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빛을 기다려요

결혼도 또 하나의 선택에 불과하다

by 야생

<여인의 초상 The Portrait of a Lady>(1997)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던 한 여성의 자아 찾기에 관한 영화다. '자아 찾기'는 제인 캠피온 감독의 삶의 여정이기도 하고, 그녀를 세계적인 감독이 될 수 있게 한 힘이다.




주인공 이자벨(니콜 키드먼 분)은 미국에서 부모와 사별한 후, 영국으로 건너와 이모네 집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로 뭇남성들의 눈길을 끌고, 많은 남성들의 청혼을 받는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


"삶이 뭔지부터 알고 싶어요.

저는 빛을 기다려요.

설명은 안되지만 꼭 올 거예요.

자신 있어요.

청혼은 더 이상 받기 싫어요.

성가시기만 해요."


그녀가 청혼을 거절하는 이유다. 19세기 말, 급변하는 영국의 시대 상황 속에서도 여성들의 삶은 여전히 소외되고 고립되었다. 여성들은 대부분 결혼과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규정된 삶을 살수 밖에 없었다. 결혼 외에 여성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란 어려웠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기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가 되어있는 사회였다. 그런 만큼 시대적 상황을 뛰어넘어 결혼 외에 다른 삶을 꿈꾸는 이자벨은 당차고 색다르다. 이종 사촌 오빠 랠프와의 대화다.

"포기는 내 운명이 아냐."

"결혼이 포기야?"

"다른 기회를 포기해야 되잖아."

"어떤 기회?"

"결혼할 기회 말고..인생의..고락을 체험할 기회."


이후 그녀의 사촌 오빠 랠프는 그녀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사실 랠프는 이자벨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와의 결혼은 생각하지 않는다. 폐결핵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그녀가 여자로서의 한계적인 삶을 극복하고, 자기 이상과 꿈을 펼치기를 원한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이자벨과의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이렇게 말한다.

"전 오래 살지 못해요.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 족해요.

뭔가 해주고 싶어요.

부자로 만들어준다든지.

이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원하는 건 뭐든지요."




랠프는 유산의 일부를 이자벨에게 상속하도록 아버지를 설득한다. 이자벨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자기의 꿈을 마음껏 펼치기를 바라면서. 이자벨은 졸지에 7만 파운드의 부자가 된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그녀의 돈을 보고 그녀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오스먼드(존 말코비치 분)다. 그녀는 미사여구가 잘 버무려진 그의 말에 속아, 그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랠프는 이 결혼을 말린다.

"왜 스스로 새장 속으로 들어가?"

"나만 좋으면 되는 거 아냐?"

"너의 찬란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컸어.

네 멋진 운명을 꿈꾸며 나도 즐거웠지.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이렇게 빨리 꺾일 줄은..."

"꺾였다고?"

"마음이 아파 내 날개가 꺾인 것처럼."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생기가 넘치고 마음이 넓고

사고가 자유로운 남자여야 한다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오스먼드는.. 그릇이 작아.

편협하고 이기적이지. 자아도취에다...

취향도 천박해."

"그의 취향은 고상해."


이자벨은 다른 사람 눈에 다 보이는 것이 안 보이나 보다. 꽁 깎지가 씌어도 단단히 씐 모양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고집대로 오스먼드와 결혼한다. 오스먼드는 냉혹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이다. 그에게 딸과 아내는 자기를 기쁘게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마스코트 또는 액세서리라고나 할까. 이자벨이 자기 뜻에 거슬릴 때는 벌을 세우고 추궁하고 때리기까지 한다. 이자벨은 이 모든 고통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이자벨이 얼음처럼 차가워지고 딴 사람처럼 변한 것을 알아차린다.




3년 후 어느 날, 이자벨은 랠프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는다. 그녀는 한걸음에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남편이 허락하지 않는다.

"내게 중요한 건...당신과 나..우리 둘 뿐이야.

우리 두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이야.

이미 선택했으니 싫어도 어쩔 수 없지.

후회하고 있는 거 알아.

하지만 난 믿고 있어.

우리 선택에 책임을 져야지.

그게 가치 있는 인생이야."

오스먼드가 이자벨에게 하는 이야기다. 그 당시에는 남편의 허락 없이는 친정에도 맘대로 갈 수 없었던 거다. 친정오빠가 아파도 말이다. 오스먼드는 결혼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고 말할 뿐이다.



19세기 말, 오스먼드가 이자벨에게 했던 말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에게도 낯설지 않게 들린다. 나도 불과 얼마 전까지 한 번 결혼하면 좋든 나쁘든 끝까지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혼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딱 한 번의 선택에 어떻게 전 인생을 걸 수 있겠는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언제라도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유독 결혼에서는 또 다른 선택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혼이 금기시되는 세상이다. 물론 법적으로야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도 사회문화적 인식과 제도 안에서 결혼은 신성한 것이요, 이혼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되어있다. 이것은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씌워진 올무다.


나는 오스먼드가 이자벨이 친정에 가는 것을 반대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생각해본다. 폭력을 쓰는 남편일수록 아내가 가까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이 있다. 부부간의 폭력은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부부만의 비밀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비밀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행복한 부부를 연기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점점 고립 상태로 빠져든다. 그래서 난 생각한다. 가족, 그리고 부부의 삶을 그들만의 은밀한 세계로 방치하는 사회문화적 관습도 그 안의 폭력과 불행을 키우는 데 한몫하는 건 아닌지.




마침내 이자벨은 자신의 재산을 탐낸 남편의 음모를 알게 된다. 랠프의 설득으로 이모부의 유산을 받게 된 사실도. 이자벨은 비로소 남편의 새장에서 뛰쳐나올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리고 랠프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달려간다.

"오빠와 있으니까... 너무 행복해.

오빠도 행복하지?

내가 옆에 있고 이렇게 사랑하니까."


랠프의 화답이 감동적이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도 그녀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고귀한 사랑이다. 현실의 세계에서 있을까 싶다. 인생이 고통스럽다는 이자벨, 그녀를 어루만지는 랠프의 유언 같은 말이다.

"고통은 별거 아냐.

여기 있어줘.

깊은 고통도 언젠가는 사라져.

지금도 사라지고 있잖아.

결국 사랑만 남게 되지.

이유 없는 고통은 없어. 걱정하지 마.

네가 겪은 아픔도 슬픔도 널 해치진 못해.

잊지 마!

미움을 받은 만큼 사랑도 받았다는 걸.

널 사랑했어."




뒤늦게 깨달은 사랑, 그리고 랠프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 혼자 남겨진 이자벨은 어떤 선택을 할까? 남편에게 돌아갈까? No, No! 그렇다면 지금도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또 한 남자랑 다시 결혼할까? 아니면 결혼 아닌 다른 빛을 찾아갈까? 이자벨이 어떤 인생의 문을 열고 들어갈지, 뒷이야기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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