어주고, 내가 견제하고 싶어도 체면상 못 하는 그를 대신 견제하며 깎아내려 주고.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에요. 저도 그런 본성이 있기에, 저는 그럴 때 나의 질투와 경쟁심을 인정하고, 그것을 부추기고 자극하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둡니다. "


장녀 이사는 심성이 착한 사람이라, 나는 그녀가 좋다. 그러나 그녀는 오래도록 자신이 은닉한 '간사함'이라는 오래 '자기 '를 응시하며, 단도리해야 할 숙제가 생겼다.


나는 그날 이렇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사실) 장녀 이사님을, 3년전 사건 때부터 제가 쉴드 치며 보호 주고, 들어준 거 알까요? 그런데 솔직히 가끔 이사님이 불편해요. 뭔가 뒤돌아서면 다른 생각할 것 같고. "


더 길게 말하고 싶었다. 그녀가 두 마음을 품은 사람처럼 여전히 비릿함을 풍긴다는 어려운 말을 말이다. 누군가 정도에서 벗어났고 나쁘다는 것도 아는데, 그가 편을 들어주고, 내가 꺼리는 사람을 대신 씹어주며, 심지어 일적으로 이득도 준다면, 그가 불의한 사람이라도 괜찮다는 그 자신의 '불의'에 대해서 말이다. 그녀는 다행히 착해서, 자기가 그렇다고 바로 인정하였다.



이번에 한바탕 설화를 투명하게 청소하시면서, 대표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전무님이 이번에도 (여자들 설화에 전혀) 말려들지 않고 타겟이 안 된 건, (항상) 드러나지 않게 (말을 아끼며) 자기 일에 충실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번 설화를 잘 알고 있는, 한 부장님도 말했다.


"전무님을 디스할 게 없잖아요. 너무 소녀 같다, 뭐 그 정도 말하더라고요. 그건 디스에 들지도 않아요"


오상무는 3년 동안 모든 동료를 다층적으로 뒷담화하고 이간하고 심지어 가스라이팅을 하다, 몇 개월 전 창업한다며 퇴사했다. 그녀가 대표가 되어, 조직의 대표가 사내정치로 앓게 되는 고뇌와 애환을 깨닫게 될까? 그녀가 그것을 깨닫게 된다면, 혹여 그의 사업이 번창하지 않는다 해도, 그녀는 인간으로서 성장과 성숙이란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사실 나는 사교성이 굉장히 좋다. 그러나 직장에서 인간관계의 복잡다단함을 알기에, 거기서 나의 세력과 영향력을 키우는 일에 오히려 힘을 빼고 절제하곤 한다. 내 인기가 과도하게 폭증하면, 누군가는 견제와 질시의 마법에 걸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겸양하듯 힘을 일부러 뺀다는 사실을 사람들도 언젠가 감지하게 된다.


직장이나 비지니스 현장에서 가끔 보게 된다. 자기 역량보다 과욕을 부리고 거품을 만들어 '스스로 높이는 일' 들을 말이다. 당장은 우위를 점한듯 하고 성공의 과실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장은 아니라도 점차 알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인격과 도덕성 그리고 실력이 허술한 빈수레의 요란한 실체에 대해서 엄중하게 평가를 내려 준다. 아니 그 자신이, 그에 상응하는 과실을 먹게 된다.






나는 중학교 때도 전교 왕따인 한 친구와 점식식사를 함께 해준 전력이 있다. 학기초, 점심식사하는 우리 그룹에 그 친구를 포함시켜 달라는 나의 요청. 친구들은 모두 난감해 했다. 그러나 당시 나랑 친해지고 싶었던 친구들인지라, 나의 제안은 1년간 자연스럽게 지속되었다. 나는, 어린 학생들 세계에도 상존하는 우월과 열등, 왕따, 정치 등에 대해서 나만의 정공법을 그때부터 익혀 왔던  같다. 학생 때, 친구들에게 나의 신념을 용기 있게 설파하려면, 내 삶이 모범적이어야 했다. 학생이라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


어쩜 내가 직장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 그것은 비단 돈벌이 때문만은 아니다. 직장이라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중학교 때처럼 소신발언을 할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함다.


타자들을 뒷담화로 흠집내고, 깡패 같은 패거리 의식으로 분탕질하고, 약자를 깔아뭉개고, 부하직원을 몸종 부리듯 하고, 라이벌을 깍아내리고, 타인이 오래 공들여 온 기술과 성과물을 베끼고 도용해서 훔쳐가는 기술도둑 등등.


불의를 덮어줄 때조차, 어떤 사람들은 포용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대부분 그다지 선량하지 않은 다층적 구조의 내면을 갖고 있다. 포용의 명분 아래 조밀한 자기 계산이 들어갈 때가 더 많다. 돈을 포함한 특정 이익, 부스러기처럼 떨어지는 부귀영화, 인간관계의 이득, 나의 질투와 경쟁, 라이벌의식을 대리해 줄 선수 말이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 모두를 순리의 끝으로 이내 이끌곤 한다. 


쉽게 얻은 승리와 성과는 쉽게 무너진다. 타인을 등치고 가로채서 또 타인을 깎아 내려서 얻는 일시적인 과실과 성공은, 언젠가 자신과 비슷한 조직과 사람을 만나 균열하다, 이내 부실한 기초를 드러내며 단명하고 다. 그게 하늘의 섭리요, 세상의 순리다.


사내정치와 설화.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동조 내지는 방조하는 나의 문제임을 알 때, 우리는 스스로 성장하고 교정되고 성숙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설화(舌禍) 1. 연설이나 강연 따위의 내용이 법률에 저촉되거나 타인을 노하게 하여 받는 재난

2. 타인에 대한 중상이나 비방 따위로 받는 재난

**피스메이커(peacemaker) : (분쟁·전쟁을 종식시키려 애쓰는) 중재자[조정자]










*그림,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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