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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변 Dec 03. 2016

영화 에이미(AMY)

내가 원치 않은 것으로 채워진 나의 삶

중2병이라는 용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딱 중학교 2학년 그즈음에 가졌던 열병 같은 바람이 있었다면 '스물일곱 살의 죽음'이었다. 커트 코베인을 다룬 책을 반복해서 읽던 시기였고, 짐 모리슨의 더 도어즈나 지미 헨드릭스를 엠피쓰리에 넣어 다녔다. 또 재니스 조플린을 까닭 없이 동경하며, 좋아하는 문인으로 이상이나 기형도, 윤동주를 꼽던 때가 바로 그 시절이었다.


나이를 먹고 스물일곱을 앞둔 때가 되고서는 죽음은커녕 먹고살자는 조급함에 발이나 동동 구르고 있지만, 그 열다섯 이후 그때의 동경을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이 대학 시절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죽음 소식이었다. 내가 스물일곱의 죽음을 상정하고 하루하루를 꼽아가고 있었을 때 배경음악쯤으로 깔렸던 음악 가운데 하나도 아마 에이미 와인하우스였을 것이다.



엄청나게 유명하고 무진장 부유해서 자신이 아무것도 손대지 않아도 모든 것이 굴러가는 삶. 이것이 죽기 직전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가졌던 삶이었다, 비록 그가 가지고 싶었던 삶은 아니었지만.


그가 죽던 날은 그가 그토록 기대하고 가고 싶어 한 전 매니저 닉의 결혼식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약물 중독과 폭식증, 각종 기행으로 뭇 언론과 미디어의 조롱거리가 되고 베오그라드 공연을 망쳐 투어가 취소된 이후의 그 날은,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한지 불과 수 주 지난 때였다.



"Boy, I CAN sing!"

"Damn right, you can sing."

"If I could give it back... just to walk down that street, with no hassle."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나아지고 싶어 했다, 그 모습을 조그마한 화면 너머로 지켜보는 내가 조금 울 정도로. 죽기 전날 그는 가족 같이 대하던 경호원에게 자신의 공연 영상을 보내 주고는 "와, 나 노래 잘하네!"라고 했다고 한다. 당연히 그렇다는 경호원에게 그가 한 말은 이랬다.


"그 재능을 돌려주고... 방해 안 받고 거리를 걸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마지막 통화였다.


헤로인, 크랙 코카인, 알코올, 담배를 즐기는 사람은 대개는 유해하게 느껴진다. 한편으로 이것은 맨 윗 문단에서 언급된 요절한 뮤지션들의 공통점이기도 한데 때때로 이것은 예술가의 진정성이자 순수한 예술혼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끔찍한 생각이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금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남긴 단 두장의 앨범을 다시 돌려 들었다. 시각화된 설명을 들은 후라 가사 한 줄 한 줄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모든 멜로디와 가사는 우울증의 발로였다. 아홉 살에 아버지는 떠났고, 열네 살부터 항우울제를 처방받아먹었던 사람의 유일한 돌파구였음이 새삼 절절히 느껴졌다.


진심으로,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나아지고 싶어 했다. 겪은 것이 아니면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기에 더 이상 Back to Black을 부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들이 사랑한 것은 바로 그 'Black', 우울이었다.


더 이상 '재활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고,

블레이크와의 이혼으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어둠 속으로 돌아갈' 일도,

'지는 게임'일 뿐이었던 사랑도 끝맺었음에도,


사람들은 에이미 와인하우스에게서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 Back to Black을 계속해서 듣고 싶어 했다. 그것은 에이미 와인하우스로 하여금 말 그대로 'Back to Black'하기를 바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것은 어쩌면 미필적으로 그의 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행위인지도 모른다.




