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들에게 미치다

영화 <새벽의 약속> 리뷰

by 야생

모성, 고귀하다!? 영화 <새벽의 약속>은 로맹 가리의 자전적 소설인 <새벽의 약속>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로맹 가리의 인생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은 그의 어머니다. 그런 만큼 <새벽의 약속>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마흔넷의 내가 프랑스를

온 마음으로 사랑한 것은

어머니의 흔적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큰 사랑은 누구도 줄 수 없으리.


로맹 가리의 인생에서 어머니를 뺀다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어머니와 아들, 어머니의 헌신과 위대한 작가의 탄생이라는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조합이다. 그런데 다른 면에서 잃은 것은 없었을까.


로맹의 유년 시절


1924년 폴란드 빌나. 로맹은 유대인 박해를 피해 홀어머니에게 이끌려 소련 연방을 떠난 지 3개월째다. 어머니는 모자를 만들어 방문 판매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어느 날 경찰이 들이닥친다. 장물을 취급한다는 제보가 있었다는 것이다. 벌집처럼 쑤셔놓은 살림살이. 화가 난 그의 어머니는 로맹의 손을 낚아채서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그리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우리가 누군지 모르나 본데,

말 섞는 것도 영광인 줄 알아.

잘 봐, 내 아들이야.

프랑스 대사가 될 아이야.

작가! 레지용 도뇌르 훈장! 장군!

런던 양장을 입을 애야!


누가 들어도 우스꽝스러운 말이다. 모자 팔이로 겨우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주제에! 그들은 거침없이 비웃는다. 로맹은 그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견딜 수 없어 그 자리에서 도망친다.


그 비웃음은 내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평생 가장 괴로웠던 순간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비웃음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머니는 이웃들에게 복수하듯 음모를 꾸민다. 프랑스 유명한 디자이너와 관계가 있는 것처럼 속여서 의상실을 차린다. 그때부터 돈이 벌리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로맹에게 온갖 것을 다 배우게 한다. 음악, 사격, 춤, 사교술... 그런데 미술은 허락하지 않는다. 로맹이 미술을 좋아했음에도. 미술로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라나.



로맹의 청소년기


그렇게 잘되던 의상실도 재정문제로 문을 닫게 된다. 로맹네는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 니스에 정착한다. 프랑스는 어머니에게 기회의 땅이다. 아들을 향한 꿈을 그곳에서 이룰 것이다. 어머니는 소련에서 무명 배우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연기력을 살려 골동품 가게 점원으로 일하며 많은 돈을 손에 거머쥔다. 그리고 호텔의 주인이 된다. 경제적으로 숨통이 트이게 된 것이다. 로맹도 이제는 사춘기,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그 호텔에 자렘바라는 화가가 1년 동안 머문다. 그는 어머니에게 관심이 있다. 그는 로맹에게 은근히 도움을 청한다.

고백할 게 있단다.

네 엄마를 만나고 싶어.

가슴에 온통 너만 들어있는 건 알지만,

네 다음 자리라도 난 만족한단다.


네게 쏟는 애정을 조금만 나눠준다면,

너도 지금보다 한결 편할 거야.

외아들이 얼마나 힘드니!


로맹은 생각한다.

자렘바가 아버지가 된다면,

마침내 내 숨통도 트일 것이다.

그럼 죄책감 없이 삶을 모험할 수 있겠지.


로맹은 어머니가 그 화가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설득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반응은 싸늘하다.

평생 단 한 사람을 한 남자를 열렬히 사랑했어.

그 사람은 날 존중하지 않았고 신사도 아니었지.



어머니는 로맹의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상처로 이제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로맹 외에. 그녀의 머리와 가슴속에는 로맹뿐이다. 로맹에게 사랑과 열정을 쏟아붓는다. 로맹은 어머니의 기대와 사랑이 부담스러웠지만, 거기에 부응하고자 노력한다.

(어머니의) 결혼계획이 무너지자

꿈을 이뤄드리기 전에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난 프랑스의 천재 문학가가 되어

불멸의 걸작을 써야 했다.

난 진지하게 집필을 시작했다.


로맹의 청년기


로맹은 대학 진학을 위해 처음으로 어머니를 떠나 파리로 향한다. 조금은 숨통이 트이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다. 몇 번인가의 거절 끝에 그의 단편이 신문에 실린다. 어머니는 그의 작품이 왜 계속 신문에 실리지 않냐고 압박한다. 로맹은 어머니에게 거짓말한다. 다른 이름으로 다른 신문에 실었다고.


