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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Aug 11. 2023

1_3억 연봉 부사장, 왜 미국비행기 티켓을 날렸는가?

"내 몸에 맞는 옷 입기"


나는 헤드헌터다.

그것도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선망해 마지않는 커리어의 로망,

대기업, 글로벌기업, 중견기업의 Top 임원급 인재들을 스카우트하는 헤드헌터이다.

물론 내가 임원급만 스카우트하는 것은 아니다. R&D핵심인재, 글로벌인재 등 다양한 업무와 연차의 인재들을 스카우트한다. 기업군도 대기업과 글로벌기업에 국한하지 않고 중견기업, 벤처, 글로벌사모펀드와 같은 금융 쪽도 의뢰를 받으면 다 섭렵한다.



여기서 한 가지, 헤드헌터를 직장 잘 다니는 각사 핵심인재들을 엄한 회사로 스카우트하는 야만적인 인재 사냥꾼으로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아주 큰 오산이다. 물론 어느 분야나 정도에 벗어나 이탈된 길을 걷는 변절자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변칙적 포식자들보다 더 많은 헤드헌터들은 인재들을 내 가족처럼 생각한다. 우리는 인재들과 동거동락하며,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인재들 편에서 돕고자 고뇌하고 부단히 애쓴다. 적어도 내가 일하는 좋은 써치펌-헤드헌트업을 하는 기업들을 지칭하는 용어-의 좋은 헤드헌터들은 대부분 그랬다. 헤드헌터로서 나의 가치관, 직업윤리, 서사는 다른 날 한 번 더 기술해 보겠다.





얼마 전인 7월 말, 미국의 유명 글로벌제약사 본사 등 이름만 들으면 알법한 글로벌기업들에 재직했던 아주 유능한 임원이 한국땅에 발을 내딛었다. 이 임원은 수년 전에 한국의 재벌 S그룹 계열사에서도 임원으로 재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글로벌제약사와 비교해 조직문화나 여러 가치관이 상충되어, 오래지 않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었다. 수년이 흘러 이제 60세가 다 되어, 조국 대한민국의 제약/바이오산업에 기여하고 싶은 평생의 소망을 두 손에 붙들고. 한국에서의 뼈아팠던 실패들을 다시 직면하며 도전하고자 한국땅을 다시 찾은 것이다. 미국 현지에서 받았던 연봉보다는 다소 낮은 기본연봉이었지만 어느 정도 내려놓았다. 물론 바이오벤처 연봉/복리후생 패키지에는 단연 스톡옵션 등의 다른 보상이 있기에 만회는 충분히 해드렸다. 더 나이 들어 후회하기 전에, 미국의 여러 안정적인 터전을 버리고 한국 바이오벤처에 투신한 여성. K바이오에 힘을 실어 주고자 순백화 같은 선택을 한 카리스마 가득한 리더. 같은 여자가 보아도 너무도 멋지고 아름다웠다.