And if my daddy thinks I'm fine.
He’s tried to make me go to rehab.
I won't go, go, go.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서 모든 것이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면서도, 아버지를 미워하기보다는 그것이 평생의 결핍으로 남은 것 같았다. 그 유명한 곡 'Rehab'에서도 재활원에 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아버지가 공연 계약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재활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그것은 사실 굉장히 중요한 치료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때 재활원에 갔다면 Back to Black은 나오지 않았겠지만 그녀는 원하던 대로 마음껏 거리를 방해 없이 걸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파파라치와 부담스러운 유명세를 피해 겨우 찾은 안식처에서 보고 싶다며 찾은 아버지가 리얼리티 쇼 촬영 스태프들을 이끌고 함께 왔을 때도, '왜 내 인생을 팔아 자기 이야기를 하냐'며 아버지에게 화를 내면서도 아버지의 삶을 끝까지 존경했고 아버지에게 의존했다는 사실이 슬펐다. 영화 '군도'의 조윤이나 영화 '사도'의 사도가 일면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미 올해의 앨범을 발표하는 순간에도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자신의 아이돌이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좋아하는 가수인 '토니 베넷'이 나왔다며 아버지를 부른다. 하지만 딸의 호들갑에도 아버지의 반응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를 왜 그렇게 사랑하고 원했냐고? 이해와 공감이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용당하면서도 자신과 함께 있어 주는 게 너무 좋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감정이란.



짙은 화장을 하고, 술, 담배와 마약을 즐기는, 교양 없는 말투를 교정하려 들지 않고, 오해받거나 지루할 때는 가감 없이 공격적으로 말하는, 솔직하고 문란한 여자. 요즘의 작태를 보면 이 가운데 한 가지만, 아주 옅게 해당되더라도 '센 언니'라는 꼬리표가 붙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너무나 연약했던 것 같다.


블레이크와의 사랑말인데,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정말로 그로 인해 목숨을 다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안과 우울을 겪는 사람은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기 쉬운데, 그 불안과 우울의 원천인 가족의 결핍에서 공통점을 찾으며 시작된 블레이크와의 관계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너를 이해한다'라고 하는 것과 '나도 너와 같다'라고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모든 것이 블레이크를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을 것이고, 그것이 극단적이고 파멸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블레이크를 버릴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들과 같게 만들고자 하는 재활원보다 나와 같은 블레이크의 마약 같은 자기파괴적 행위에 감정적으로 더욱 격렬히 반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마음 한 켠으로 재활원에서 겸손하고 수줍던 시절로 돌아가기를 갈망했음 역시 영화에 드러나기 때문에, 또 안타깝다. 결국 이 자기파괴적 집착이 위로가 되기보다는 서로 지치고 파괴된 상태에서 끝났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끊임없이 질문받는다. 유명해져서 좋냐고 유명해진 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이냐고. 대답 역시 끊임없이 한결같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아무 의미도 없다고, 난 그저 다음 앨범을 만들고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많은 돈과 인기와 관심과 기대, 혹자는 유명하니까, 돈도 많이 버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하니까, 이 정도는 감내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빈지노가 그랬던가 유명인이 내는 세금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한 순간도 원하지 않았던 것들이 내 삶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꾹꾹 눌러 참을 것을 강요받는 것은, 단지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원하는 다른 사람들의 질투 어린 흉한 책망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는 일이다.


또는 혹자는 그 정도는 이겨낼 수 있지 않냐고, 매니저나 아버지가 말했듯이 자신의 몸을 챙기는 것은 자기 자신의 책임이지 않냐고도 할 것이다. 어째서 몸을 챙기는 것은 자기 자신만의 책임이되 돈을 챙기는 것은 모두의 책임이었을까. 정신력, 인내력, 투혼 따위의 것들이 과하게 칭송받는 사회에 사는 구성원들의 내면이 얼마나 문드러져 있을지는, 아마 그 구성원들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울증, 공황장애와 같은 것들이 비로소 이름을 가지고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들이 갓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널리 기억될 모습은 부풀린 머리에 치솟은 아이라인의 기행을 일삼는 뮤지션일지라도, 사실 순연한 에이미 와인하우스란 이렇게 담요를 뒤집어쓰고 수줍게 웃는 순한 아이가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기억되는 것은 두 장의 히트 앨범을 통해서겠지만, 포스터 문구처럼 신이 있다면 정말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질투했을까? 오히려 영화를 본 뒤 포스터를 보고서는 그 삶을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이 마음 저림과 한 순간의 눈물을 위해 소비하고 있는 것만 같아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린 나이에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예순다섯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평을 듣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어쩌면 그래서 삶을 스물일곱에 놓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 스물일곱의 삶의 무게가 예순다섯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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