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보는 그림 이야기>
응암동에서 따릉이를 대여해서 불광천을 달려 홍제천교를 건너자 성산대교가 나타났다. 여기서부터 속력을 내기 시작했지만 따릉이는 신나게 달리지 못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나이 들어 다리 근육이 약해진 것이 아닌가 걱정되었다. 안전모를 쓰고 쫄바지를 입고 바람에 날리듯 달리는 경기용 자전거가 나를 가볍게 추월했다. 얼마 가지 않아 따릉이보다 바퀴도 작은 자전거도 나를 가볍게 앞질러 달렸다. 모두 힘들이지 않고 유연하게 페달을 밟는 모습을 보면서 내 다리근육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릉이는 만들 때부터 사고방지를 위해 속력을 못 내도록 어떤 장치를 한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달리다 경사진 도로가 나오면 나에게 채찍질하듯이 엉덩이를 들고 페달을 힘껏 밟았다. 헉헉거리면서 마포대교를 지날 즈음 왼편에 우뚝 서있는 강변 아파트를 보았다. 오래된 아파트지만 거실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면 속까지 시원할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강남을 바라보았다. 멀리 한강을 따라 이어지는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 힘을 주니 모두 아파트 단지 같아 보였고 띄엄띄엄 빌딩이 굴뚝처럼 솟아있었다. 햇발에 반사된 강물은 홀로그램처럼 은빛이었다가 청회색 빛으로 변신했다. 마포대교를 기점으로 돌아가야 따릉이 정액제 기준인 두 시간 안에 동네로 가서 반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 달려가면서 강 건너 강변 아파트들을 감상하기로 했다. 달릴수록 강변대로의 풍광이 점점 좋아졌다. 그래서 그런지 강변 아파트들의 모습도 점점 더 멋있어 보였다. 잠수교 앞에서 멈춰 섰다. 따릉이를 대여한 지 한 시간 반이 넘어서고 있었다. 따릉이를 돌려 이촌역으로 달렸다. 이촌역 근처에서는 대여소를 찾을 수 없어서 주민센터 옆에 있는 대여소를 겨우 찾아 따릉이를 반납했다가 다시 대여했다. 두 시간을 넘겼을 때 따라붙는 추가 요금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대여소를 찾아 달려간 것은 서울에서 밥벌이하는 동안 몸에 밴 억척스러움 때문이었다.
마포역 주변에 있는 따릉이 대여소에 자전거를 반납하고 한강이 훤히 보이는 북카페 ‘채그로’에 들렸다. 마포 전철역 안에서 북카페 광고판을 볼 때마다 궁금하여 벼르고 있었다. 그곳은 8층, 9층의 전면 창 쪽이 뚫려있는 복층구조였다. 한강의 전경은 앞 빌딩에 가려 시원스럽게 펼쳐지지는 않지만 마포대교가 가깝게 느껴져 관광지의 전망대에 올라온 느낌이었다. 북카페에서 창이라는 프레임으로 강변 아파트를 내려다봤을 때와 따릉이를 타고 가면서 바라봤던 강변 아파트 느낌이 달랐다. 북카페에서 바라본 한강의 풍경은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 바로 여행지의 호텔에서 바라본 느낌이었다. 공항에서 호텔로 오는 동안 느꼈던 기후, 냄새, 거리의 소리가 증폭시킨 여행의 설렘을 안고 바라본 창밖의 풍경은 낯설게 다가왔다. 반면 따릉이를 타고 달리면서 바라본 한강과 강변 아파트는 그 너머의 세계를 가로막고 있는 요새 같았다. 강변아파트에 관한 내 시각의 프레임이 아직 해체되지 않고 굳건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문득 그쪽 누군가가 강 건너에서 차지하거나 도달하기 어려운 세계를 바라보는 멍한 표정을 발견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조망권은 아파트 시세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나는 한때 거실에서 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강변 아파트에 사는 것이 소망이었다. 강변아파트는 나에게 성공한 서울 중산층을 상징하는 표식이었다. 한강 변을 따라 병풍처럼 이어지는 강변 아파트 중에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련이 남아 십 년이 넘어 흉물 같은 아파트라도 강변에 자리 잡고 있으면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서울은 아파트로 뒤덮여있어서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아파트 건설이 많은 인구와 좁은 땅이라는 문제해결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주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아파트를 시세차익을 얻는 투기 상품으로 인식했고, 권위주의 정권은 뉴타운 건설 같은 도심재개발을 통해 중산층을 유입시키며 보수정당의 지지기반을 확충해 왔다.