그러고 보면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국적의 한국사람이지만, 자신 몸에 흐르는 한국의 피를 자랑스러워하는 인재분들이 꽤 있었다. 내 고향 조국 대한민국이 세계무대에 우뚝 성장하며 발전하기 바라는 마음은 이민 1세대만 품는 향수가 아니었다. 미국 국적과 네이티브(native) 영어를 구사하는 한국인 2세, 3세들 가운데에서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이 대목에서 작년 여름 007 작전을 방불케 했던 인재 영입 프로젝트가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K임원은 미국국적의 한국인으로, 한국어 보다 영어가 모국어 같은 분이었다. 미국에서 유수의 제악/바이오 기업들에서 재직하다가 수년 전에 한국에 왔다. K임원은 미국에서 자신이 배우고 습득한 선진화된 지식과 스킬, 전략을 한국땅에 잘 이식하고 싶어 했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한인 혈통의 자기 정체성이 끝내 속내를 드러내는 순간 같았다. 그러나 K임원이 한국 기업에 재직하며 보낸 그간의 시간들은 실망과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그의 한국에서 첫 직장은 유명 대기업 S계열 제약/바이오 기업이었다. 그는 풍운의 꿈을 안고 한국에 왔으나 너무 이질적인 조직문화, 경쟁 일변도의 업무폭주와 기계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그래서 K임원은 큰 규모의 다른 한국기업으로 이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람들은 좋았는데, 변화를 싫어하고 변혁을 거부하며 대놓고 업무 불이행을 일삼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는 또 한 번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심지어 두 번째 한국기업에서는 해당 기업의 회장님이 그를  직접 스카우트한 상황에서, 기존 직원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고자 연봉은 맞추되 직위는 상대적으로 낮추어 움직인 이직이었다. 당시 K임원의 상사인 부사장까지 그의 시도와 변혁을 도와주려 했지만 아래 직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이것은 재직회사 직원들도 인정하는 대목이었다. K임원의 눈에는 이 두 한국기업의 조직문화는 난공불락의 시멘트 콘크리트 같았다. K임원 본인 때문에 함께 한국에 이주해서 살고 있는 아내마저, 그에게 회사를 그만둘 것을 종용할 정도로 깊은 좌절감과 회의감에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K임원이 갖고 있는 한국을 향한 남나들 애착, 그 애국심과 사명감이 저리게 다가왔다. 동시에 그의 이상을 파괴하는 현실에 함께 마음이 아팠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의 주요 상위 제약회사의 CEO인 대표님과 대화하다가 K임원 사연을 나누게 되었다.  대표님은 대략적인 사연을 들으시고 그 임원의 포지션(직무)을 들으시더니 그럼 이력서를 한번 달라하셨다. 나는 뭔가 실낱 같은 희망이 보이는 듯해서, 바로 K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의 연결음이 전에 없이 느리게만 느껴졌다.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잠시 후 K임원이 전화를 받았고 반갑게 안부인사를 해주었다. 헤드헌터인 내가 전화를 건 이유를 안다는 듯이, 잠시 말을 아끼는 듯하더니 이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다음 주 토요일에 미국으로 출국합니다. 저와 아내는 할 수만 있으면 한국 기업 중에서 다시 job을 찾아 처음 한국을 찾았던 뜻을 이루고 싶었지만 여기까지가 저의 한계인 것 같습니다. 미국 바이오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주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헤드헌터인 나의 직감으로 보건대, 이번에 제안하려는 기업와 인재는 매우 적합해 보였다. Top리더십인 오너와 대표, 동료 임원들과 인재의 성향이 잘 맞고 조직문화를 그의 이상을 지지해 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얼마나 야속한 시간의 장난이란 말인가? 보통 인재들이 이력서를 내서 최종 입사완료까지는 평균적으로 2~3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서류전형, 1차 면접, 2차 면접, 잡오퍼(연봉협상), 평판조회, 합격통보, 재직회사 인수인계, 신체검사, 입사완료. 정말 중요한 핵심인재이고 긴급상황이라 면접을 1번만 보고 모든 과정을 최소화한다고 해도, 한 달 이내로 채용의 모든 절차를 완료하기는 어렵다. 특히 큰기업이라면 거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K임원은 미국에서부터 기본연봉이 높았던 터라, 이전 한국기업에서도 직위는 양보했으나 연봉 특히 기본급은 타협하지 않았던 터였다. 나는 그날따라 흐린 애꿎은 날씨를 탓하며 체념하듯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오롯이 맨땅에 헤딩하는 헝그리 정신, 끝장 근성으로 살아온 내가 아닌가. 바로 해당 기업의 대표님께 전화를 걸어 단도직입적으로 벼랑 끝 제안을 했다. "대표님, 이 인재는 다음 주 토요일에 미국으로 출국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목요일입니다. 지금 이력서를 받아 보신다고 해도, 인재에게 잡오퍼 제안까지는 1주일은 거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대표님의 재량권과 능력으로 오늘 정식 이력서를 받아보시고. 다음 주 수요일까지 인재에게 잡오퍼를 완성해서 제안 주신다는 약속을 해주신다면. 제가 인재를 어떻게든 설득해서 면접 자리까지는 만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자원과 전략을 총동원 하겠습니다."





이렇게 배포 넘치는 당찬 제안을 했지만, 말하는 동안 나 스스로도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대표님께서 눈을 반짝이면서 청롱한 단어들로 대답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거 제가 책임지고 (후보자가 적합하여 면접이 합격된다면) 다음 주 수요일까지 잡오퍼를 기필코 제안하겠습니다" 나는 어리둥절한 가운데, 후보자의 동의를 얻어 정식 CV(영문 이력서)를 대표님께 전달했고, 면접은 바로 월요일로 잡았다. 문제는 평판조회였다. 통상 2차 면접 합격 후에 정식 평판조회가 진행되는데, 이때 평판조회 보고서까지 감안하면 최소 2~3일은 잡는다. 대표님과 내가 의기투합해서 면접 전이지만 다음날 금요일부터 평판조회를 미리 진행했다. 물론 후보자의 동의하에 지정과 비지정으로 5명의 평판조회할 인재들의 연락정보를 받았다. 나도 주말 없이 평판조회 보고서를 작성했고, 월요일 면접 마치고 동시적으로 평판조회 보고서를 당사에 제출했다. 면접은 월요일 하루에 대표, 회장님으로 한 번에 진행했고 합격이었다. 평판조회 결과도 아주 우수했다.



