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구했다. 실은 몇 주 정도 집을 보러 다니면서 심신이 빠르게 지쳤고 집 구하는 일을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었다. 오랜 시간을 보낼 장소인데 아무렇게나 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집을 구하는 일은 정말이지 피곤한 일이었다. 집이라는 'ㅂ' 받침으로 단단히 닫힌 그런 마감이 잘 된 집은 드물었다. 글자모양으로 따지면 집보다는 즛같은, 조금 더 뚫려있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느낌의 집들이 훨씬 많았다. 화장실과 밖으로 통하는 작은 문이 샤워커튼 하나로 겨우 막혀있거나 1층이라 달려있는 방범창이 마치 나를 구속수감된 것처럼 느끼게 하거나 이토록 언덕일 수 있나 싶은 곳에 위치해 있거나 수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이는 집의 주인이 계약도 전에 수리는 절대 해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내가 구할 수 있는 예산의 안에서는 이런 즛같은 집 밖에 구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열정이 넘치는 공인중개사를 만났다. 그에게 한 군데를 볼 수 있는지 물었지만 그는 내게 세 군데를 보여주었고 나는 그 세 집 중에 한 곳을 마음에 담아두었다. 그곳을 두 번이나 보러 갔는데 나는 변기 물이 잘 내려가는지 방충망은 잘 되어있는지 보일러는 잘 돌아가는지 그런 것은 보지도 않았다. 처음 방문에선 창문들을 열어 바깥 풍경을 보았다. 거실, 작은 방, 안방, 부엌의 순서로. 거실 창문으로는 나무가 보였고 부엌 창문으로는 산이 보였다. 두 번째 방문에선 내가 들어와서 산다면 어떤 식으로 공간을 쓸게 될지를 상상해 보았다. 거실에 테이블을 놓고 안방에 책장을 놓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다였다.
"사장님 이 집으로 할게요."
건물 현관에 진입하려면 사각형도 아니고 오각형도 아닌 희한하게 꺾인 건물을 따라 빙글빙글 둘러진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집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꼭대기층에다 우편함은 낡아서 칠이 다 벗겨졌고 현관문에 호수를 표시하던 플라스틱 조각은 떨어져 나가 그 부분만 조금 희었다. 옥상으로 통하는 통로엔 문짝이 없었고 관리비가 없는 만큼 과연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티가 났다. 나 같은 자가 집을 구하면 개고생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집에선 창문을 열면 나무가 보였다. 그것이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같은 계절에 눈이 쌓이면 건물현관 밖 빙글빙글 계단이 얼어붙겠지만 거실 창으로 눈을 맞는 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주로 집에서만 지내는 내가 계절이 오고 가는 동안의 일들을 놓치지 않고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가진 것 없이 시작하기에 이 집도 나쁘진 않을 것이라는 대책 없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