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생각하지마!

천국은 일구어가는 거잖아

by 야생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다!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은 지옥과 같은 전쟁을 겪고, 삶의 비극 중에도 천국을 일구어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4대에 걸쳐 펼쳐지는 그녀들의 삶의 파노라마로 GO!


1대/ 안토니아


안토니아는 딸 다니엘과 함께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서다. 안토니아는 딸에게 말한다.

어렵게 생각하지마!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20년 전 안토니아가 이곳을 떠나기 전과 지금,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마을 풍경도 그대로다. 사람들의 인식도 여전하다. 남자들의 세상! 남자들의 커다란 목소리가 조용한 여자들을 짓밟는 곳. 여자들이 제대로 살기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 어렵게 생각하지 말란다. 엄마 안토니아가 딸 다니엘을 바라보는 눈빛, 따뜻하고 강렬하다. 연대와 연민의 진한 사랑이다.

"이 불결한 놈! 나쁜 놈!

어서 사라져!사탄의 자식아!

위선적이고 무자비하고 술고래에

타락한 변태자식아!

이런 사악한 놈!"

안토니아 엄마의 유언이다. 이미 죽은 아버지가 살아생전 얼마나 횡포를 부렸길래, 그녀의 마지막 말이 이토록 험악할까.

안토니아와 다니엘, 둘이 꾸려가는 농장생활

마을 사람들은 안토니아 모녀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방탕한 따님이 돌아오셨군! 노골적으로 모욕하는 사람도 있다. 안토니아가 돌아온 것을 기뻐한 사람은 과거 삼총사로 지냈던 크룩 핑거뿐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후 은둔자로 지낸다. 전쟁의 후유증이 깊다. 그는 세상을 지옥이라 부른다.

소화하기 힘든 식사 후의 즐거운 후식은 나에게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 by크룩
농부 바스

농부 바스가 그들 모녀를 찾아온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여자를 사람 취급도 안하는 마을 남자들과는 좀 다른 분위기다. 사실 그는 토박이가 아니다. 안토니아가 그 동네를 떠날 즈음, 들어와 살기 시작한 사람이다. 토박이들에게 그는 이방인인 셈이다. 그는 안토니아에게 다짜고짜 말한다.

"우리 관계에 대해서 결혼 말이야. 내 생각에는 당신은 과부이고, 나도 부인이 없고. 그리고 당신은 아름답고 하니까. 내 아들에게 엄마가 필요해."

"난 당신의 아들이 필요 없는데."

"정말?"

"그럼요."

"그럼 남편은 필요하지 않아?"

"뭐 때문에요?"

바스는 안토니아가 자기의 제안을 즉각 받아들일 줄로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안토니아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농장일에 분명 남자들의 노동력이 필요했을텐데, 그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하는 걸 보면.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당당하다.

바스는 안토니아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된다


안토니아를 따라가는 루스립

안토니아는 길을 가다 한 꼬마가 루스립을 놀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루스립의 아버지인지 누구인지는 그가 꼬마들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꼬마들과 함께 박장대소할 뿐이다. 이때 안토니아가 수호 천사로 나선다. 루스립에게 나무열매를 던진 꼬마를 나무 등걸에 매달아 꼼짝 못하게 한다. 루스립은 보통 사람보다 생각하는 것이 좀 느린 사람이다. 그러나 이때 만큼은 누구를 따라가야 할지 빠르게 판단한다. 안토니아는 이렇게 루스립을 가족으로 얻는다.


2대/ 다니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다니엘

다니엘도 누구 딸인지 당차기가 비할 데 없다. 꼴불견인 사람을 발견할 때마다 그를 혼내주는 상상을 한다. 그런데 어느날 상상으로 끝나지 않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녀는 톱을 돌려받으려고 디디네 집을 방문한다. 디디네는 아버지와 큰 오빠 등살에 여자들이 숨도 제대로 못쉬는 형편이다. 아버지는 디디를 더러운 창녀라 부르기까지 한다. 그 오빠는 사람들 보는 앞에서 디디의 가슴을 만지며 물건 다루듯 한다. 자기 마음에 안들 때는 발로 디디의 정강이를 차기도 한다. 어머니는 딸이 당하는 것에 속수무책이다. 디디에게 집은 지옥이다.


