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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ing Nov 29. 2021

형광등을 켜고 잠드는 밤

여운을 주는 공포영화와 상상력과 쓸데없는 기억력의 콜라보

소리에 예민한 천성과 뇌리에 터억 박히는 강렬한 이미지의 여운은 낮보다 밝은 밤을 선사한다. 이 글은 공포영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겁이 많은 주제에 공포영화를 꽤 좋아하는 나는, 어느덧 유명하다는 공포영화 리스트를 꽤 많이 섭렵했다. 어제 밤은 <랑종>과 함께 했는데.. 낯선 태국어와 습습한 분위기, 중반부 부터는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나홍진 감독이 풀어내는 '믿음' 에 대한 서사. 그 모든 영화의 요소는 여운을 남겼고, 나의 상상력과 오지랖은 있을지도 모르는 내 조상들의 죄로 깊이를 더했다. 거기에 쓸데없는 기억력으로 눈 감으면 선한 계단 밑 악귀의 이미지까지! 이 모든 콜라보로.. 나는 어제 불을 켜고 잠들었다. 


잠도 못잘 거 공포영화는 왜 보냐고? 그래, 이 질문은 어제 밤 나의 동무가 되어주었다. 쫄깃쫄깃한 긴장감과 퍽 하고 튀어나와 헉 하고 놀라게 하는 점프 스퀘어도 한 몫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공포 영화의 장르는 '한'에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슬프고 속상한 일도 눈물 한번 흘리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금방 잊어먹는 편이라 그 '한'이라는 정서에서 먼 사람이다. 귀신 얼굴은 잘 기억나면서 트라우마 따위의 것들을 기억할 뇌 용량은 안되는 편에, 안 좋은 건 기억 안하는게 최고라는 아메바적인 사상의 소유자는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죽어도 잊지 못할 설움'에 귀가 얇다. 사실 공포 영화에 나오는 귀신들의 한을 경험하기란 어려울 테다. 그 정도의 한을 경험했으면 귀신이 되어야 마땅할 테니까. 어찌되었든 사람이 설움을 겪고, 귀신이 되고, 복수를 하는 그 과정이 재미있다. 공포영화 특유의 복선과 얼떨떨한 설득력에 휩쓸려 2시간을 고스란히 반납하게 된다. 


어제 밤도 그랬다. 유리창의 웃는 얼굴부터 계단 밑 기괴한 움직임, 구석진 곳에 숨어 낄낄대는 그것을 보는 것도 짜릿했다. 조상의 죄와 함께 주인공들이 저질러온 부정한 것들에 대해서 생각도 해보았다. 내 조상이라고 그렇게 선하게만 사시지는 않으셨을 것 같아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해줬던 옛날 이야기들도 곰곰히 생각해봤다. 영화 자체가 너무 어둡더라. 불을 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제 밤에는 불을 켜고 잔 것이다. 사실 대낮인 지금도 방이 조금 어두운 것 같아 불을 켜고 있다. 환한 곳에서 잔 탓에 몸은 뻐근하고 정신은 몽롱하다. 하지만 아메바는 아메바인가,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스멀 스멀.. 


오늘 밤은 불을 끄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을까? 혹시 침대 발치의 구석에서 뭔가가 끽하고 끅하면 어떡하지.. 그냥 낮에 자둘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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