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을 만나라고!(중)

그 평범한 사람은 누가 만나나

by 김호정



미영이의 안전과 월차까지 배려해주신 덕분에 미영이의 인생은 새롭게 개편되었다. 미영이가 아버지에게 차키와 지갑 뿐 아니라 휴대폰까지 들어있던 가방을 뺏기고 도망친거라 미영이에겐 주머니에 들어있던 천원짜리 몇 장이 전부였다. 2000년대 후반만 해도 아직은 2G폰을 쓸 때라 우리 인생에 휴대폰의 역할은 지금만큼 크지 않았다. 당시에는 크게 느껴지긴 했지만.


아직 남아있던 공중전화로 혼자 사는 동료 선생님께 상황설명을 했더니, 동료선생님과 그 남자 친구분이 미영이를 데리러 왔고, 며칠 그 집에 같이 지내며 앞으로의 일을 모색했다.

동사무소에 가서 신분증 분실신고를 하고 재발급받았고, 은행에 가서 직불카드(그때는 체크카드 개념이 아직 없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를 만들고 신용카드도 함께 만들었다. 일단 미영이 이름으로 된 통장의 비밀번호를 바꾸고(부모님과 투명한 관계였음) 돈을 모두 인출했다고 했다. 휴대폰도 새로 만들었고.

미영이의 차와 옷가지 등의 짐을 가져오는게 문제였는데, 남자친구분의 지도에 따라

"보험사에 전화해서 차키 놓고 내렸다고 해요! 자동차등록증있음 다 돼!"

즉각 실행에 옮긴 미영이는 본가 주차장에 미영이 차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보험사를 불러 차키를 다시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차 가지러 간 김에 아무렇지도 않게 본가에 갔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어서 자신의 짐을 모두 빼왔다고 했다.


이 모든 사실을 내가 알게 된 것은 사건발생 2주 후였다. 미영이가 아버지에게서 뛰쳐나왔던 그 수요일이 나는 동생과 2주간의 유럽여행을 출발하던 날이었다. 그 전에도 이런저런 스토리가 있었기에 걱정하는 마음으로 살긴 했지만 내가 있는다고 특별한 도움이 될 일은 없었다. 난 신나게 유럽에 다녀왔다. 나는 내 인생을 살아야니까!


유럽여행에 다녀오자마자 맨 먼저 미영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잘 다녀왔어. 별일 없었니?

하고 물으면 평소처럼 '똑같지 뭐'

할 줄 알았는데

-나 집 구해서 나왔어

가 답장이었다. '집을 구해 나왔다고? 레알?'(그때는 레알? 대박! 이런 말이 없었다. 진짜? 정말? 정도 덧붙였을 것이다)

유럽에서 돌아온 그날 저녁에 미영이와 만났다. 저녁에 와플과 아메리카노를 먹으며 2주간의 일을 속사포랩으로 주욱 펼쳐놓았다.


"이제 어쩔거야?"

"모르겠어. 근데 나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연락은 없으셔?"

"언니가 싸이로 쪽지보냈더라고. 그냥 씹었어. 어차피 한통속일테니."

"집은 안전한데 잘 구한거야?"

"응. 신축빌라고 주인분이 꼭대기에 사셔서 관리도 잘 되는 것 같더라고."

"살림들이 필요할텐데..."

"다 샀어. 3개월로. 세탁기나 냉장고는 빌트인이라서 크게 목돈 들 일은 없었어."

"역시 정규직여자!! 하하하하하하"





이때는 2008년이었다.

2008년 1월이었나. 나는 소개팅을 했었고, 몇 번 만났다. 소개팅의 주선자가 그랬다.

"동건이(이름이라도 이렇게 지어보자) 친구가 그러던데, 쟤가 애프터한 거 처음본다고."

풋. 그랬구나.


주선자는 어느 개척교회의 전도사였고, 그 개척교회 담임목사의 아들을 소개해줬다. 신(학)대(학)원 가려고 준비하는 애. 동건이는 나랑 동갑이었고, 과외를 하며 용돈벌이를 했고, 비평준화였던 분당에서 명문고를 졸업하고 SKY까진 아니었지만 순위권에 있던 대학에 과수석으로 입학했다고 했다. 사실 학벌주의자였던 나는 그 부분에서 이미 마음이 많이 기울었었다. 허허.


발렌타인데이때도 만나자, 화이트데이때도 만나자..해서 계속 그냥 만났다. 마음은 그냥이 아니었지만, 지금 말로 하면 썸을 좀 오래 탔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대학원생이었고, 그 친구는 사실상 무직이었고. 그와 나에게 불확실한 건 미래만이 아니었다. 현재 자체도 불확실했다. 그 불확실함을 알고 이해했기에 그 불확실한 만남도 그냥저냥 이어갔었다. 좋아하기도 했고.




