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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나 Sep 02. 2022

농구화가 저를 선택했어요

 여자농구동호회 4개월 차의 회고

어떻게 농구할 생각을 했어요?

..농구화가 생겨서요





생각해보면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유독 스포츠 예능을 많이 봤다. <라켓보이즈>도 봤고, <골때리는 그녀들>도 봤다. 특히 골때녀 속의 여자들이 함께 땀 흘리는 광경이 정말 멋졌다. 처음에는 헛발질이 난무하고 떼 축구에 가까웠을지 몰라도 끊임없는 연습으로 팀원들 간의 믿음을 쌓고 진짜 골까지 만들어내는 장면을 보며 나는 함께 감동했고 환호했다. 같이 해보고 싶었다. 여러 사람들과 한 편이 되어 운동을 해본 건 중학교 2학년 때 피구 이후로 없었다.


2021년 한 해를 본가에서 꼬박 재택근무로 보내면서 출퇴근 루트가 1시간에서 15초 정도로 줄었다. 그것도 눈 비비면서 걸어서 그렇지, 늦잠 잔 걸 깨닫는 순간 5초로 줄어든다. 당연하게도 역대 최악의 운동량을 자랑했고, 나는 2022년에는 운동을 자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요즘 유행하는 테니스를 할 수도 있고, 회사에는 사내 여자축구동아리도 있었다. 그런데 마침 우리 부서 한 분이 여자농구동호회를 만들 거라고 한 달 정도를 홍보하고 다니셨다.


기왕 키도 171까지 컸는데 한번 해볼까 싶었다. 그렇지만 한 번도 농구 경기를 본 적이 없었다. 그 유명한 커리나 마이클 조던 골도 거의 본 적 없다. 룰도 당연히 모르고 농구공도 중학교 3학년 체스트 패스 이후에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농구 동호회 가입 제의에는 슬쩍 간만 보면서 “ㅎㅎ농구 좋죠~ 동호회 고~?” 같은 빈 말만 하고 샤샥 사라지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러다 아주 오랜만에 파트원 모두가 회사에 출근한 어느 날. 주간 회의에 농구화 한 켤레가 등장했다. 원래는 다른 선배를 꼬시기 위해 동호회 초대 (예비)회장님이 준비한 선물이었다. 그러나 선배에게는 운동화가 너무 컸고, 운동화는 내 앞으로 왔다. kd, 케빈 듀란트 라인의 흰색 농구화. 250mm.


그리고 신발이 내 발에 딱 맞았다. 운동화가 나를 선택했다.



회장님, 저 농구동호회 들어갈게요.

그 농구화. 택도 안 뗀 새 거였다.

그렇게 나는 농구를 시작했다.





50m 달리기 11초 나와본 적 있는가? 난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뭔 놈의 운동 경험들이 전부 10년도 더 된 일들밖에 없는 걸 봐서도 나의 체력과 운동 신경의 견적이 나온다. 그러나 나는 내가 잘 뛰지만 못할 뿐 운동 신경은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중학교 얘기 그만하고 싶지만) 이것도 중학교 때 내가 학교 대표로 피구 대회에 참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 여중 피구 대회였고 토너먼트였는데, 첫 경기에 패배했다.


운동 신경의 실체는 머지않아 확인할 수 있었다. 농구 동호회의 모임은 농구 그룹 레슨에 가깝게 진행되는데, 1시간 반 동안 기술 수업을 하고 30분간 미니게임을 진행한다. 코치님은 무려 국가대표 출신, 다수 예능 출연, 그리고 여자농구 해설도 하고 계신 스타였다. 첫 수업에서는 모두들 어색하게 농구화를 신고, 코트 안으로 들어섰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공 위에서 플랭크도 했다. 10분 지났는데 이미 땀이 뻘뻘 나고 얼굴은 새빨갰다.


“아니 앤디! 뭐 했다고 벌써 얼굴이 그렇게 빨개요!!”

이게 아마 코치님이 (인사를 제외하고) 나한테 건넨 첫마디일 것이다. 코치님은 기억하지 못하시겠지… 그렇지만 전 기억합니다요. 흑흑.




처음엔 슛 자세를 배웠다. 기본적으로 슛 자세는 왼손은 거들뿐, 오른손과 어깨와 하체 힘으로 던진다. 당연히 될 리가 없다. 손에 농구공이 닿는 느낌도 낯설었다. 슛은 어찌나 앞으로 나아가지를 않던지. 점프슛을 넣으려고 하면 엉덩이는 계속 뒤로 쭉쭉 빠져서 폼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웃긴 걸 알 수 있었다.


레이업을 해보려고 하면 타이밍도 모르겠고 스텝은 계속 꼬였다. 볼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왜.. 이렇게.. 엉성하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영상으로 찍힌 나를 보니 더 가관이었다. 레이업 슛을 위해 골대를 향해 분명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영상을 보니 강아지 산책시키는 견주보다도 안 뛰고 있었다. 내 운동 신경은 허위 매물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진행하는 30분간의 미니게임은 한 쿼터에 5분씩 뛴다. 운동이라고는 15초 통근이 전부였던 내가 뛰어다니기에 풀코트는 넓었다. 심박수는 200을 넘었다. 코.. 코치님 저는 심장이 안 좋아요.. 하면서 붙잡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너무 재미있었다. 아주 가끔 들어가는 골의 손맛. 다 같이 서로의 엉성한 포즈를 보면서 웃는 것. 잘하는 사람들을 계속 보면서 나도 더 잘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땀 흘리고 난 뒤의 개운함이 좋았다.




