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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Aug 29. 2023

엘리베이터에서 들리는 외침

날마다, 백색과 흑색 사이에서  

주말이나 휴일 아니 평일이라도.

새벽에 묵상하려고 지그시 눈을 감으면 아련히 들리기 시작한다.


목각인형의 째깍거림처럼

오르골의 아득한 멜로디처럼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소리다.

'어, 새벽 5시에 누구지? 요즘 신문배달은 거이 없는데, 쿠O 새벽배송인가.'

'올라갔다, 내려가는가 보다. 아닌가 내려갔다가 뭐 두고 와서 다시 올라가나'

나의 조용한 공간에 이웃들이 침범해 들어온다.

내 삶의 분주함에 돌아볼 겨를이 없어.

이름 없는 '그들'로 호칭되어 비껴있는 사람들. 이웃.






나는 엘리베이터 소음을 좋아한다.

나는 새벽녘 도로변을 호젓이 달리는 차소리를 좋아한다.

나는 재래시장의 작렬하는 태양속에서 고래고래 함 치는 '생선 사세요' 소리가 좋다

나는 길모퉁 전봇대에 초라하지만 당당한 리어카 핫도그상의 발그레한 '뭐 드릴까요?'라는 안부가 좋다.

아침연속극이 시작할 무렵, 동네 아낙들과 친한 그 옛날의 과일장수 아저씨의 리어카 끄는 소리, 녹음기에서 흘려 나오는 재밌는 성우의 '과일 사세요. 신선한 사과, 꿀참외 왔습니다' 외침을 너무 좋아한다. 그립도록 좋아하는 소리.

동네 새댁 엄마와 아이의 속삭이는 엇박자 걸음소리도 정겹게 좋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쇳목소리 그 지치지 않는 대화소리도 좋다.


엘리베이터에서 시작된 아름다운 백색의 음정들은

나를 이웃이 가득한 내 어린 시절 봉천동 산 81번지로 이끈다.

여한 없이 놀았던.

집 앞에서 흙으로 집도 만들었던 그 길엔 어느 날 아스팔트가 깔렸고.

서울대입구 라는 전철 입구가 들어서고.

버스의 안내양 언니가 있던 자리에는 자동 토큰 기기가  나타나더니 어느 날부터는 카드결제기가 나타났다.

그 세월 동안 여전한 모습으로 그대로인듯한 그, 엘리베이터.

나는 엘리베이터 소리에서 세상의 생명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엘리베이터 타는 것이 조심스럽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리면 혹시... 다른 템포와 리듬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무슨 일이라도 나면 바로 112나 119에 신고하리라는 작심으로.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와 간격, 상세한 음성이라도 들릴까 귀 기울여 들으려 할 때도 있다.  

한편으론 생명의 역동을 알려주는 엘리베이터의 기계음이 누명을 쓰는 것만 같아 마음이 좀 아린다

엘리베이터가 사람이라면 얼마나 억울할까.

사람들이 정확히는 사람들의 일그러진 내면이 그를 짓밟은 것이다.

그, 엘리베이터는 늘 그 자리에 자기의 소임을 다한 것인데

피동적 이기의 위치에서 스스로를 고칠 수 없는 나약한 쇠덩어리.

가끔은 사고의 가해자로 돌변한다.

불쌍한 엘리베이터.

세월을 따라 사라졌던, 볼륨을 줄여야 했던 여타의 백색소음처럼.

엘리베이터, 이 친구의 작지만 음률 가득한 소리도 음소거에 휘말리까 봐 안쓰럽다.






층간 소음에 대한 무서운 다툼과 뉴스가 연일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소음에 민감하고 그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면증, 해치워야 할 과업, 혼자만의 절대 고요의 시간

소음에 대한 과격한 분노는

인간 내면에서 부유하는 그 자신만의 뜨겁고 뾰족하고 끈적이고 어려운 자기 소음에 지쳐서가 아닐까.

"시끄러워요, 소음 좀 줄여주세요"라는 말은

"내 안에 고통, 아픔, 슬픔, 절망, 무거움, 두려움.... 이 소리만으로도 짓눌려 있어요.

더 이상의 소리가 들어올 자리가 없어요. 죄송하지만 제발 좀 도와주세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각층에서 각기 다른 찬성, 반대 투표가

날마다 우리 내면에서 일어난다

내 삶이 가벼울 때는 찬성으로

내 삶이 벅찰 때는 반대로

때로는 여지없이 기권으로


오늘도 엘리베이터는 소박하게 때론 위엄 가득한 기세로

그 모습 그대로 자기 자리에서 그만의 외침을 남긴다

우리의 동동거리는 삶의 다양한 음정과 강도, 기나긴 여정을 담아.




                                                                                                 







*그림,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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