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자취는 늘 어렵다. 나를 책임지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은 이따금 버거운 일이다. 대학을 들어가자마자 1년 반, 짧다면 짧은 자취 시간 동안 나는 그 집들을 집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술에 잔뜩 취해 몸을 뉘이는 곳. 같이 사는 친구가 치우지 않으면 나도 치우지 않던 곳. 학교와 가까웠지만 마음은 정말 멀었던 곳. 그러니 자취를 그만두고 긴 통학을 시작했을 때 오히려 평안한 느낌이었다. 단순히 가족이 있으니까, 자취방과는 비교도 안되게 넓고 쾌적하니까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직장생활을 하게 되며 시작한 자취는 나에게 "집"에 대한 개념을 고민하게 했다. 나름대로 동네에서 제일 좋은 오피스텔이었다. 안전하고 깨끗했으며 더할나위 없이 "사회초년생"이 살기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집에 몸을 뉘여도 편하지 않았다. 처음엔 원룸이라, 누우면 바로 보이는 저 현관때문일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직장이 너무 힘들어서 가족 생각이 나서 그렇다고 치부했다. 퇴근을 하고 나면 얼른 집에 가고 싶었지만, 한번도 그 공간을 나의 안식처로 여긴 적은 없었다.
처음 외국 살이를 시작하겠다 마음 먹었을 때 그 경험들이 나를 멈칫하게 했다. 나 정말 혼자 살 수 있나? 집도 절도 가족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망설임. 그렇게 어렵게 구한 첫 집은 나에게 큰 편안함을 주지는 못했다. 그 집은 자꾸 "나가야 할" 집이었다. 친구들과 주로 노는 곳 과도 멀고, 직장과도 멀고. 자꾸 나는 나가야만 했으니 마음이 붕 떠있는 느낌이었고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는 날이면 때때로 고립된 것 같다는 느낌에 커튼을 일부로 열어두곤 했다.
이사를 결심하고, 그간의 경험을 통해 새 집을 구할 때 우선으로 둔 것은 "돌아가고 싶은 곳"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그저 적당한 곳, 개중에 괜찮은 곳이 아니라 정말 돌아가고 싶은 곳.
최악의 하루, 따끈한 욕조에 목욕을 하고 누울 수 있는 곳. 하늘이 꾸물 꾸물한 날 기분이 괜히 언짢은 일정을 마무리한 뒤 나를 위한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곳. 해가 잘 들어서 게으른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펼 수 있는 곳. 긴 여행을 마무리 한 뒤 얼른 이 도시의 자석기념품을 냉장고에 걸어두고 싶은 곳.
외국 살이, 여기에 가족이라고 할 것은 나 뿐이니 나를 꼭 닮아 그 자체로 나를 반겨줄 그런 집.
방 하나의 작은, 남서향으로 창이 나 해가 지는 노을이 예쁜 이 집, 여기에서 두번 한국을 다녀오고, 교외 여행에서 돌아오기도 하고, 몇번 친구집에서 자고 돌아오고, 수백번 회사에서 돌아왔다. 일상이 여행 같았던 그 날들에는 유난히 집이 그립기도 했다. 누가 굳이 반겨주지 않아도, 나로 닮은 것들로 꼭 차 있는 이 공간이 나에게는 큰 포근함이다.
그렇게 내가 집에 대해 내린 결론은, "돌아와야" 집이라는 것이다. 모험같은 일상을 보내고 돌아올 수 있어야 집이다. 집은 숨는 곳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저 적당히 잠만 자는 곳이어서도 나에게는 부족하다. 문을 열면서 "나 집이다!" 를 외치는 것 만으로도 "여기는 나의 공간이야"하는 폭닥함이 있어야 한다. 그런 공간에서 나는 나다울 수 있다.
가끔 도마뱀이 인사를 하기도 하고, 늦잠을 자지 못하게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집이라는 마음이 들면 그마저도 조금 괜찮아지기도 한다. 그래도 집이잖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이상, 하루 종일 집에 있어서 유난히 좋았던 일요일의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