북카페에서 나와 마포역을 향해 걷다가 붕어빵을 사 먹었다. 천원에 두 마리였다. 붕어빵은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온다는 것을 알리는 제철 음식이다. 천원에 네 마리 하던 시절 종로3가 뒷골목 싸늘한 길에 앉아 붕어빵에 소주를 마시는 노인들을 보고는 씁쓸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했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열심히 살아도 그때 노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출출할 때 기름진 안주에 소주 한잔 걸칠 여유 말이다. 붕어빵을 먹으면서 붕어빵을 굽는 까만 틀을 보니 아파트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는 중산층을 만들어낸 틀이다. 그동안 서울시는 아파트를 더 쉽게, 더 높게 지을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완화했고 건설사는 끊임없이 아파트를 지어댔지만 나는 그 틀에 주입되는 밀가루 반죽과 팥이 되질 못 했다.
거대하고 획일적이던 서울에 다채로운 모양새와 색채가 피어나고 있다. 도심에 최첨단 광고판이 늘어나고 삶의 공간이 파괴되고 폐허가 되는 동시에 뒷골목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살려 보전하는 시도로 풍경이 재미있게 변하고 있다. 이런 다채로운 서울의 풍경은 사회학의 시각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나에게 강변 아파트가 들어가고 싶은 아름다운 성이었다가 지금은 콘크리트 병풍으로 보이는 것처럼 풍경이란 의식의 토대였다가 그것을 반영하는 주체로 변신하는 것 같다.■
그는 스크린도어에 달라붙어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날린다. 스크린도어 너머에는 두 줄기의 철로가 끝없이 평행선을 그린다. 평행선을 건너가면 스크린도어가 있다. 스크린도어 너머엔 그녀가 잡힐 듯 서 있다.
그녀는 그가 두 손으로 만들어 날린 하트를 받아 부풀린다. 까치발로 스크린 도어에 달라붙어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손끝을 정수리를 향해 구부린다. 그녀의 하트는 손끝이 맞닿지 않아 찌그러져 보인다.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여유로움이 맴도는 그녀의 표정은 밝다. 그녀 쪽의 철로에 열차가 불을 밝히며 들어온다. 그는 열차에 가려진 그녀를 보려고 방에 갇혀 창을 맴도는 파리처럼 스크린 도어를 더듬는다. 그녀 앞의 스크린도어가 좌우로 갈린다. 열차의 출입문이 둘로 갈린다. 두 사람은 언제 둘로 갈릴지 모른다. 열차에 오른 그녀가 출입문 쪽으로 다가와 그를 바라본다. 그는 이쪽 그녀는 저쪽에서 서로 바라본다. 한층 가까워졌지만 다가설 수 없는 그와 그녀는 이제 오늘의 이별을 준비한다.
그는 요즘 그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종잡을 수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대고 싶은 마음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교차한다. 그는 다시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든다. 그가 고개 숙여 자신이 만든 하트를 다듬을 때 열차는 그녀를 끌고 사라진다. 그는 빨려들어 갈듯 스크린 도어에 달라붙어 열차의 꽁무니를 향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만든다. 그가 달라붙어 있던 스크린도어가 열리고 열차의 출입문이 열린다. 그는 딸려오는 그녀의 잔상을 애써 지우고 열차에 오른다. 그는 달리는 열차의 출입문 옆에 기대서서 터널 안의 콘크리트를 바라본다. 검은 스크린에 오늘 하루가 빠르게 재생된다. 그녀와 저녁을 먹은 곳은 유기농 샐러드 카페였다. 건강한 삶을 위한 슬로우푸드는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는 저녁을 먹으면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은 실직상태였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그는 코끝을 열차의 출입문 창에 댄다. 창에 맺히는 입김은 약해서 바로 지워진다. 열차는 터널을 빠져나와 한강 위를 달린다. 그는 아직 한강에 머무는 붉은 햇살을 온몸으로 흡입한다. 열차에서 내린 그는 사거리를 지나 창문 하나 없는 고시원으로 들어간다. 그는 침대에 웅크린 채 식어가는 마음의 창을 연다.
그녀는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 도착한다. 넓적한 창을 통해 저무는 해를 보며 그를 떠올린다. 오늘따라 고층 아파트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이 아름답다. 밤이 되자 아파트의 넓적한 창은 검은 거울로 변한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매를 감상하다 스마트폰으로 그를 호출한다. 고시원 공동 주방에서 컵라면을 먹던 그는 그녀의 메시지를 보고 뭐라 답장할지 고민하다가 스마트폰에 저장된 그녀의 사진들을 열어본다. 사진 속의 그녀는 실제보다 더 말라 보인다. 그는 그녀에게 ‘지금 딱 보기 좋아’라고 답장한다. 그녀는 창에 비친 자신의 몸매를 감상하면서 다이어트 계획을 세운 다음 그에게 다음번에도 유기농 샐러드 카페에 가자고 묻는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피곤해서 일찍 자겠다고 한다. 그녀는 ‘잘자’라고 쓰고 문자표의 하트 세 개를 입력해서 보낸다.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하트를 기다리다 지친 그녀는 방에 들어가 전신거울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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