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글쟁 Nov 17. 2020

아줌마는 진로 탐색 중

애 딸린 아줌마가 할 수 있는 것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유재석 씨와 조세호 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보며 생각했다. 그 날 프로그램의 주제는 독특한 이력서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원래 직업에서 전혀 다른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여럿 거친 사람들도 있었다. 정말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싶은 찰나, 한 분의 이력서 앞에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사법고시를 28년 간 공부해 결국 합격하고 변호사로 일하는 권진성 씨의 이야기였다. 말이 쉬워서 28년이지(이 문장을 시작하는데 한 숨이 나왔다.) 무언가를 28년간 꾸준히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짧은 인터뷰 속에 그려진 그의 28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았고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생계를 위해 치킨집을 운영하고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그는 결국 목표에 이르렀다. 과연 무엇이 그를 목표로 이끌었을까. 묵묵함, 꾸준함으로만 이야기하기에는 쉽지 않다.


그냥 사는 것과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은 다르다는 말을 들었다. 전업 주부로 산 지도 벌써 8년을 채우고 있는 나는 가끔 그 말을 떠올린다. 지금을 사는 나는 그냥 사는 것일까,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일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무언가를 상상하고 꿈꾸는 일을 좋아한다. 지금 보다 더 나아가기를 바라며 지금과 다르게 이루고 싶은 일을 꿈꾸는 것 말이다. 당장은 나아가기 힘들더라도 지금을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았다.


지난 8년을 찬찬히 떠올려보면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글을 쓰며 사는 삶을 동경한다. 대학원 시절에는 그저 관심 있는 소수만 찾아보는 글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읽을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를 뛰쳐나왔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글을 쓰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몇 곳의 직장을 다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글을 쓰고자 회사를 뛰쳐나왔는데 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과 동시에 나는 전업 주부가 되었다. 그 시간 속에서도 나는 글 쓰는 삶을 동경했다.


결혼 전에는 꿈을 쫓아 일터를 뛰쳐나온 계기가 필사적이었다면, 전업 주부의 삶은 그럴 수가 없다. 더 이상 나 혼자 만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삶과 반려자의 삶, 내 아이들의 삶이 촘촘하게 짜여진 삶에서 나만의 꿈을 좇아 뛰쳐나가기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당장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 '배부른 고민'이라고 타박하기도 하고, 때로는 금전을 창출하지 않고 집안일만 한다고 '부엌데기'가 다 되었다고 말한다.


남의 이야기는 늘 쉽다. 일하고 싶으면 나와서 하면 되고 당장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그냥 집에서 놀면 된단다. 그런 사람들에게 일의 기준이 돈이라면 나에게 있어서 일이라는 것은 '가치 창출'이다. 철저히 현실적인 남편이 들으면 바로 반박할 테지만, 나는 이전에 직장을 선택할 때에도 그랬었다. 직장이 나에게 주는 돈이 얼마인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직장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지,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 덕분인지 나는 큰 고민 없이 직장을 선택하고 옮겨 다니며 자유롭게 일할 수 있었다.(물론 힘들었던 직장도 있었지만)


전업 주부이면서 내가 할 수 있을 찾는 방법은 단순하다. 우리의 삶이 흐트러지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러면서도 가치 지향적일 것. 내 가치 기준에서 아이들을 다른 이에게 맡기고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정시 출퇴근을 하는 4대 보험을 적용받는 직장을 선택할 수 없었다. 육아를 대체할 만큼의 금전을 보장하는 직장도 없었다.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거리들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른바 궁여지책인 셈이다. 쉽게 시작한 것이 바로 블로그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 그리고 책과 신문을 읽으며 생각하는 것. 본격적인 글쓰기는 아니었지만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름의 노력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게으른 탓인지 이렇다 할 성과를 느끼기 못했다. 책모임을 통해 최소한의 지적 욕구는 조금씩 채워나갔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내가 의외로 지적 욕구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요즘 누구나 표현의 욕구를 표출하며 살고 싶어 하기에 과한 욕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글을 쓰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자신의 색깔을 뽐낸다. 우리 모두가 그런 시절에 살고 있다.


그런 시절 속에서 나는 여전히 진로 탐색 중이다. 여전히 배우고 싶고 쓰고 싶고 찍고 싶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이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전업 주부로서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찾는다. 내가 추구할 수 있는 가치를 찾고 싶다. 여류 소설가 고(故) 박완서 선생님은 결혼 후 전업 주부로 살다, 소설 '나목'을 시작으로 나이 사십에 등단했다고 한다. 전업 주부에서 전업 소설가. 부엌데기로 사는 게 당연했던 그 시절에도 잔잔하게 요동치는 파격은 존재했다. 내가 일으킬 수 있는 파격은 무엇인가. 오늘도 나는 몸부림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미래보다 전혀 다른 남편과 막창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