농구를 더 잘하려면 체력과 근력이 받쳐줘야 했다. 처음 코트를 다녀온 뒤엔 헬스장에서 조금씩 개인 운동을 했다. 중고등학생이 바글바글할 지역 농구 코트에 가기에는 무서웠다. 고작 몇 주 웨이트와 유산소 운동을 했다고 운동능력이 대단히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기분 탓인지 게임을 할 때 몸이 덜 힘든 느낌이었다.


꾸준히 화요일마다 동호회에서 수업을 받다 보니 수업마다 우리 모두의 진전이 조금씩 보였다. 다들 농구공을 샀고, 농구화를 샀고, 농구 가방을 샀다. 한 주는 그전에 비해 수비가 강해졌고, 다른 한 주는 그전에 비해 패스 플레이가 늘었다. 오른손 레이업, 훅 슛, 백 슛, 왼쪽에서 달려가서 오른손으로 넣는 레이업 등 아직도 소화하지 못한 기술들을 배웠다. 설렁설렁 뛰어다니던 나는 반팔티를 어깨 끝까지 걷어올리고 전력으로 뛰기도 했다.




최근에는 날씨도 덥고 비도 많이 와서 한 3주 정도 공식 동호회 활동이 없었다. 그동안 나는 그래도 짬짬이 근처 코트에 가서 슛도 연습해보고, 유튜브로 영상도 보며 자세도 교정해보았었다. 그리고 이번 주는 3주 간의 방학 후 첫 모임이었다. 다 같이 떨어진 골 감각과 체력에 코치님은 아무도 연습 안했냐며 웃었다.


거기다 대고 코치님 저는 그래도 며칠 동안 밤마다 나가서 공 던졌어요 ㅠ_ㅠ 근데 안 되는 거예요 ㅠ_ㅠ 할 수가 없었다. 막상 던져도 슛이 들어가질 않았다. 연습해도 못하는 걸 티 내느니, 차라리 연습을 안 한 척하는 게 낫다는 알량한 자존심 같은 거다.


그런데 그날의 미니게임에서 나는 두 골을 성공시켰다. 한 번은 자유투 리바운드로, 한 번은 하프라인부터 골대까지 혼자 드리블해서 점프슛으로. 정말 짜릿했다. 드리블로 코트를 달려 슛까지 연결했다는 그 성취감. 그 경기는 모두들 골을 넣은 우리 팀 멤버들의 고른 활약으로 승리했다.


경기를 끝내며 다 같이 인사하기 위해 일렬로 섰다. 그런데 근처에 있던 서브코치님이 “앤디 슛 자세가 완전 달라졌는데? 연습했어요?”라고 물어봤다.




아아. 너무 짜릿했다 흑.


나는 그제서야 조금 쑥스럽지만 “네 저 연습했어요 ㅠㅠ"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서브코치님은 사실 그냥 나를 격려하기 위한 오퍼시티 50%의 스몰 토크를 시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정말 뿌듯했다. 나의 노력을 알아봐 주다니! 진짜 슛 자세가 달라졌다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밤연습의 흔적


전에도 농구동호회 한 지 2달 정도 지났을 때, 코치님이 지나가면서 “앤디 진짜 많이 늘었다~ 전에 비해서 완전 많이 늘었어요.”라고 해주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내가 진짜 발전하고 있다는 걸 증명받았다는 기쁨, 이렇게 나도 조금씩 늘고 있다는 성취감. 운동은 관성이어서 아무래도 27년간 유지해온 NO운동의 관성을 이기기는 쉽지 않은데, 이런 순간들이 모여 나를 매주 화요일 농구 코트로 이끌고 있다.





여전히 레이업은 너무 어렵다. 점프슛도 어렵다. 드리블도 어렵고, 리바운드도 어렵다. 그런데 아주 드물게 게임 중에 내 골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지금까지 4개월 정도 게임하면서 경기 중에 골을 넣은 건 5-6번 정도 될 것이다. 그럼 나는 그 골들을 계속 생각하고 흐뭇해하고 곱씹고 흐뭇해하고, 어쩌다가 운이 좋게도 그 순간을 찍은 영상이 있다면 혼자 돌려보고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가능한 모두에게 자랑한다.


나중에는 농구 코트를 지나가다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저랑도 같이 게임해요!”라고 말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슬쩍 들어가서 같이 게임해도 민폐가 되지 않는 레벨이 되고 싶다. 한강에서, 탄천에서, 어디서든. 그렇게 가끔 새벽 한강에서 농구하다 보면 세븐틴 승관이나 엔시티 천러를 만날지도 모른다. 절대로 그래서 열심히 하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동기부여는 항상 도움이 되지 않나?


승관아 딱 기다려 누나랑 농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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