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 치킨 때문에 서로에게 비수를 꽂다.
며칠 전 남편과 싸웠다. 그런데 싸움의 시작이 참 어처구니없었다.
주문한 치킨이 너무 맛이 없어서였다.
내가 학원을 접고 거의 2년을 백수로 지냈다. 가끔 한 번씩 크게 들어오는 수입이 있긴 했지만 숨만 쉬어도 빠져나가는 돈 앞에서는 그 돈도 잠깐 통장을 스치고 지나갈 뿐이었다. 그동안 뭔가 배우겠다고, 해보겠다고
여기저기 쓴 돈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남은 건 빚이고 내가 벌어들인 돈은 집안에 보탬이 되지 못한 채 조용히 그 빚을 메우는 데 쓰이고 있다.
집, 가게 임대료, 관리비.
어느 순간부터 이 모든 걸 남편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새벽에 늦게 잔 날도 알람 맞춰 일어나 아침 여섯 시에 남편 먹을 것을 챙겼다. 예전보다 더 신경 쓰고, 더 조심스럽게. 강의나 책 판매 수익만 기다릴 수는 없어서 알바도 알아보고 지원도 해봤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조차 나이와 경력이 벽이 되어 돌아왔다. 이 상황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서러운 그날, 남편이 건드리면 안 될 곳을 건드린 셈이 됐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치킨 먹으며 축구 보는 시간이다. 축구가 아니어도 일주일에 한 번쯤은 꼭 치킨을 먹는다. 그날은 내가 조금 멀리 나가 일을 하고 돌아오는 날이라 저녁을 준비하지 못했다. 운전하며 집에 가는 길에 치킨을 주문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집 문 앞에서부터 치킨 냄새가 맛있게 났다.
왠지 행복한 기분에 '아, 맛있게 먹고 있겠지.' 그런데 문을 열자 남편의 표정이 어두웠다.
“고생했어. 빨리와서 같이 먹자” 대신
“왜 이런 걸 시켰어?”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나는 이걸 고른 이유를 설명했다. '신메뉴 같았고, 양념에 토마토가 들어갔다길래 상큼할 것 같았고, 맨 위에 떠 있어서 인기 메뉴인 줄 알았다고.' 하지만 이미 바삭한 치킨을 기대했던 남편에게 그 치킨은 조미료 맛 가득한 소스에 눅눅해진 실패작이었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남편의 짜증이 확 터졌다. 그리고 그 화살은 고스란히 나에게로 날아왔다.
“왜 매번 선택할 때 신중하지 못해?”
나는 그 순간, 내 나름대로는 신중했다고 말했다. 그 말이 변명처럼 들렸나 보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고 했다.
말들이 점점 날카로워졌고 우리는 서로에게 비수를 꽂았다. 치킨은 결국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치킨보다 그동안 쌓여 있던 말들이 더 크게 터진 밤이었다. 며칠 동안 우리는 서로를 투명인간처럼 대했다. 말도, 눈길도 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그날의 남편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는 모든 말이 가시처럼 느껴져 제대로 들리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 그날 진짜 짜증이 많이 났겠구나. 상황이 이래서 잠깐 감정을 쏟아낸 건데 나는 그걸 받아줄 여유가 없었구나.
.........어쩌면 그날의 싸움은 치킨 때문도 아니고 누구 하나의 잘못 때문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각자 마음에 너무 무거운 걸 들고 있어서 그랬던..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