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3.16 킴나 네이버 블로그
어렵다. 너는 내게 항상 어려웠다. 그런 나를 너는 너대로 답답해했지만 나는 오죽했을까. 왜 나는 너의 모든 말이 어려울까. 왜 한 번에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 나를 원망한 날들은 수도 없이 많았고 위태롭게 쌓이던 우리의 나무블록은 와르르 무너졌다. 나 혼자만의 탓은 아니겠지만 나는 나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주워보려, 다시 쌓아올리려 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같이 쌓아가던 블록을 혼자 쌓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우리는 끝났다.
우리의 조각들은 너무 많아서 추스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나하나 주워 담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순간들을, 기억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슬쩍 옆으로 밀어두고 다른 나무블록을 쌓았다. 하지만 모두들 얼마 가지 못하고 무너졌다.
어느 순간 둘러보니 잔뜩 어지러진 방. 한숨을 내쉬고 소매를 걷었다.
차례차례 다른 조각들을 정리하고 마주한 너와의 조각. 나는 아직 한숨을 쉬는 중이었다. 이 많은 걸 언제. 내가 할 수는 있을까. 슬쩍슬쩍 예쁜 조각들만 집어서 들여다보았다. 그런 시절이 있었지. 차갑고 모난 조각들은 전에 보았을 때보다 동그랗게 변한 것만 같았다.
그 때, 너는 나와 마주쳐서는 안됐다. 우리가 만나서는 안되는 거였다. 너는 내 기억보다도 더욱 빛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무너져버린 블록 따위는 기억조차 하지 않는 듯 환하게 웃는 네가 원망스러웠지만 그대로도 좋았다. 너의 등장은, 무너져 내린 이 탑을 다시 쌓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로 피어났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먼지 쌓인 우리의 조각들을 닦아놓고 있었다. 예쁜 것들을 앞에 세워두었다. 그동안 앉은 뽀얀 먼지로 네 손이 더러워질 일이 없기 바라며. 아름다운 조각들만 찾길 바라며.
'웃자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네가 웃어버리는 바람에.'
너는 그냥 웃었다. 내가 민망해질 정도의 큰 웃음도, 기쁜 내색을 감추지 못해 혀로 입천장을 간질이게 되는 웃음도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고 그저 조금 입꼬리를 올렸을 뿐이다. 눈은 입꼬리를 따라 휘어질 생각이 없어보였다. 너는 위아래 입술을 꾹 누르는 웃음을 짓고 나를 보았다.
나의 혼란스러운 시선과 너의 읽을 수 없는 시선은 공중에서 서로를 찾아 헤매었다. 네가 작은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릴 때, 항상 어려웠던 너의 표정이 그제서야 읽혔다. 괜한 짓을 했구나. 급히 내뱉은 말을 주워 담았다. 담으려고 노력했다. 서둘러 발을 뗐다. 너도 따라 걸었다. 우리는 앞만 보고 잠깐 추운 길을 걸었다.
갈림길.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고, 너는 아까보다 좀 더 씩씩한 웃음을 보였다. 나중에 또 보자. 반가웠어.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그 또한 부담이겠지. 등을 돌렸다. 오늘 밤에는 조각들을 차곡차곡 상자에 담아야겠다. 어쩌면 내일 밤에도.
'사랑했었다고 그리웠었다고, 다시 시작하면 안되냐고
오늘 너에게 하고 싶었던 말'
블로그를 뒤지다보니 이런 글도 나오네요.
노래를 들으며 그려졌던 풍경이었습니다.
조금 다듬어서 브런치에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