그러나 한 가지 인재가 그 회사 내규 대비 기본연봉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난관이다. 게다가 인재는 이전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40평대 사택에서 지냈던터라, 이처럼 넓은 사택 제공의 선례가 없는 지금 회사로서는 난감한 문제였다. 그런데 이 문제도 이 기업 대표님은 당차게 치고 나가셨다. 회사 내부 규정을 바로 변경하면서 사택 제공을 적절하게 제안해 주었고, 연봉도 인재에게 부사장을 부여하므로 그가 미국 바이오기업으로부터 제안받은 연봉 이상을 제시할 수 있었다. 기본 연봉만 3억. 그리고 연봉을 포함한 복지 패키지 곧 잡오퍼는 수요일은 아니지만 목요일 오전에 완성되어 후보자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K임원 역시 이러한 우리 모두의 노력과 염원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아내와의 상의를 반나절만에 끝내고 바로 잡오퍼를 수락하였다. 출국하기로 한 토요일 바로 전전날인 목요일. 그는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해당 미국 바이오기업에도 너무도 죄송한 사정을 얘기하며 입사 고사의사를 무사히 잘 전달했다. 이 대목에 이르자, 마치 힘든 격투기 경기를 마친듯한 피로감이 밀려왔다. 동시에 쾌적한 희열이 온몸에 순환되는 피에 담겨 나를 치하하는 것 같았다.



K임원은 그 회사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1년이 넘도록 완벽하진 않아도 상당히 만족하며 다닌다고 말했다. 특히 조직의 변화를 갈망하던 그의 염원은 오너와 대표의 전폭적인 지지 덕에 힘을 얻었고, 조금 시간은 필요하지만 전진의 서막을 열어 젖었다. K임원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다녔던 대기업보다는 지금 회사는 규모나 인지도 면에서 다소 온도차가 있다. 그러나 그가 커리어상 가장 하고 싶었던 바로 그일. 곧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에 기여하고 싶다는 본질적인 사명과 보람을 성취하고 있기에 만족스러운 것이다.





잠깐, 그렇다면 회사와 내가 잘 맞는지는 언제 알 수 있을까? 인재와 회사가 만족스러운 만남이 될지 여부는 사실 인사업무 초기 단계에서 어느 정도 베일이 벗겨진다. 인사 담당자들의 업무처리 방식, 인사 프로세스의 형식이나 속도감 등을 보면 그 기업 본연의 조직문화와 업무처리 방식을 70~80% 유추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쌍둥이처럼 빼다 박았다고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이것은 비단 헤드헌터들뿐만 아니라 각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도 상당수 공감하는 내밀한 정설이다. 아직도 나의 몸에 맞는 기업을 만나지 못했는가? 감언이설로 이직을 제안받지만 정작 입사하고 나면 실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가? 팁을 드린다. 이직을 제안하는 헤드헌터나 해당 기업 인사 담당자들의 핑크빛 고액연봉과 직위에만 현혹되지 말라. 인사담당자와 그 회사의 인사 프로세스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스마트하며, 필요시엔 속도감 있게 나를 반영해 주는가 매의 눈으로 살펴보라. 나와 잘 맞는 회사인지는 그 첫 단추에서 의외로 큰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오늘 오전에도 한국에서 명문 의대를 나와 남편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새댁인 인재와 소통했다. 의대를 나왔지만 줄줄이 자녀를 출산하고 낯선 미국땅에서 재택으로 job을 찾기가 어려워 번역/통역 일로 박봉생활을 하고 있었다. K임원을 한국에 잘 모셔왔다면, 새댁 의사인 이 여성분은 미국의 한국기업 내지는 현지기업에 잘 매칭하고자 지금 진행 중이다. 내 상황과 형편 무엇보다 내 니즈에 맞는 옷을 찾는다는 것. 그리고 끝내 그 옷을 입을 수 있게 된다는 것, 천직 같은 직업과 직장을 만난다는 것은 다소는 천운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천운에 일조하고 있는 나는, 나의 천직인 헤드헌터를 너무도 아끼고 사랑한다.











*그림,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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