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은 자극적이었다. 그저 그렇게 학점을 따기 위해 듣는 수업과는 별개로 비싼 수강료는 충분히 제값을 했다. 수업의 퀄리티를 떠나 매 회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선생님이 오셔서 뒷이야기와 실습을 이어갔다. 화면으로만 보는 방송이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그들은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듣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치열했다. 배우와는 다른 치열함이 있었다. 하고자 하는 사람은 넘쳐났고 자리는 한정적이었다. 우리가 편안하게 리모컨을 돌려가며 보는 방송 안에 있는 그들은 그 자리에 있기까지 부던한 노력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로 무대 연기를 주로 해왔던 내가 카메라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카메라 연기를 할 때에는 시선이 절대로 카메라에 걸쳐서는 안되었다. 그건 약속이었다. 분명 카메라 앞에서 주어진 연기를 소화하지만 카메라는 관찰자일 뿐이었다. 그러나 아나운서는 달랐다. 정확하게 카메라를 응시하고 그 너머의 시청자와 호흡을 해야 했다. 감정을 담아내야 하는 연기와 감정을 덜어내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리포팅에도 차이가 있었다. 문장을 뱉어내는 것 이상으로 신뢰를 전달해야 했다.
처음에는 스킬만 장착하면 되는 줄 알았다. 아나운서처럼 뉴스를 읽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긍지와 책임감이 필요했다. 내 목소리를 통해서 세상의 이야기를 전달받게 될 사람들의 존재를 계속해서 인지해야 했다. 단어 하나, 한 글자로 인해 의미가 퇴색될 수 있고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 수 있었다. 나의 사적인 감정이 어떠한 문장에 표정으로 드러나면 그 문장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었다. 알면 알수록 이 세계에 어울리는 교양과 덕목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무대 위에서의 모습은 잠시 내려놓고 공정과 신뢰에 어울리는 방송인이 되기 위한 마음가짐을 다졌다.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이 갖는 무게감에 대해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남들보다 늦었기에 마음이 조급했다. 대학교의 학기는 모두 마치고 졸업을 유예한 상태인데다 물리적인 나이도 방송국 신입사원들에 비해 한 두살 많았다. 남들보다 더 배로 달려야 겨우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최근 방송국의 트렌드가 아나테이너를 선호하면서 내가 가진 이력이 플러스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그 노릇이 힘들어 도피했다는 죄책감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이 생각에서 벗어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연기를 하면서 알게 모르게 단련된 것들은 내가 아나운서를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신입생 시절에는 쭈뼛거리기만 했던 내가 몇 작품을 거치며 관객을 만났던 경험으로 다른 친구들보다는 거리낌이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게 극도로 싫었던 나인데 이제는 먼저 나섰다. 인정받는 게 좋았고 칭찬받는게 좋았다. 연기를 하면서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에는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크게 있었다. 내가 선택한 연기라는 길에서 돌아온 만큼 여기에서는 돌아갈 곳 없다는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