"아빠가 반대하시는거면, 뭐 만나보라고 소개해주시는 사람은 있어?"

"아니."

"그럼 어떤 사람 만나래?"

"글쎄."

"글쎄? 너네 언니 결혼할 때는 반대 안하셨어?"

"어. 별일 없었어. 워낙 오래 사귀었거든."

"너도 오래 사귀고 있잖아."

"그러게."

"형부는 뭐하시는 분인데?"

"그냥 회사다녀."

"무슨 회사? 삼성?"

"아닐걸. 몰라."

"모른다고?"

"안 물어봤고, 그냥 회사 다니나봐. 교회도 언니 따라 처음 다닌 걸껄?"

"아 정말? 그럼 아빠가 원하는 사위상이 뭐야 ? 직장도 아니고 믿음도 딱히 아닌 것 같고?"

"그러게. 그냥 평범한 사람?"

"평범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야?"

"형부같은 사람인가보다. 회사다니고, 대학나오고, 월급받고."

아. 그렇구나. 미영이의 남자친구나 나의 썸남이나 대학을 나왔거나 다니지만 회사를 안다니고 월급도 안받는구나. 받긴 받아도 자기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수준이겠지. 회사다니면서 월급받는 평범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구나.

생각보다 주변에 평범한 사람이 없었다.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반대하는거면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시던지, 이런 사람을 만나라고 예를 들기라도 하던지 해야하는데 아무런 대안(?)도 없이 막무가내로 반대하셨고, 언니의 결혼식때는 친척들이 짜기라도 한듯 미영이에게

"언니도 시집가는데, 너도 가야지?" 라던지

"미영이는 남자친구 있니?" 등의 뻔한 인삿말도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저 아버지가 먼저 나서서

"우리 미영이는 내가 끼고 살거야. 보내도 늦게 보낼거야." 하셨단다.




고등학교 영어교사인 미영이는 매달 일정한 급여를 받았고, 수능감독을 하면 현금으로 수당을 받았고, 보충수업을 하면 또 돈을 받는다고 했다. 나름 신입이라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처음부터 프리랜서로 시작해서 일정치 않았던 돈을 벌었던 나로서는 미영이의 독립적인 행보가 부럽기도 했다.


미영이를 만나고 생각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경제적으로 압박받는 상황이 아니다보니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 주에 교회에 갔더니 청년예배실 앞에 미영이아버지가 지키고 서계셨다. 다행히 미영이아버지는 내 얼굴을 모르신다. 그래도 그냥 긴장이 되었다. 나는 예배실 안으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큰소리가 들렸다.

"내가 너 두고 볼거야!!"

깜짝놀라 뒤를 돌아보니 미영이 남자친구가 예배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바깥으로 나갔는데 아버지가 또 서계셨다. 아무래도 미영이를 찾으시는 것 같았다. 미영이는 이미 교회를 옮긴 상태였다.


미영이는 2년정도 나와서 살다가 어머니의 갱년기와 눈물의 호소로 본가로 들어갔다. 그 후로도 계속 사귀었다. 어머니에게는 베프이지만 아버지에게는 투명인간인채로 살았다고 했다.


29살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돈 버는 일에 뛰어든 나는 좀 바빴던 것 같다. 워낙 사회생활이 늦기도 했으니 누구도 주지 않는 압박을 느끼기도 했고, 그 즈음엔 미영이도 대학원에 진학했던 걸로 알고 있다. 서로 자연스럽게 자기의 일에 매진하느라 연락을 못하고 있던 중에, 그 바쁜 와중에도 이별도 하고 연애는 하는 거니까 나는 앞의 그 썸남이 아닌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소식을 전하면서 꽤 오랜만에 미영이와 만났었고, 관록의 커플로 든든하게 잘 만나고 있었다. 한때는 너무 결혼하고 싶었지만 일과 직장생활이 자신에게 잘 익으니 그냥 연애도 좋다고 했다. 아버지는 같은 상태이시긴 하지만 하루이틀이 아니기에 괜찮다며.


그렇게 나는 결혼을 했고, 신혼때는 좋았지만 아이를 낳으니 세상 이런 고난이 없었고 미영이는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했지만 먼저 연락은 하지 않았다. 내가 입을 벌리는 순간, 결혼하고 보니 고난이 겹겹으로 온다, 그냥 연애만 하고 살아라, 애키우는거 엄청 힘들다, 혹여나 속도위반같은 전략은 생각하덜 마라, 난 비혼비출산강추! 라는 말이 내 뚫린입으로 막 터져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즈음 소식을 들었다.

미영이가 헤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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