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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나 Dec 04. 2018

2018 서울레코드페어와 뮤직 포럼 후기

빈 통장 꽉찬 두 손 터지는 행복감

뭔가 수집한다는 것은 무척 비효율적인 일이다. 일단 수집물의 부피가 집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데, 수집은 ‘수집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 대부분은 딱히 실용적인 것들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종류의 것들을 모으면서 기쁨을 느끼고, 이에 따라 수집 행위가 하나의 취미가 될 수도 있다. 딱히 실용적이지는 않지만 가끔 들여다보고, 돈을 자꾸만 아낌없이 쓰게 되는 분야 – 내게는 음반이다.


(이것이 올해 2월이니까 지금은 더 늘었다!)


CD 수집은 이미 150장이 넘었다. 그런데 슬슬, CD가 아닌 LP에도 관심이 갔다. 유럽여행을 할 때 모든 벼룩시장마다 비틀즈 LP판을 팔았고,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에서는 LP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VYNYL & PLASTIC’ 매장을 런칭하고, 세상의 추세도 LP라고 했다. 슬슬 음악 좋아하는 힙쟁이들은 LP를 사모으는 느낌. 나도 질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결정적인 흠은 내게 LP플레이어가 없다는 것이다. 재생할 기기도 없는데 한 판에 2-3만원을 호가하는 LP를 사는 건 대단한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매번 장바구니에 담기와 삭제를 반복했다. 그래도 마음속 한 구석에서는 LP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지 않아서 조금씩 LP플레이어와 스피커, 꼭 사고 싶은 LP를 마음 속에 저-장-해두고 있었다.


이런 나의 지갑을 털러 온 나의 구원자 – 서울레코드페어. 인트로가 길었다. 오늘은 (아트인사이트에서 한 번 소개된 바 있는) 2018 서울레코드페어와, 2층 세미나실에서 진행된 서울뮤직포럼 방문기를 전한다.

  

미세먼지가 온 서울을 뒤덮은 주말, 문화서울역 284를 중심으로 서울레코드페어가 열렸다. 기존에는 은평구의 서울혁신파크에서 진행했지만 올해는 서울역에서 진행되어 접근성도 더 좋았다. 사실 올해 처음 간 행사라서 작년과의 비교는 불가능하다. 레코드페어 초보자의 체험 후기에 더 가깝겠다.


레코드페어는 음반과 관련된 모든 행사가 총집합되는 곳으로, 국내에서는 2011년 서울레코드페어가 최초로 개최되었다. 아직까지 이정도 규모의 레코드페어는 국내에서 서울레코드페어가 유일하다. 해외에서도 음반을 사랑하는 이들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가 레코드페어일만큼, 레코드페어는 전세계적으로 음악 팬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레코드페어에서 제일 대표적인 것은 음반을 파는 행위다. CD를 포함해서 LP, 테이프 형태까지 만날 수 있었다. 서울레코드페어에서는 오존, 아도이 등 일부 서울레코드페어 한정반을 구매할 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져, 오픈 전부터 소소한 화제를 일으켰다.

  

그런데 CD를 사려고 왔다면 조금 당황할 수도 있다. 레코드페어에서는 CD보다 LP를 훨씬 더 많이 판매한다. LP가 세계적으로 유행의 흐름을 타고 있기도 하고, 원래 레코드페어의 특성인 것 같기도 하다.


일요일, 미세먼지를 뚫고 저 멀리 지하철 끝자락에서부터 서울역으로 향했다. 행사가 시작된 지 1시간 정도 지났는데, 나는 살아온 이래 이렇게 많은 LP판을 본 적이 없고, 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LP에 관심이 있는 지도 몰랐다. 페어에 가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올해 초여름에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 갔을 때도, 사람이 이렇게 바글바글한데 우리나라 독서인구가 반도 안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문화서울역을 처음 가본 사람으로서 역 내 공간이 생각보다 넓고, 구석구석 숨어있는 공간이 많으며, 쓸모가 없어진 역사를 이렇게 문화예술 갤러리 겸 행사공간으로 쓴다는 발상이 좋았다. 다만 꾸리꾸리한 날씨와 더불어 메인 홀의 어두운 조명은 조금 마이너스 포인트였다. LP를 찾아야하는데 어두침침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가자마자 한정반부터 샀다. ADOY의 1집 [CATNIP]! 여유가 된다면 2집 [LOVE]까지 사고 싶었는데 그럼 7만원… 음… 역시 [CATNIP]만 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후 4시쯤, [LOVE] 앨범이 품절되었다는 방송이 나와서, 그냥 살 걸 그랬나-하고 속으로 광광 울었다.)


LP 구매 이외에도 청음실에서 직접 LP를 들어볼 수도 있었다. 장르는 라이브 락 콘서트부터 신현희와 김루트까지 다양했다. 음향기기에 대한 런칭 소개도 있었고, LP플레이어를 팔기도 했다. 사실 LP플레이어는 CD플레이어나 MP3, 스트리밍 플랫폼과는 다르게 손으로 섬세하게 조작해야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조금 고민스러웠는데 실물을 보고, 조작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아까 언급한, 잔액의 문제로, 아직 사지는 못했다.)


