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실내디자인론 강의를 듣던 중 교수님이 공간분석에 대한 발표과제를 내주셨다. 과제를 하기 위해서는건축물을 먼저 선정해야 했다. 일단 가까운 곳에 선택할만한 건축물이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너무나 유명한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 인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건축에 문외한이었을 때에는 지나쳐 버린 그 건축가가 입문 이후에는 특정한 건축가로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그의 삶과 인상적인 작품들에 건축공부가 한층 더 재미있어졌다. 안도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니 존재할 수 없을) 경력의 건축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1995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스타 건축가다.
[안도 다다오는 어떻게 건축을 하게 되었을까]
'안도 다다오 Ando Tadao' 싸우기만 해도 돈을 준다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며 복싱선수생활을 하였을 정도로 가난하게 자랐다. 나름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어느 프로복싱선수가 시합하는 것을 보고 그보다 더 잘할 자신이 없어 재능이 없다는 생각에 그만둔다. 이후 건설현장에서 막노동 일을 하다가 헌책방에서 우연히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일컫는 프랑스의 건축가 르 꼬르뷔제의 작품을 보고는 영감을 받았다 한다. 무작정 그를 만나기 위해 무일푼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갔는데, 이미 르 꼬르뷔제는 죽은 뒤였다. 하지만 르 꼬르뷔제의 위대한 건축물 Chapelle Notre-Dame-du-Haut (샤뻴 노트르 담 듀 오, 정식 명칭은 '샤뻴 노트르 담 듀 오'이지만 성당이 위치해 있는 도시명 Ronchamp을 따라 롱샹성당이라고 불린다)를 비롯한 여러 건축물에서 '빛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건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을 돌며 건축여행을 하였는데 이 기간을 통해 안도 다타오는 건축을 단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건축 철학을 완성한다. 사실 나는 이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는 기초제도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그렇게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제도를 배우지 않은 상태로 설계도를 그리는 건축가가 된다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런 나의 물음은 발표를 준비하는 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가 설계한 여러 건축물을 공부하면서 정말 천재라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안도가 좋아하는 빛과 물, 돌, 나무, 하늘, 바람]
안도의 건축 철학은 빛과 물, 나무, 하늘, 바람, 돌 등 자연과의 호흡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건축가들이 해왔던 이 특별하지 않은 주제에서 어떤 차이가 있겠냐는 반문은 당연하다. 아니 입지라는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하는 건축가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안도의 건축에서는 '고려'가 아니라 '활용 '이라는 개념이 두드러진다는 차이가 있다.
천장, 벽, 바닥까지 빛을 영리하게 이용한 그의 작품사진을 보다 보면 그의 건축에 새겨진 메타포를 이해하는 순간 그가 왜 천재라 인정받는지를 알게 된다. 안도를 알기 전에 루이스 칸 건축가의 생애에 감동을 받은 정도였지만 사실 건축 작품의 차이를 이해하고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빠리에 있을 때 장 누벨 건축가가 설계한 아랍 박물관에 가서 대단하다 느껴본 적은 있지만 깊은 감동으로 이해할 만큼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안도 다다오는 나에게 건축이 무엇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시켜 준 건축가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명확하고 단순하다. 건축은 그 어느 분야에서보다도 수많은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속에서 안도는 빛 한 줄로 그의 메시지가 이해될 정도로 간결하게, 그러나 매우 아름답게 건물을 설계한다.
Meditation Space/UNESCO ⓒTadao Ando
특히 파리의 유네스크 본부 뒤편에 있는 Meditation Space와 강원도 원주시 [뮤지엄 산] 끝자락에 있는 제임스 터렐 명상관 내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빛을 활용해 콘크리트가 이렇게 우아해질 수 있다니 아, 정말 이 사람 천재구나'하는 감탄이 튀어나왔다. 이미 천 년도 전에 몽테스키외가 말했듯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맞다. 그래서 안도는 더 인간적인 건축가로 다가왔다. 어디에선가는 르 꼬르뷔제의 영향을 받았음직한 요소들을 비롯해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청년 안도가 새겨두었을 여행의 감흥이 그의 작품 곳곳에 나타나 있다. 하지만 안도는 청년기의 그 자신을 뛰어넘어 매우 우아한 빛과 매력적인 곡선을 그리는 설계자이며 세계적인 건축가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사람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더 흥분되는 일이겠는가.
[노출 콘크리트 예술성을 완성한 건축가]
그리고 '노출 콘크리트'를 빼고는 안도 다다오를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수많은 건축가중에서 안도를 선택하게 된 데에는 취향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건축에 문외한이었을 때부터 나는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진 내. 외부 마감이 좋았다. 빈 벽면에서 꾸미지 않은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면 역시나 건축은 취향의 차이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다. 게다가 때도 잘 타지 않을 것만 같은 그레이 컬러는 완벽하다. 하얀색 깨끗한 벽지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게 더 좋았다. 미적 가치를 따지기 이전에 안도는 처음엔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서 그 공법을 시작했다 고백했다. 무명의 무학 건축가는 건축사무실을 내었으나 고객이 없었고, 그 스스로 발품 팔아 다니며 고객을 유치하다 남들보다 싸게 짓는 전략을 고심했다 한다. 그러다 시중보다 30%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 공법을선택하여 발전시키게 된다.
