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매거진 구상
한때는 가까웠고, 지금은 혹은 지금도
뭘했다고 번아웃이 온 것 같다고 글을 올린 것이 일주일 전인데, 그 후로도 새 글은 못 쓰고 안 쓰고 그러고 있었다. 가끔 이유를 아예 모르는 건 아니지만 모른 척 하고 싶은 우울질이 기승을 부릴 때가 있는데 11월이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브런치나 블로그에 끄적거리는 수준의 인간으로 살다가 노년을 맞이할 것 같은, 게다가 노화는 엄청 빨리 진행되어 이제 사십임에도 불구, 머리카락은 반백발이고 어린이집 가정통신문 읽는 것도 버거운 노안까지 벌써 와버린지 사실은 오래 되었다. 게다가 무릎은 왜이리 시큰거리고 많이 붓는 것인지. 나는 이대로 가는건가 싶은.
뭘 써야할 지, 뭘 위해 써야할 지 모르겠는 시절을 보내던 중이었는데, 사실은 지금도 모르는 중이고.
최근 읽고 있는 소설가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을 읽다가 기억에 남는 구절을 발견했다.
p.201
가장 솔깃한 건 진은영씨의 이런 말이었다.
세번째 시집의 시들을 쓰는 내내 많이 두려웠어요. 앞 시집들의 어떤 독특성 때문에 유독 나를 사랑해주었던 친구들이 지금 작품들을 보면서 아쉬워할 수도 있겠구나. 그렇겠지. 그렇지만 삶이 변하기 때문에 친구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삶이 변하고 감정이 변하면 사랑했던 사람과도 헤어지잖아요. 같이 갈 수 없는 연인도 있고 친구도 있고 독자들도 있고요. 그 대신 다른 사랑과 다른 우정이 시작되는 거잖아요? 예술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인정과 사랑에 얽매이면 안되는 거죠.
어떤 북토크에서 함께 대담중인 상황이었고, 진은영님의 이 발언이 있고 김연수는 "대단하십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도 이 부분을 읽으며 '와, 대박. 정말!'하는 생각을 했다.
시간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는데, 변하게 하는 것들 중에는 친구들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욱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는 없다. 중학교 1학년때 지하철 노선도로 보자면 거의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으로 이사를 하기도 했고, 중고등학교 친구들과는 대학, 취업, 결혼 등의 과정속에 각자의 새로운 자리로 스며들었다. 그나마 오랫동안 지속하고 있는 친구들은 20살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동네 교회 친구들인데 그 친구들도 학업과 취업, 결혼에 따라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 떠난 이도 있고 인생의 화젯거리가 달라짐에 따라 관계가 모호해진 이도 있다.
내가 좀 말이 많고, 웃기는 걸 좋아해서 사교적이어 보이나본데 사실 나는 사교적이지 않고 친구도 많은 편이 아니다. 그와중에 이런저런 사연으로 친구들이 정리되다보니,(마치 정리를 당해버린 것 같다) 카톡에는 있지만 섣불리 "잘 지내니?"라는 안부 인사를 건내는 것 조차 부담스러워진 그 때 그 시절의 그 친구에 대해, 그 친구를 향해 가지고 있었던 그 때의 나에 대해, 그 친구와 내가 만들었던 그야말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그 친구와 나의 그 시절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두어명 밖에 떠오르는 친구가 없지만(옛 친구도 없어...) 지금이야 믿음으로 지금을 청춘이라 부르지만, 정말 청춘이었던 나. 그리고 80년대생 여자들.
어두워서 예뻐보임ㅋ 역광이면 너도나도 리즈리즈!
역사와 부동산의 꿀물을 다 빨아먹은 386(현재 586세대)세대와는 다르게 우리 세대는 문화의 꿀은 빨아먹었을지언정 모든 안좋은 별명은 다 달고 산다.
1990년대 우리는 N세대, X세대, 오빠부대 이른바 빠순이로 불리웠고
2000년대가 되니 된장녀, 김치녀로 불렸으며
2010년대가 되니 맘충이, 꼴페미로 불리우고 있다.
비혼녀들은 골드미스라는 칭찬인지 비꼬는 말인지 모르겠는 별명을 선물받았고, 기혼녀들은 하우스푸어, 카푸어, 베이비푸어를 결혼 1년안에 다 체험할 수 있는 특별고난회원권을 선물받았다. (나는 그랬다)
2020년, 지금은 낀꼰대가 되었고요. (왜 60-70년대생 부장님이 이해되고 난리냐고, 90년생 신입이나 이해하지.)
이렇게 비장해질 생각은 없었는데.
새로운 매거진을 시작해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