어머니의 기대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히틀러를 죽여서 영웅이 되라고 부추긴다. 정말 어처구니없다. 어머니의 허영심의 끝은 어디인지. 로맹은 1938년에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공군에 징집된다. 어머니는 로맹이 장교 견장을 단 멋진 모습으로 귀향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로맹은 유대인이요, 프랑스에 귀화한 지 얼마 안 된다는 이유로 300명 중 유일하게 장교 임명에서 제외된다. 이때도 어머니가 오히려 자랑스러워할 만한 거짓말로 그 상황을 넘긴다.


어머니는 다음번 임명을 부탁하기 위해 공군 학교까지 찾아온다. 그때 로맹의 입장이란 것이, 어머니를 환영할 수도, 어머니를 타박할 수도 없다. "엄마 왔다!" 조롱이 섞인다. 아직도 엄마가 필요한 젖먹이구나! 마마보이! 로맹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어머니는 늙은 엄마가 창피하냐고 질타한다. 로맹은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포옹한다. 우~! 와~! 야유가 쏟아진다. 어머니, 눈치 없는 게 최상급이다. 그녀의 관심은 오직 아들, 그리고 그의 성공. 그것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출격을 앞두고도 집필하다


그래도 집필하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곧 책을 마무리하면

세계가 네 재능을 알아볼 거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로맹은 전쟁터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출격 몇 시간 전에도.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출격할 때는 전투기 앞유리에 어머니의 사진을 붙인다.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을 느낀다.


드디어 그는 <유럽의 교육>이라는 소설을 완성하고 <분노의 숲 >이라는 제목으로 영국과 출판 계약을 맺는다. 또한 전쟁에서 공을 세워 드골 장군의 훈장도 받는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예술적 성취를 거뒀고 군에서도 명망을 얻게 되었다. 로맹은 금의환향을 꿈꾼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보니,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어머니는 3년 전에 죽었단다. 어머니의 주치의가 그동안의 경위에 대해 설명한다.

떠나시기 전에 편지를 250통이나 쓰셨죠.

밤낮으로 침대에서 쓰셨어요.

스위스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달라 하시더군요.

아들에게 정기적으로 보내야 한다면서.

일주일에 한두 통씩.

아들이 무너질까 봐 숨기신 거예요.



로맹, 불혹의 나이를 지나 어머니를 추모하다


어머니가 부탁하신 건 전부 다 했어.

다 했는데 부질없어.

작가, 콩쿠르상, 프랑스 대사 전부.


이 옷을 런던에서 맞춰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실까?

모르시지, 떠나셨으니까.

이런 건 하나도 모르고 가셨어.

하나도 내가 약속 지킨 것도 모르시겠지.


누가 누구의 인생을 산 것인지. 로맹이 어머니의 인생을 산 것인지, 어머니가 로맹의 인생을 산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들은 꼭 두 사람이 한 사람의 인생을 산 것 같다. 그렇다면 로맹이 작가로 성공한 것이 어머니의 희생을 상쇄할 만큼 충분하게 보상이 되었을까.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했던 로맹의 삶 또한 한 인간으로서 온전한 삶이었을까.


어머니들은 왜 그렇게 자식들에게 미치는지. 로맹의 어머니가 그 열정을 자신에게 쏟아부었다면, 그녀도 로맹의 성취 이상으로 빼어난 삶을 살았을 텐데. 어머니와 로맹, 각자 자신의 재능과 욕망을 따라 살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지나친 기대와 지나친 부담은 서로에게 독이 된다.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삶은

일찍부터 영원치 못할 기쁨을 주네.

그 후로 끝날까지 만족을 모르리라.

여인이 그댈 껴안아 사랑을 속삭일 때도

갈증은 여전하니

내 목을 끌어안는 사랑스러운 팔

사랑을 말하는 부드러운 입술

하지만 더 큰 사랑을 알고 있네.

오래전 발견한 달콤한 샘물을

마를 때까지 모두 마셔버렸구나.


로맹 가리의 경우는 그나마 다행스럽다. 어머니에게 한 약속을 지킴으로 다방면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도 어머니의 기대가 부담스러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머니의 사랑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를 위해 전 인생을 갈아 넣은 어머니는 한 줌의 흙이 되었을 뿐. 모성, 과연 고귀함으로 결론짓고 끝낼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