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보는 그림 이야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삶의 질을 쫓아 떠돌며 그때마다 재미있는 일을 하며 돈은 적당히 버는 게 꿈이었다. 최근에야 꿈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노마드적인 삶은 꿈을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데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도 계속하면 싫증나기 마련이고 그것으로 돈을 버는 노동의 영역으로 진입하면 일반적인 직장생활과 다름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가치 있는 일을 하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관해 먼저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내 가치의 실현이 진정한 꿈과 맞닿아야 한다.
예전 꿈이 무엇이었냐 하면 사진기와 노트북을 들고 해외여행을 다니며 현지의 느낌이 생생한 글을 올리는 유랑 블로거였다. 그 꿈을 시도하기도 전에 인터넷에 떠도는 행복한 노마드적인 삶은 다 거짓말이고 무언가를 연결해 팔려는 마케팅에 불과 하다는 노마드인들의 고백이 인터넷에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공감하면서도 나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가졌다. 직장에 다니면서 꿈을 실현할 시점을 노리고 있다가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끝내고 그만두었다. 2019년 6월 퇴사 기념으로 일본 가마쿠라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에서 받은 영감으로 각국의 유적과 전통문화를 소재로 글을 쓰는 노마드적인 삶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얼마지나지 않아 코로나19에 의한 펜데믹 상황이 펼쳐지고 말았다. 꼼짝없이 집에서 방바닥과 천장에 세계지도를 그리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 노마드적인 삶을 꿈꾸다가 답답하여 가까운 김포국제공항에 갔다.
2020년 10월 일요일 오후였다. 전철역에서 나오면 왼쪽 국내선 터미널과 오른쪽 국제선 터미널로 나뉜다. 먼저 국내선을 따라갔다. 체크인 짐 부치는 곳에 승객들이 더러 있어서 반가웠다. 승객이 거의 없을 거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셀프 체크인 기기 위에는 김포공항이 국제공항협의회 보건 인증을 획득했다는 내용과 해외입국자 국내선 이용 제한에 관해 설명이 쓰여 있었다. 위층으로 올라가자 항공기 출발을 알리는 전광판에 항공편들이 빼곡하게 올라와 있었다. 밖에서 보안검색대를 기웃거렸다. 예상 대기시간은 1~5분이었다. 여행지나 집으로 가는 승객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곳은 경사진 천정에서 내리쬐는 눈부신 조명이 눈부셨다. 화려한 조명이 대리석 바닥에 반사되어 공항 전체가 화려한 무대 같았다. 한층 더 올라가 식당가에서 승객들을 내려다보다가 옥상 전망대로 나갔다. 활주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곳은 보통 난간이 아니라 철망 울타리가 높게 세워져 있어서 확 트인 공간임에도 갇혀있는 느낌이었다. 항공기가 하늘로 차오를 때마다 내가 타고 갈 항공기를 놓친 기분이었고 또 다른 항공기가 이륙하기 위해 활주로로 들어설 때마다 멀리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는 기분이었다. 바람이 매서웠지만 그곳에 앉아 항공기가 이륙하는 장면을 한참 바라보니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해가 지자 철망너머로 붉은 노을이 퍼졌고 전망대 철망 울타리를 따라 이어진 조명이 밝아지자 조금은 낭만적인 풍경으로 변신했다. 노을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올 때까지 활주로를 바라보다가 전망대에서 내려와 국제선 터미널로 이동했다.
전철역에서 국제선 터미널 탑승수속장으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승객이 거의 없어 천장 조명을 일부만 켜두는 모양이었다. 평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기가 미안해서 걸었다. 2층 탑승수속장에는 승객이 한명도 없었다. 다행히 천장 일부 조명과 이정표 그리고 기둥의 광고판에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텅 빈 공항의 분위기는 하루의 업무를 끝내고 정리하는 모습 같았다 다시 살펴보니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고 승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모습 같았다. 3층 출국장으로 올라갔다. 보안검색대 입구에 벽에 붙은 커다란 출국 사인이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접수창구에 아무도 없었다. 경비원이 무전기를 들고 지나가며 나를 봤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마 출국하는 항공기가 없어도 조명의 일부는 밝혀 놓는 듯했다. 3층 출국장 홀에는 거대한 백자가 놓여 있었다. 한국의 미를 알리는 심벌 같은 작품이었다. 3층의 천장 조명은 두 개만 켜져 있어 스폿조명이 되었다. 그 조명 때문에 거대한 백자 항아리가 신비로워 보였다. 조선백자의 진수로 꼽히는 달항아리를 형상화한 폭 10m, 높이 10.4m 크기의 조형물 앞에 서자 그 안이 백자처럼 텅 비어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두드려 보지 못했다. 조명 때문에 엷은 흙빛이 나는 거대한 달항아리의 위엄찬 모습에 압도되었다. 거대한 달항아리는 그 자체로 작품이지만 미디어아트를 표출하는 오브제이기도 했다. 한국공항공사는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전병삼 작가와 대홍기획의 참여로 공동 제작한 미디어아트 작품 ‘오(Ou)’를 설치해 운영했었다. ‘오’는 자율회전형 미디어아트로써 ‘물레 위에 회전하는 우리 민족의 달항아리’를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오’는 사람과의 인게이지먼트를 통해 구현되는 참여형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였다. 작품 전면에 설치된 키오스크에서 얼굴을 촬영하면 그 이미지가 대형 조형물에 표현되는 방식이었고 한국의 대표적인 상징 이미지들을 달항아리에 표출함으로써 김포공항을 이용하는 외국관광객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전달했었다. 뒤로 돌아가 달항아리의 그림자 안에서 출국 보안검색대를 바라봤다. 그곳만이 밝게 불을 밝히고 있어서 비상구 같았다. 하지만 나갈 수 없는 나가 봤자 지금 여기보다 더 험악한 세계였다. 펜데믹의 먹구름이 걷히고 나면 김포국제공항으로 나갈 수 있는 외국부터 여행을 시작하고 싶다. ■