실내건축 사업자들의 밥벌이를 위협한다는 노출 콘크리트 공법은 일단 거푸집을 떼어내고 정돈하고 나면 더 이상 내부 마감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배, 페인트, 걸레받이, 몰딩 등의 내부 마감재가 필요 없으므로 공사비가 절약된다. (하지만 안도처럼 말끔하게 하려면 노출 콘크리트 공사비가 오히려 더 비싸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안도는 노출 콘크리트를 선택하였고, 집 안에 방과 방을 연결하는 사이에 외부와 연결된(천정이 없으므로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옆방으로 건너가야 하는) 중정을 두어 일명 '불편한 집'이라 불린 [스미요시 나가야]를 통해 일약 스타 건축가가 된다.
불편해서 어떻게 사냐는 건축주의 반발에 '집은 좀 불편해야 한다. 자연의 변화를 느끼면서 살 수 있는 집이 좋은 집이다' 등 안도 특유의 배짱과 언변으로 설득했고, 마침내 오사카 주택가 한쪽에 노출 콘크리트로 좁고 길게 생긴 집이 완성되어 그 지역 명소로 자리 잡게 된다.
[안도의 건축 철학, 그의 시그니처가 된 빛과 물]
안도는 이처럼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실내에서만 하루 종일 머물기보다는 방과 방 사이를 지날 때는 외부로 잠깐 나와 환기도 하고, 비가 오면 비 오는 것도 느끼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자연의 일부가 집안에 들어와 함께 호흡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안도의 이와 같은 건축 철학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빛의 교회에서도 잘 드러난다. 십자가를 상징하는 벽면 사이로 빛이 비쳐 드는 매우 아름답고 정적인 곳에 안도는 오직 빛만이 있기를 바랐나 보다. 하지만 겨울에는 추우니 그 틈새에 유리창을 끼워야 한다는 교회 측 주장과 대립하다 결국 안도가 설득되어 유리 설치를 허락하게 된다.그랬음에도 건축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면 언제 가는 그 유리를 빼 버릴 것이라 호언장담을 한다. 좀 춥고 불편해도 그것이 자연에 순응해 사는 삶이라는 그의 생각은 옳다. 다만, 그런 이유로 그의 집이 주거공간으로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비난도 있다.
영화 [안도 다다오]를 보면 뒷마당이 공원과 연결되는 독특한 집을 설계하면서 안도는 말한다. ''
"건축은 터를 읽는 일입니다. 인생도 앞날도 예측해야 하지요"
"건축은 사계절을 표현하는데서 나옵니다"
자연과 대화하는 집을 짓고, 건물이 풍경을 가리면 안 된다고 하며 건물을 최대한 땅속으로 숨기는 나오시마 섬에 안도가 기획한 작품들을 보면 그의 건축 철학이 요샛말로 소위 얼마나 '핫'한 깨달음을 주는 것인지 알게 된다. '주거문화의 빈곤'이라는 표현을 안도는 정면에서 보여주는 건축가다. 단언컨데 안도라면 똑같은 대형 고층 아파트를 설계하는 데에서 자부심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건축은 터를 읽는 일'이라는 안도의 말이 잘 느껴지는 건축은 바로 [뮤지엄 산 Museum SAN]이다.
뮤지엄 산은 국내에 있는 몇 안 되는 안도가 설계한 건축물 중 하나다. 그런데 뮤지엄 산은 건물 하나만을 지은 것이 아니다. 웰컴센터에서부터 미술관으로 미술관에서 명상관으로 연결되는 대지면적 71,172m² 안에 거대한 동선이 모두 하나의 작품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곳에 들러 아주 천천히 오후를 꼬박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안도는 이 곳을 설계하면서 얼마나 즐거웠을까. 그가 좋아하는 재료들을 가지고 건축주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넓은 대지를 마음껏 창작하였을 안도 다다오! 결국 안도는 풍요로운 창작의 결과로 그의 시그니처와 같은 작품을 뮤지엄 산으로 남겨놓았던 것이다.
드넓은 대지 위에 펼쳐진 배치도를 보면 안도가 얼마나 대담한 건축가인지 느껴진다. 담을 두고 담 사이에 연결되는 낮은 물과 자갈, 그리고 그 물에 온전히 비쳐 드는 주변의 풍경과 건물은 360도로 펼쳐지는 파노라마처럼 웅장하고 우아하다.
건물 중간에 위치한 정원의 물에 건물이 투영되어 나타나는 극적 효과를 스페인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안도가 무어인들의 건축양식에서도 영향을 받았을 거라 짐작했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벽면에 그 무엇으로도 훼손시키지 않아야 한다 고집했던 안도는 2014년 중국 상해에 지은 폴리 그랜드 시어터를 통해 유리 스킨으로 외관을 마무리하는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상해 특유의 날씨에 따른 선택이기도 하겠지만 밤에 조명에 비친 이 건물의 모습은 유리 스킨과 튜브 공간으로 더욱 매력적인 빛을 발하며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변화를 주는 것도 안도라면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물론 노출 콘크리트라는 그의 시그니처 공법으로 물의 교회, 빛의 교회, 나오시마 프로젝트, 뮤지엄 산, 그리고 폴리 그랜드 시어터 등 그의 작품은 계속되고 있다.
* 불매운동에 앞서 역사 인식으로 인해 전 세계 국경 중에 일본은 제외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도가 일본이 아닌 곳에 많은 작품을 지어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좀 더 자라면 본격적인 건축여행을 시작해 볼 계획입니다.
*국내에 있는 안도의 작품 중 서울에 위치한 JDC는 너무나 실망스러웠기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겠습니다.
따라서 언제가 되든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도 살리지 못한 입지의 한계>에 대한 글을 준비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