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미킴 Sep 01. 2021

내 머릿속에는 햄스터가 산다 #1

1부 시나

    내 머릿속에는 햄스터가 한 마리 산다. 이름은 윈터고, 여자아이이다. 윈터라는 이름답게 흰색 등위에 회색 줄무늬가 있고 햇빛이 그녀를 비출 때면 가끔 그녀의 몸뚱이의 테두리가 은빛으로 빛나기도 한다. 내가 머릿속에 햄스터를 키운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내 손으로 빚어낸 것도, 밖에 있던 것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온 것도, 입양한 것도, 거짓으로 지어낸 것도 아닌 이 햄스터는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이 햄스터는 거짓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내 손을 떠나 단단한 몸뚱이를 가지고 내 머릿속의 정해진 공간에서 마음껏 돌아다닌다.


    내 머릿속이지만 나는 때때로 윈터를 바로 찾아내지 못한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이리저리 미끄러져 다니는 윈터는 늘 나의 말에 복종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정신세계 (적어도 나의 정신세계)는 비물질적이고,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에, 물질적인 것들보다 컨트롤하기 어렵다고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정신세계가 물리 법칙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운 것은 사실이나, 물질적 특성을 전혀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생각에는 무게가 있다. 어떤 생각은 가볍고 또 어떤 생각은 무겁다. 가벼운 생각은 이리저리 폴폴 날아다니며 금방 나를 일깨우고는 또 돌연히 사라진다. 어떤 생각들은 너무 가벼워 다시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이렇게 가벼운 생각들 중 좀 더 오래 매어놓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날아가지 못하게 바위나 무게 추 따위 같이 무거운 것들에 잘 매어놓아야 한다. 그것은 연필을 들어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면 가벼운 생각들을 오래 매어 놓을 수 있다. 그 종이를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야겠지만.


    무거운 생각은 반면에 좀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딱히 내가 원하지 않는 위치에 그 무거운 생각은 버티고 앉아있는데, 그곳이 나의 여러 가지 생갹이 많이 다니는 큰 길가나 교차로와 같은 지점에 있다면 무거운 생각은 문제가 된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자꾸 그 무거운 생각이 불러일으켜지고, 다른 생각들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가벼운 생각처럼 날아가지도 않는다. 잘 잊히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무거운 생각을 자꾸 스치고 지나가 그것에 흠집이 날 수록 그 생각은 더욱 무거워질 뿐이다. 이는 안개 같이 무거울 수도 있고, 거대한 바위같이 무거울 수도 있는데 어떤 쪽이든 밀도는 더 빽빽해지고 더 강하게 내 머릿속을 짓누르게 된다.


    이 무거운 생각이 날아갈 때도 있다. 이러한 경우는 드물지만 종종 일어나는데, 무거운 생각이 위치한 곳이 외딴곳에 떨어지게 되면 그것은 점점 산화되고, 다른 생각들이 생채기를 내고 지나가는 대신에 홀로 고독과 마주하며 점차 그 무게가 가벼워지게 되는 것이다. 무거운 생각이 어떻게 외딴 곳에 떨어지게 되느냐가 문제인데, 무거운 생각을 옮길 수는 없으므로 나의 다른 생각들이 대이동을 하는 수 밖에 없다. 조그마한 개미 떼가 커다란 돌을 돌아서 지나가듯, 집터에서 예상치 못한 가스 파이프를 발견하고 한발 물러나서 터를 다시 잡듯이 나의 비교적 가벼운 생각들이 다른 곳으로 조금 비켜주는 것이다. 물론 굳이 이렇게 의식하고 생각들을 움직이지 않아도 내 생각들은 자유롭게 내 머리 속의 이곳저곳을 천천히 움직여다니며 생활한다. 그러나 도저히 못 견뎌지는 생각이 지나치게 무거워지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빨리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생각만해도 괴롭고, 발버둥치게 되고, 밤을 꼴딱 새게 만드는 그런 무거운 생각은 염증과도 같다. 이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에는 응급 사인을 올리고서는 생각들을 다른 곳으로 급하게 이동시키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홀로 남겨지게 된 무거운 생각은 오랜 시간을 거쳐 점차 가벼워지고, 그러다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워지고 나면 홀로 아무도 모르게, 나조차도 그것이 잊혀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때, 그것은 잊히게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