다니엘은 그 날, 외양간에서 피티가 여동생 디디를 성폭행 하는 것을 목격한다. 다니엘은 거시기를 가리고 있던 피티의 손에 아주 정확하게 쇠스랑을 꽂는다. 이 사건으로 디디는 자기 집을 도망나와 안토니아의 가족이 된다. 피티는 상처가 아물자 그 동네를 떠난다. 마을 주민들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죽은 듯이 조용하다. 침묵과 방관은 또다른 범죄다.


성폭행을 당하며 안경을 움켜잡은 디디의 손/ 안토니아가 새로 맞춰준 안경을 쓰고 기뻐하는 디디


어느날 다니엘은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은 싫다고.

"그냥 임신만 시켜주면 돼요.

남자는 필요없고 아기만 있으면 돼요.

그 남자는 이 사실을 알 필요없어요."

도시에서 다니엘을 임신시킬 남자를 찾을 수 밖에. 한 호텔 정원에서 안토니아와 레타가 초조한 듯 즐거운 듯 망보듯 일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다니엘은 생전 처음 보는 남자의 정자를 받고, 흘러나가지 않도록 물구나무서기까지 한다. 이렇게 다니엘은 자발적 미혼모가 된다. 그리고 다니엘은 딸 테레스의 선생님과 사랑에 빠진다.

다니엘이 사랑에 빠진 리리(왼쪽)


3대/ 테레스

테레스는 신동이다. 음악과 수학에서 뛰어난 재능을 나타낸다. 디디 강간 사건이 있고 15년이 흐른 어느날, 디디의 아버지가 죽고, 피티는 아버지의 유산을 받는다고 그 동네에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고 다니엘에게 복수라도 하듯 소녀가 된 테레스를 강간한다. 그것도 벌건 대낮에. 지옥도 이런 지옥이. 이에 안토니아는 결연히 일어선다. 총을 들고 피티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마을을 떠나라고 경고한다.

"입닥쳐! 움직이면 쏜다!

내가 만약에 누군가를 죽여야만 한다면 널 죽일거야.

하지만, 그 대신에 너를 저주하겠다.

그리고 이 저주는 너를 끝까지 따라다닐거야.

만약 다시 돌아온다면 나의 저주가 너를 죽음에 이르게 하리라."

그 현장을 지켜보던 마을 젊은이들은 안토니아가 떠난 후, 피티를 응징한다. 피티는 피투성이가 되어 집에 돌아와 남동생 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런데 동생도 그의 편이 아니다. 동생은 형을 도와주는 척 하다가 우물물에 익사시킨다. 마을은 루머에 휩싸인다. 그러나 욕하는 사람들은 없다. 모두 그 나쁜 놈이 없어진 것을 좋아한다. 마을 분위기가 사뭇 변했다.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크룩의 품에서 위로받는 소녀 테레스

세월이 흐른다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테레스의 아픔은 옅어졌지만, 상처는 기억으로 남는다. 테레스는 그래도 잘 성장한다. 어릴적부터 함께 자란 레타의 아들 시몬과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임신한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 그녀에게 달려있다. 심각하게 고민하다 결론은 출산! 새리가 탄생한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테레스


4대/ 새리


안토니아스 라인

삶의 안식처가 된 안토니아의 농장

ANTONIA'S LINE! 삶의 비극 중에도 함께 일하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신뢰하고 즐거워하는 그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녹록치 않은 세상에서, 게다가 그들 모녀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마을에서, 교회의 전통과 도덕의 굴레에서, 남자들의 횡포 속에서,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천국을 향해 한발짝 한발짝 다가갔던 그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들은 남자들에게 의존적이지 않았다. 자기들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해 갔다. 그래서 언제나 당당했다. 안토니아도 다니엘도 테레스도, 그리고 새리도 그럴 것이다.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전통이나 도덕, 인습에 매이지도 않았다. 그런만큼 사람들을 편견없이 받아들였다. 마을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그녀들의 가족이자 친구가 된 까닭이다. 천국이란 누구에게도 구속 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며,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은 천국이란 내가 일구어가는 것임을 시사한다. 어렵게 생각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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