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by 김모노

어린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좋아하는 게 많아서였을까. 노래도 하고 싶었고 작곡도 하고 싶었다. 사진작가도 하고 싶었고 드라마 PD도 하고 싶었다. 이 중 많은 것들은 이루었고, 많은 것들은 스쳐 지나갔다. 한 우물만 파라는데 나는 여기저기 파고 다녔다. 아직도 파고 다닌다. 어슬렁어슬렁.


사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할 때만 해도 내가 되겠어?라는 생각이 더 컸다. 반신반의도 아니고 재미 삼아 지원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작가 선정 메일을 받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작가 신청을 넣었는데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너무 기뻤다. 차마 소리는 지르지 못했다. 내 글은 익명성을 보장하는 글이라 아무도 내가 글을 쓰는 줄 모르는 상태고, 메일을 확인했을 땐 나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글로 뭔가 보상(?)을 받을 수 있구나 생각했던 건 중학생 때였다. 남한산성에서 백일장을 했었는데 내가 참여한 분야는 시였다. 그땐 단순히 그냥 시가 제일 빨리 끝나서 선택했었다. 정말로 5분도 안 되어 시를 완성하고 뛰어놀았는데 그 시가 상을 받았다. 어리둥절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공부 잘하던 친구한테 그 시의 그림을 그리게 하고 상을 받게 한 건 5분 만에 탄생한 내 시가 이용당하는 것 같아 좀 기분이 나빴지만. 어쨌든 그리고 그때부터 시를 쓰는 데 관심이 생겨 국어 선생님을 계속 찾아갔다. 선생님 눈에 얘는 뭐지라는 생각이 보였던 것 같기도. 같잖은 시 몇 편 들고가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 물었으니. 고등학생 때는 글짓기로 상을 받았다. 둘 중에 어느 게 낫냐는 질문에 이분법적인 사고가 싫어 둘 다 좋다고 썼는데 그걸로 상을 받을 줄이야. 심지어 그건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수행평가로 들어가는 글짓기였다.


대회 말고도 글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쓴 다이어리와 편지들이 그걸 증명한다.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보다 글이 더 좋았다. 주워 담지 못하게 한 대신에 머리를 한참이고 싸매야 나오는 게 글이지만 그게 또 매력이다.


앞에 말했듯이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그래서 그중 하나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하나만 파도 이루기 힘든 세상에 여러 개를 파고 다니니까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오늘 그 많은 우물들 중 하나가 터졌다. 첫 글을 무엇으로 내보일까 하다가 수상 소감 같은 글을 쓰게 되었다.


앞으로 내가 쓸 글은 국어 선생님을 찾아가 내민 같잖은 시처럼 같잖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이야기일 거라고 확신한다. 삶은 언제나 특별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이 같잖은 글이 우물 터지듯 터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