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미 바이 유어 네임, 가장 뜨거웠던 여름 그리고 겨울

여름에 보면 더 좋은, Call Me By Your Name (2017)

by 킴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은 작년 10월에 개봉한 영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회자되는 걸 보면 참 대단한 영화다. 내내 이 영화를 봐야지, 봐야지 미루고 있다가 낮이 길어진 어느 여름 저녁에 결국 다운로드를 받았다. 그리고 무더웠던 어제, 해가 진 뒤 이 영화를 봤다.


배경은 북부 이탈리아의 한 시골 마을이다. 영화는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이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건물 벽에 쨍하게 반사되는 햇빛, 반짝이는 강물, 투명하게 코팅된 듯한 초록 나뭇잎. 아씨씨에 여행을 갔을 때가 떠오른다. 비록 내가 갔던 그 날은 흐렸지만 해가 나면 그렇게 온 마을의 성벽이 반짝거리며 빛날 것이다. 거기 반짝이는 소년 엘리오와 청년 올리버가 있었다.



영화 초반부는 조금 루즈하게 흘러간다. 넋 놓고 바라보게 되는 엘리오의 미모와 이탈리아 배경의 아름다움이 시간을 잊게 하지만 엘리오가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올리버와 서로 마음을 열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 동안 엘리오가 가지는 낯선 이에 대한 반감과 호기심, 스스로의 마음에 대한 의문과 확신,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확신하지 못해 겪는 괴로움이 차근차근 드러난다. 엘리오는 올리버의 반바지에 머리를 넣고 그가 누웠던 침대에 엎어져 있기도 하고, 그에게 침묵은 참을 수 없다며 쪽지를 쓰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소년은 참을 수 없이 귀엽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함을 인정하고 짧은 시간동안 뜨겁게 사랑한다. 교수인 엘리오의 아버지를 도우러 온 '조수' 입장의 올리버로서는 부담스러운 결정이기도 했지만 사랑하는 걸 뭐 어떡해. 하지만 여름 손님은 언젠가 이 곳을 떠나야한다. 엘리오와 올리버 모두 알고 있다.


이 작품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우리나라에는 <그 해, 여름 손님>으로 출간되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어 원제 그대로 영화를 수입한 것도 좋았지만 나는 <그 해, 여름 손님>이라는 제목에도 애착이 간다. 가장 뜨거웠던 여름, 뜨거운 이탈리아에서 만난 열병같은 첫사랑. 올리버는 기나긴 엘리오의 생에 6주간 물리적으로 존재했던 여름 손님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리버는 이후에도 엘리오의 인생에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 해의 여름을 가장 뜨겁게 기억할 이유는 오직 올리버다. 아낌없이 자신을 사랑해주고 떠난 사람. 자신이 아닌 다른 이와 결혼했고 이제는 영영 만나지 못할 사람일지라도 절대 미워하지 못할 사람.


사랑에 빠진 이의 감정이 얼마나 초조한지 알고 있다. 당장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지만 또 두렵고, 보기만 해도 가슴 뛰지만 직접 만지고 싶다. 감정을 참지 못하고, 혹은 참지 않고 올리버에게 그대로 드러내는 순수함에 관객도 올리버도 고개를 젓는다. 확신한 뒤 망설이지 않는 소년은 여전히 미숙하고 아름답다. 처음 잠자리를 함께 한 다음날 낮에도 엘리오는 굳이 올리버를 따라가서 '내가 와서 좋아요?'라며 '애같은' 질문을 한다. 아아. 아이 같은 순수함과 어림, 참지 못하는 미숙함, 밀당 그런 건 몰라 나는 네가 좋아 식의 표현은 올리버를 포함한 우리로 하여금 그를 더욱 사랑하게 만든다.


이 유치한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할 수만 있다면 키스하고 싶어'라고 대답하는 올리버의 완벽함이란. 망설이지 않는 연인들은 가장 열정적이고 섹시하다. 그렇게 엘리오는 뜨겁게 짝사랑하고 올리버와 함께 뜨겁게 사랑한다. 첫사랑의 열병은 여름의 이탈리아보다 뜨거워서 엘리오는 그렇게 훌렁훌렁 윗도리를 벗고 다녔는지도.


서로를 향해 반짝이던 두 사람과 햇살을 가득 받아 보기만 해도 뜨거울 것 같은 이탈리아에도 계절은 똑같이 갔다. 둘은 올리버가 미국으로 귀국하기 직전, 짧은 시간 함께 여행하며 최고의 행복을 누린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제대로 된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기차역에서 이별한다. 무너져버린 엘리오에게 아버지는 그 사랑을 충분히 아파하고 기억하라고 말한다.


두 계절이 지나고 다시 돌아온 이탈리아에서 엘리오는 그 해 여름 손님의 전화를 받는다. 사랑한다는 말, 가지 말라는 말 대신 그들은 서로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다. 엘리오, 올리버. 모닥불을 바라보며 슬픔과 행복, 기쁨, 배신감, 축복, 이렇게 모든 감정을 보여주는 엘리오 뒤로는 평온하게 하누카 저녁 식사 준비가 계속되고, 창 밖에는 눈이 내린다.


차가운 공기와 날리는 눈발에 대지는 서늘하게 식었을 것 같지만 포근히 쌓인 눈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조금 편안해진다. 눈이 날리는 창문을 뒤로 하고 엘리오는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불씨를 날리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눈물짓고 웃음짓는다. 모닥불의 열기는 따뜻했던 여름과 미지근한 체온의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고, 타닥타닥 일정하게 불규칙한 소리를 내는 모닥불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기에 알맞다.


그렇게 사랑을 보내는 엘리오 뒤로도 일상은 흘러간다. 엘리오의 어머니와 마팔다는 계속 화면 안과 밖을 오가며 테이블에 접시와 음식을 세팅한다. 아무리 슬퍼도 일상은 계속되는 것이다. 사춘기 아들이 첫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조용히 배려하면서도 일상을 놓지 않는 것. 부모는 그리하여 엘리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격려한다. 겨울이 가면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올 테니까. 그 때처럼 여름이 뜨겁지 않더라도 말이다.


지금,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어느 새 7월의 반 15일을 넘었지만 예년과 달리 올해는 한 달 동안 찜통 더위란다. 지금의 열기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을 다시 보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다. 반짝이는 햇살을 받는 두 사람과 이탈리아를 보면 창 밖의 여름 햇살이 그리 나빠보이지 않는다. (물론 밖으로 나가 10분 이상 걸으면 말이 달라지지만.) 뜨거운 여름, 나에게도 여름 손님이 찾아오면 좋겠다. 혹은 내가 누군가의 여름 손님이 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