대용량 트렁크를 장만했다. 형광 주황색으로 된 단단한 트렁크에 매일 짐을 쌌다가 풀어헤치면서 짐 정리가 마무리되었다. 짐을 싸다 보면 나도 짐이 되어 트렁크 안으로 들어가고픈 생각이 간절했다. 짐을 싸는 시간은 잘 접히지 않는 내 끄트머리를 억지로 접어서 틀에 끼워 넣는 작업이나 다름없었다. 틀에서 벗어나고자 트렁크를 장만한 것인데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트렁크는 아주 최소한의 틀이었다. 트렁크에 인간 구실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것들만 지니게 되자 언제든지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 도시의 유목민이 되었다. 짐을 꾸려놓고 나서 형광 주황색 트렁크를 보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회사를 그만 둔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창의 윤곽을 드러낸 빛이 옷장 안을 비추었다. 옷장 안 구석구석에는 먼지가 가득 했고 옷장 바닥부터 겹겹이 옷이 쌓여있었다. 옷 사이에 틈을 내고 밀어 넣어야 했다. 옷을 옆으로 당기고 필요한 옷을 뽑아내야 했다. 인생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옷장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조깅하려고 샀지만 비닐포장도 뜯지 않은 운동복이 대표적이었다. 무엇이든 내 옷장에 들어가면 행방불명이었다. 옷장을 비우고 옷장을 버린 다음 장식장을 비우고 장식장을 버리고 소파를 버렸다. 소파를 버리고 바닥에 앉아 버리는 것 보다 남겨둘 물건을 고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하루에 하나씩 버리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했다. 물건을 버릴수록 숨통이 트이고 방에 마음의 소리가 울렸다. 물건을 버리기 위해서는 물건을 사게 만든 취향을 버린 다음 물건을 채우지 않아도 되는 취향에 대해 고민했다. 그 전에는 물건을 버리면서 또 물건을 채울 생각을 했다.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내가 좋아하는 책, 새로 산 옷, 일부러 찾아간 식당의 음식, 새로 산 가구, 새로 발견한 일상의 소품으로 취향을 드러냈다. 내가 형성한 취향은 남들보다 위에 서고 싶은 욕망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취향은 더 독특하고 더 새로운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정복당했다. 다시 남들보다 위에 서고 싶어 새로운 취향을 개발하는 과정에 물건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창을 넘어온 햇살이 텅 빈 원룸에 홀로 있는 트렁크를 따뜻하게 비추었다 원룸을 처분하고 카드빚을 갚고 밀린 공과금을 내고 나니 손바닥만 한 창문하나 있는 고시원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집에 큰 창이 있을 때는 창밖을 보는 법을 몰랐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커다란 창을 그렸다. 창밖의 풍경을 상상하는데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누운 채 손을 뻗어 출입문을 열었다. 고시원 복도 비상구 유도등 희뿌연 녹색 불빛이 트렁크를 비추었다. 화려한 색의 트렁크가 풀이 죽어 보였다. 비행기를 타고 세계 여러 곳으로 날아가야 하는 트렁크가 이곳에 갇혀 있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가고 싶은 곳은 많지만 갈 수 있는 티켓은 없었다. 그래도 형광 주황색 트렁크를 끌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갔다. 이륙하는 항공기가 보이는 출국장 창가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현실과 분리된 세상을 엿보았다. 나에게 상상할 수 있는 자유는 남아 있었다. 벤치마킹하고 있는 여행 파워 블로그를 통해 낯선 도시로 날아갔다. 호텔 창을 통해 도시의 풍경을 바라봤다. 이국땅에 어울려 있는 다양한 요소가 뿜어내는 기운을 만끽했다. 창 너머의 세상은 판타지가 아니라 개척해야 하는 놀이터다. 여행을 하면서 돈을 버는 시스템을 만들려면 창 너머를 지속해서 바라봐야 한다. 많은 도시를 여행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버거킹에 가서 와퍼를 주문했다. 방금 튀긴 감자를 먹기 위해 감자튀김에 소금을 빼달라고 했고, 바로 만든 햄버거를 먹기 위해 양상추와 피클을 추가해 달라고 했다. 일회용 케첩도 몇 개 챙겼다. 햄버거를 먹고 트렁크를 끌고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내 방이 저녁에 도착한 낯선 이국땅의 호텔이라고 생각했다. 낯선 냄새를 맡고 싶어 창을 열었다. 아래 중국집 주방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기름 냄새가 나를 맞았다. 창을 닫았다. 불을 끄고 누웠다. 이곳은 다시 한 평 남짓한 틀에 모든 것을 구겨 넣은 내 방이었다. 오늘 따라 방안이 무척 어두웠다. 이 방은 복도의 끝이다. 그래서 더 어두운지도 모른다. 손바닥만 한 창으로 가로등불빛이 스며들어왔다. 트렁크의 윤곽이 살아났다. 여행을 다녀와서 그런지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해졌다. 이방에 들어올 때는 내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끝은 곧 시작을 의미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