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을 만나라고!(상)
평범한 사람 만나는 게 제일 어렵죠
알고 지낸지는 오래되었는데, 언제부터 특별히 친해진 건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20대였을 때 얘기다.
가까운 친구들 중에 학벌이 제일 좋은 친구다. SKY출신. 그런 애가 딱히 모난 구석도 없이 정말 성격도 좋고, 그래서 편안한 애였다. 예쁘기도 예뻤고. 그런 괜찮은 애와 내가 친구라니, 나도 꽤 괜찮은 애인가 싶은 생각을 할 정도였다. 최미영, 이라고 이름을 지어두자.
인간의 20대에는 여러 가지 일이 넘쳐난다. 대입, 재수, 휴학, 복학, 졸업, 취업, 재취업, 연애, 이별, 연애, 연애, 연애, 연애... 그러다가 결혼을 하기도 하는데, 나는 20대에 결혼하는 건 반대하는 편이다.
10대는 사실 독립적으로 보낼 수가 없는 시기다. 인생의 꽃 같은 시절은 20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의존에서 독립으로 점차적으로 발전해가는 시기를 오로지 20대인 본인 혼자 누리기를 바란다. 결혼도 나쁜 결정은 아닐 수 있지만 결혼하는 나이 만큼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타인과 함께 살아야 하는데,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튼, 20대를 함께 보내며 소개팅과 연애의 순간순간을 함께 했던 미영이. 6개월 미만의 단타만 치는 나에 비해 미영이는 남자를 만나면 2년 이상은 만났고, 그중 한명은 6년 넘게 만났다. 6년 넘게 만난 남자는 나도 아는 남자였고, 그 남자와 얽힌 우리의 20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미영이의 남자친구는 전도사였다. 지금은 목사가 되었다. 미영이는 명문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고, 졸업한 그 해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바로 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미영이의 아버지는 제천인가 진천에서 공장을 운영하신다고 했다. 미영이에게는 연년생 언니가 있는데 언니는 평범한 지방대를 6~7년에 걸쳐 졸업하고 서른이 되기 전에 결혼한 것으로 기억한다.
미영이 남자 친구는 나도 함께 다니던 교회의 오빠...라고 하기엔 나이가 좀 있는 8살 위의 남자분이었는데, 그 분의 아버지는 교회 사찰집사님이셨다.
그분의 젊은 날은 온갖 무용담으로 가득했다. 왼손으로도 당구 900을 친다고 했고, 내기 당구를 치면 하룻저녁에라도 소나타 한 대는 너끈히 딸 정도라고 했다. 전 여친은 모델이었고, 당구 끊고 게임을 시작했는데 실력이 게임채널에도 나올 만큼이라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비슷한 또래의 그분 친구들은 그 시절 강남역 나이트에서
"우리 사촌오빠(형)가 OOO이야!!"라고 하면 바로 입장시켜줄 정도였단다.
그러다 보니 젊은 날엔 부모님, 교회와 담임 목사님을 돌보시는 사찰집사님이시기까지 한 부모님의 속을 썩이고 주변 사람들의 입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던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불을 심하게 받아 회심하여 교회 찬양팀에 들어갔다. 마침 찬양팀에서 건반을 치던 미영이와 눈이 맞아 이성교제를 시작한 것이었다.
고졸학력이 전부였던 그분은 찬양팀에 들어가서 믿음을 쌓고 쌓으면서 신학대를 거쳐 신대원에 까지 이르는데, 사실 명문대출신의 딸을 가진 아버지는 여러모로 그 남친이 반가울리 없었다. 나와 미영이는 그분의 그런 호시절을 듣기만 했지 겪어본 건 아니라서 사실 믿을 수가 없었다. 성격이라고 할까, '성품'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만큼 참 온유하고 착했고, 윗사람과 아랫사람 또래들에게 모두 예의바른 사람이었다. 현재의 모습만 보고는 '잡기'에 능했던 그분의 과거를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영이 아버지는 그런 시절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었나, 잘 모르겠다, 지금도.
그렇게 크지도 않은 규모의 교회에서 둘의 교제사실이 알려졌고, 미영이 나이가(내 나이도) 20대 후반에 진입하자 미영이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졌다. 이별을 종용하시는 아버지의 말을 들을리 없는 미영이는 아버지와 대치상황에 들어셨고, 더 거칠어지신 아버지는 집에서 미영이를 투명인간 취급했으며, 급기야 아버지는 수요예배를 마치고 가는 그분을 교회 어느 구석으로 끌고가
"니 까짓게 전도사야!!" 하면서 얼굴에 한 방을 날리셨다고 했고 아무것도 모르고 집으로 가고 있던 미영이를 다시 오게 해 자신이 보는 앞에서 헤어지라고 했단다.
이 모든 일이 소설같지만 사실이고, 내가 보진 못했지만 교회 CCTV엔 다 저장되어 있는 일이라고 했다.
미영이의 차키와 지갑이 들어있는 가방을 뺏어 든 아버지를 그냥 두고 미영이는 도망쳤다. 다행히 혼자 살던 동료 선생님이 계셔서 그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고 다음 날 출근했고 미영이가 마침 수업에 들어가 있는 시간에 미영이 아버지는 본인이 직접 쓰신 '사직서'를 들고 미영이가 근무하던 학교로 쳐들어가셨다. 교장실로 직행하셨고 교장선생님에게 '사직서'를 내밀었다고 했다.
감사하게도 센스있으셨던 교장선생님은 교무부장 선생님께 미영이의 안전을 부탁하셨고, 교장선생님은 미영이아버지를 학교 근처 찻집으로 모셔서 미영이 아버지께 이런 식으로는 공무원의 사직이 처리되지 않는다며 본인이 처리할 수 있도록 전달하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이 모든 일은
미영이의 남자친구가 아버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미영이가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않아서
였다.
다 큰 딸의 직장에 딸의 이성교제를 문제삼아 아빠가 오시다니, 게다가 상사를 만났고. 창피함을 넘어 쪽팔림 그 이상을 경험하게 된 미영이를 위해 교무부장 선생님은 월차를 배려해주셨고, 마침 여름방학 목전이던 때라 미영이는 3일 휴가+방학까지 시간을 갖게 되었다.
쓰다보니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더 많아 다음 회에서 계속.
그 시절의 연애의 주도권이 왜 나한테 없었던 것인가.
아빠가 해주면 뭘 얼마나 해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