한정반 부스를 제외하면, 페어에서는 소속사들부터 스트리밍 플랫폼, 레코드 가게, 그리고 개인 셀러들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누가’ 파느냐보다는, ‘무엇을’ 파느냐가 중요했다. 주로 외국 LP들이 많았고, 70-80년대 한국 대중음악 관련 LP들도 꽤 있었다(조용필, 들국화 등). 애초에 아는 올드팝이 많지 않아서 ‘아는 팝 앨범’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2000년대보다는 1900년대의 음반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Coldplay보다는 Queen을 사고 싶다고나 할까. 게다가 요즘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으로 Queen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으니, Queen LP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퀸 앨범은 한 장도 찾지 못했다.)


ADOY에 이어 두번째로 만나게 된 것이 바로 WHAM! 이제 곧 12월이고, 스타벅스에서는 벌써 크리스마스 시즌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어색한 흐름은 아니다. 사실 왬의 음악은 Last Christmas 밖에 모르는데 그 노래가 없을까봐 살짝 긴장했다. 하지만 아니나다를까 ‘Last Christmas’가 들어있는 앨범이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구매했다. 중고반, 5천원, 득템!


그 다음으로 돌아다니다가, 내가 어떤 LP를 사고 싶은지 정확히 깨달았다. ABBA의 LP. 나는 아바의 음반이 필요했다. 아바는 스웨덴 출신의 혼성그룹으로 <맘마미아> 영화와 뮤지컬에 나오는 모든 노래는 아바의 명곡들이다. 얼마나 명곡이 많으면 아예 그 곡들 만으로 뮤지컬 영화를 만들지 상상할 수 있으리라. 원래 ABBA의 노래를 즐겨듣지는 않았다. 가끔 엄마 차에서 들으면 ‘역시 명곡인 데에는 이유가 있어’라는 생각을 했지만, 딱히 선호는 없었다.


그런데 올해 보게 된 <맘마미아 2: Here we go again>에서 완전히 꽂혀버렸다. 경쾌한 사운드, 귀여운 노랫말, 캐치한 멜로디가 정말… 시대를 뛰어넘는 감각이란 이런 것일까? (물론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너무 사랑스러운 것도 일조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전에도 아바의 LP 앨범을 엄청나게 찾아다녔다. 그런데 찾지 못했고, 그렇게 아바는 내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줄만 알았는데…

  


짜잔하고 내 앞에, 레코드 페어에서, 무려 두 장이나 나타났다. Voulez-Vous 앨범과 일본에서 퍼블리싱된 베스트 앨범 Vol.2를 구매했다. Gimme Gimme, Voulez-vous, Thank You for the Music 까지 다 있다. 이 두 앨범을 합쳐서 2만원. 역시 중고가 최고다. (게다가 LP플레이어가 없으니 ‘혹시 재생이 안 되진 않을까’하는 고민도 하지 않아도 되고…)


*

이렇게 앨범을 구매하고, 두 번째 목적이었던 뮤직포럼을 방문했다. 서울뮤직포럼은 2016년 이후로 두 번째 방문이다. 음악산업 종사자들과 음악산업 종사 희망자들을 주요 대상으로 음악산업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나는 두번째 날의 2,3번째 세션에 참여했다. 각각 노들섬 프로젝트와 음악 차트에 관한 내용이었다.


2번째 세션은 한강 속 노들섬이, 현재는 공사 중인데, 앞으로 어떤 공간으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비전을 들을 수 있는 발제였고, 3번째 세션은 아티스트들이 차트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앞으로 차트는 어떻게 발전하거나 후퇴할 것인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특이하게 3번째 세션에는 법조계 관련 패널을 모셔서 법적으로 차트 사재기가 어떻게 문제인지, 앞으로는 어떤 식의 법률적 움직임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간략히 들을 수 있었다.


*


그 날 산 앨범들은 아직 포장도 뜯지 못했다. 뭐랄까, 재생할 기기도 없으면서 포장을 뜯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 나는 LP 플레이어에 대한 열망이 정말 가득한 상태. (근데 방에 공간이…) LP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여서, 각자의 취향을 들려주고 추천하는 형태가 정말 즐거웠다. 일례로, 뮤직포럼이 끝난 후 씨티팝 계열의 LP가 있는지 구경하러 JPOP 섹션에 들렀다. 일본어 까막눈이니 어차피 봐도 모를터,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을 셀러에게 이야기하자, 그는 그럼 이 음악이 잘 맞을 것이라면서 애플뮤직으로 직접 곡을 찾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말을 덧붙였다.


“제가 되게 좋아하는 아티스트인데 잘 안나가서…”


아아, 서울레코드포럼의 여러분. 우리는 결국 덕후라는 이름 아래 하나인 것이다. 앨범 한 장이 나가도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나가서,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을 찾고 싶은 마음. 이 마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이 레코드페어였다. 음악산업이 돈이 안되고, 사람들이 음반을 안 사고, 등등. 둘러싼 말은 무척 많지만, 그 속에서도 이렇게 ‘좋아하는 음악’으로 즐겁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결국 이 마음들이 모여 우리나라 음악씬을 움직이는 건 아닐까.

지갑은 비었지만 마음은 행복으로 꽉 찬 하루.

레코드페어, 내년에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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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잔고는 슬프지 않아.. 손이 무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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