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가, 아니라 딸이 만든 감사일기 앱

바이브코딩으로, 말로 아는 것과 만들어보는 것의 차이

by MJing

엄마는 오래 전부터 잠을 잘 주무시지 못했다.


딱히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냥 하루가 머릿속에서 잘 안 꺼진다, 이런저런 생각이 쌓여서, 눕고 나서도 한참을 뒤척인다 하셨다. 가끔은 수면보조제의 힘을 빌리기도 하셨는데, 딸로서 엄마의 숙면은 늘상 걱정이었다.


잘 자기위한, “쉬운”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없을까. 습관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그때부터 내가 직접 해봤다. 감사일기.

처음엔 솔직히 좀 민망했다. '오늘 커피가 맛있었다'를 일기라고 쓰는 게 뭔가 유치하고, 때로는 일기에 거짓말도 했다. 그래도 꾹 참고 아이패드에 세 줄이라도 적어 보던 것들이 조금씩 모였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나쁜 것들만 곱씹던 머리가, 좋았던 순간을 찾는 방향으로 조금씩 틀어졌다.

특히 달라진 건 저녁이었다. 전에는 퇴근하고 나면 오늘 뭐가 힘들었는지, 누가 나를 피곤하게 했는지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근데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하루 어딘가에서 괜찮았던 순간을 찾게 됐다. 아주 작은 것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면서, 하루가 조금 가벼워졌다.


엄마한테 권하고 싶어,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았다. 다이어리를 사드리기도 하고, 탭으로 쓰는 법을 알려드리기도 했지만 나조차도 일상이 바빠지다 보면 물리적으로 다른 디바이스를 가지고 오기가 쉽지 않았다.


휴대폰을 생각하다, "이 앱 깔아, 이렇게 써"라고 말하는 순간, 그게 얼마나 높은 장벽인지 알았다. 앱 다운로드, 회원가입, 빈 화면... 습관이 아직 없는 사람한테 이 과정은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좀 더 함께 하기 위해, 엄마가 나의 감사일기를 볼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그래서 그냥 내가 만들기로 했다. 엄마한테 '이거 써봐'가 아니라, 내가 먼저 쓰는 걸 보여주는 것. 그거면 된다! 엄마도 딸이 만들었다면 좀 더 잘 써보려고 하지 않을까?


막상 만들려고 하니까 기획자 주제에도 고민이 너무 많았다.

감사일기 앱은 이미 많다. 근데 대부분 너무 많은 걸 요구한다. 오늘의 감정, 오늘의 날씨, 오늘의 키워드, 스티커, 테마... 내가 상품기획을 하는 입장이었다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유저는 우리 엄마다. 하루에 이미 지친 엄마는 입력창이 많을수록 그냥 닫아버릴 것 같았다.


나는 딱 하나만 생각했다. 엄마가 매일 밤 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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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구조를 단순하게 잡았다. 하루에 딱 세 가지만 쓴다. 오전에 감사한 것 하나, 오후에 감사한 것 하나,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도 감사하다' 하나. 세번째 항목을 좋아한다. 감사일기를 쓰다보면 처음엔 별로였던 일도, 다시 보면 배운 게 있거나 덕분에 뭔가 달라진 게 있다. 그 시선의 전환이 감사일기의 진짜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호등.


숫자에 약한 엄마, 어제 5점, 오늘 6점 — 이게 하루에 얼마나 와닿을까? 근데 초록불이 켜지면 다르다. 아, 오늘 내가 괜찮아졌구나. 말 안 해도 안다. 체크인할 때 점수를 매기고, 세 가지를 다 쓰고 나서 다시 체크아웃 점수를 매긴다. 점수가 오르면 초록불, 그대로면 노란불, 내려가면 빨간불.


빨간불이라고 나쁜 게 아니다. 오늘 많이 힘들었구나, 하고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근데 초록불이 켜지는 날이 늘어날수록, 이 습관을 계속하고 싶어진다. UX writing 에서 초록불이라고 칭찬하지 말고, 빨간불이라고 휴식을 강요하지도 않는 것을 중요한 프로덕트의 룰로 넣었다. 그저 목표는 나와 내 가족이 나의 신호등의 신호만 보는 것이다. 그거면 되었지 앱이 나를 평가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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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트를 기획하고, 전략을 보는 것은 나의 일이다.


일하면서 항상 생각하는 게 있다. 좋은 제품은 기능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 사용자가 쓰는 순간 뭘 해야 하는지 알고, 끝나는 순간 뭔가 달라진 느낌이 드는 것. 그게 진짜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그걸 말로만 알고 있는 것과, 직접 만들어보고 써보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유저가 나의 엄마라는 사실도 새로웠다.


이번에 만들면서 다시 배웠다. 기능을 하나 더 넣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한테 물었다. 엄마가 이걸 쓸까? 그 질문 하나가 우선순위를 정해줬다. 예쁜 테마보다 빠른 로딩이 먼저였고, 다양한 통계보다 신호등 하나가 먼저였다. 사용자를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려두면, 결정이 생각보다 단순해진다.


프로덕트기획/마케터가 직접 서비스를 만들어보는 것, 꼭 개발자가 되려는 게 아니다. 사용자가 느끼는 마찰을 내가 먼저 느껴보는 것. 그게 결국 더 나은 판단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아직 엄마한테 보내지 않았다. 조금 더 다듬고 나서.

매일 쓰며 엄마의 숙면을 위한 나의 염원을 조금 더 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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